'박원순 성범죄 피해자 실명공개' 김민웅 전 교수 집유 확정
1심 혐의 인정하다 2심서 부인
2심에서 형량 높아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범죄 사건 피해자의 실명이 적힌 편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해 재판에 넘겨진 김민웅 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에 대한 징역형의 집행유예형이 확정됐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비밀준수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교수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사회봉사 및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성폭력처벌법위반(비밀준수등)죄의 성립과 정당행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김 전 교수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김 전 교수는 2020년 12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A씨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박 전 시장에게 보낸 편지 세 통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해당 편지들의 내용에 비춰볼 때 A씨가 박 전 시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2차 가해성 글도 함께 게시했다.
그런데 김 전 교수가 올린 편지에는 A씨의 실명이 기재돼 있었고, 김 전 교수는 이를 가리지 않은 채 그대로 노출했다.
성폭력처벌법 제24조(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 비밀 누설 금지) 2항은 '누구든지 제1항에 따른(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주소, 성명, 나이, 직업, 학교, 용모, 그 밖에 피해자를 특정하여 파악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진 등을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신문 등 인쇄물에 싣거나 방송법 제2조 1호에 따른 방송 또는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사진 등을 공개할 경우 같은 법 제50조(벌칙) 2항 2호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재판 과정에서 인정된 사실에 따르면 김 전 교수는 범행 전날 박 전 시장의 비서실장이었던 B씨를 포함한 지인들과 모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고인이 된 박 전 시장에 대한 경찰,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B씨는 박 전 시장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편지라면서 참석자들에게 A씨가 작성한 손편지 이미지 파일 3개와 박 전 시장이 A씨의 남동생 결혼식을 축하하는 문구가 씌어진 이미지 파일 1개를 자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보여줬다.
당시 참석자들은 B씨의 휴대전화를 돌려가며 편지 내용을 확인했고, A씨의 박 전 시장에 대한 고소 내용과 편지 내용이 서로 모순된다고 보고, A씨의 손편지 등을 경찰, 국가인권위원회, 언론 등에 공개할지 여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김 전 교수는 모임 자리에서 B씨에게 부탁해 A씨의 편지 등 이미지 파일들을 텔레그램을 통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송받았다.
다음날인 2020년 12월 23일 오후 2시13분경 박 전 시장의 비서관이었던 C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A씨의 손편지들을 A씨의 실명을 블러 처리한 이미지 형태로 게시했다.
그리고 김 전 교수는 같은 날 오후 2시27분경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 어떻게 읽히십니까? 4년간 지속적인 성추행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주장한 여성이 쓴 편지입니다. 맨 아래는 당사자의 남동생 결혼식에 박원순 시장에게 써달라고 부탁한 글씨입니다. 여당의 장관 후보자들은 박원순 관련 사건을 ‘권력형 성범죄’라고 규정했습니다. 경찰의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판단을 기대해봅니다"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A씨의 실명이 기재된 편지파일을 첨부해 게시했다.
김 전 교수는 1심 재판 과정에선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2022년 8월 1심 법원은 김 전 교수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을 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의 페이스북에 피해자의 인적사항 등이 포함된 글을 게시한 것으로,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게시한 게시물의 전파력과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됨에도 만연히 이 사건 범행에 이른 점, 피해자가 2차 가해를 호소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을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김 전 교수가 초범인 점, 자백하고 있는 점, 게시물을 게재한 후 삭제하기까지 게시기간이 비교적 길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다른 곳에 재유포했다는 정황이 나타나 있지 않은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김 전 교수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1심 때와 달리 그는 2심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그 결과 오히려 형이 늘었다.
항소 이유로 그는 자신의 행위가 고의 범죄가 아니라 과실에 의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애초 자신은 문제가 된 편지에 A씨의 실명이 기재돼 있는지 몰랐고, A씨의 실명을 공개할 의도도 없었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그는 좌안 약시 및 양안 녹내장 의증 등으로 시력이 좋지 않고 시각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 전 시장의 비서관 C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편지파일을 보고 이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려고 했지만 기술적인 오류로 공유가 되지 않아 자신이 핸드폰에 저장하고 있던 편지파일을 페이스북에 첨부해 게시했지만, C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편지파일처럼 A씨의 실명이 블라 처리된 동일한 파일이라고 착각했다는 주장도 했다.
눈이 나빠 편지에 적힌 A씨 실명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실수로 게시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김 전 교수가 성범죄 피해자인 A씨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하기 위해 해당 편지들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주된 게시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대학교수였던 김 전 교수가 시민들에게 공개할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고 게시했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통상 편지에는 작성자가 앞부분 또는 말미 등에 이름을 기재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사건 각 편지파일에는 본문 첫 문장 또는 말미 부분에 편지의 작성자인 피해자의 이름이 총 4번 기재돼 있고, 특히 일부 편지에는 본문(각 1~2 페이지에 불과하다)과 몇 줄 간격을 두어 피해자의 이름이 기재돼 있어 이 사건 각 편지파일을 보는 사람은 피해자의 이름이 편지에 기재돼 있는지를 쉽사리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시장은 A씨를 자신에게 적용된 성폭력처벌법 규정에서의 '성폭력범죄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박 전 시장이 사망해 해당 범죄사실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박 전 시장이 A씨에게 한 것으로 인정한 행위들을 봐도 A씨를 성폭력범죄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이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 피해자가 제출한 제반 증거, 확보한 참고인의 진술, 목격자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피해자를 상담한 법무법인의 상담일지 기재 사실 등』을 수사한 결과, 박 전 시장의 범죄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컴퓨터, 노트북 내에 있는 범죄혐의와 관련된 전자정보에 관한 압수수색검증영장을 신청하기 위한 서류를 작성했지만, 박 전 시장의 사망으로 영장을 신청하지 못한 점, 박 전 시장의 배우자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성희롱으로 인정한 망인의 각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낸 권고결정 취소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이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적 굴욕감 내지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로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라며 청구를 기각한 점 등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형이 너무 중하다'는 김 전 교수의 주장은 배척한 반면,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는 검사의 주장을 이유있다고 판단, 1심보다 가중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1심이 명령한 수강명령 외에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까지 추가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수사 중인 성폭력범죄의 피해자의 실명이 기재된 편지파일을 페이스북에 게시한 것으로 그 죄질이 가볍지 않은 점,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의 실명이 게시된 손편지는 다수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재확산됐고, 그로 인해 피해자는 망인의 지지자들로부터 무차별적인 욕설과 비난을 받았으며, 결국 자신의 이름을 개명하기에 이른 점, 피고인은 원심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했다가 당심에 이르러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할 뿐 아니라, '이 사건 피해자는 성폭력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다. 1차 가해가 성립될 수 없으므로 2차 가해도 성립될 수 없다'는 등의 주장을 하고, 이 사건 재판이 진행중인 2023년 7월경까지도 이 사건 각 편지파일에 관한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등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자숙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점, 이에 피해자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다"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김 전 교수의 상고를 기각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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