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잃고 열손가락 절단도… 레바논 덮친 ‘삐삐 폭탄’

김철오 2024. 9. 18.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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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전역에서 17일(현지시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무선호출기(삐삐) 폭발 사건은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심각한 치명상을 입혔다.

로이터통신이 공개한 수도 베이루트의 한 시장 내부 CCTV 영상을 보면 무선호출기 폭발은 알림음이 울린 직후 발생했다.

뉴욕타임스는 서방국 관리들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무선호출기에 넣은) 28~56g 수준인 폭발 물질의 분량을 고려해 헤즈볼라 조직원이나 관련자 외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작다고 계산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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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거리 곳곳서 ‘펑’… 시민들 공포
“이, 기습 준비 중 발각 우려에 격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한 시장 내부 CCTV에서 17일(현지시간) 과일 진열대를 둘러보던 남성이 어깨에 멘 가방 속 무선호출기가 폭발하는 순간이 포착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레바논 전역에서 17일(현지시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무선호출기(삐삐) 폭발 사건은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심각한 치명상을 입혔다. 3000명에 달하는 사상자 중 대부분인 헤즈볼라 조직원들을 직접 타격한 데다 피해를 면한 조직원들에게도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레바논 주요 도시 병원들은 몰려온 환자들을 감당하지 못해 혼란에 빠졌고, 눈앞에서 폭발을 목격한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로이터통신이 공개한 수도 베이루트의 한 시장 내부 CCTV 영상을 보면 무선호출기 폭발은 알림음이 울린 직후 발생했다. 영상에서 과일 진열대를 둘러보던 한 남성은 어깨에 멘 가방 속 무선호출기가 폭발하자마자 바닥에 쓰러졌다. 진열대 맞은편의 모녀를 포함한 주변 시민들은 놀라 달아나거나 몸을 웅크렸다. 뉴욕타임스는 서방국 관리들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무선호출기에 넣은) 28~56g 수준인 폭발 물질의 분량을 고려해 헤즈볼라 조직원이나 관련자 외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작다고 계산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교전 지역이 아닌 시장과 거리 등 일상의 공간에서 발생한 무선호출기 폭발 테러는 레바논 시민들을 공포에 빠뜨렸다. 베이루트에서 운전 중 폭발을 목격한 52세 무함마드 아와다는 “차에 함께 탄 아들이 폭발음과 함께 남성의 손이 잘려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놓은 듯 소리를 질렀다”고 전했다. 안보 전문가인 아메르 알사바일레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관련자 모두를 공격할 능력을 보여줬다. 헤즈볼라는 심리적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 조직원 피해도 심각하다. 다수의 피해자들은 열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두 눈을 잃는 중상을 입었다. 알림음이 울려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화면을 보던 중 무선호출기가 폭발한 탓에 눈과 손가락이 훼손된 것이다. 무선호출기가 가방이나 호주머니에서 그대로 터져 복부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피해자도 많았다. 레바논 남부 시돈의 한 의사는 “눈을 다친 환자가 많아 치료할 안과 의사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지역 병원들은 인근 수의사·약사·치과의사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날 폭발 테러를 단행한 것이 작전 발각 우려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자국 관리 3명을 인용해 “이스라엘은 당초 헤즈볼라와 전면전을 시작할 때 무선호출기 공격을 기습용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며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 내부에서 작전이 발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내각 지도부는 논의 끝에 당장 작전을 실행키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악시오스는 또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공격 수분 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전화로 통보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미국도 심각한 통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오래전부터 통신기기를 활용한 암살 공작을 펼친 바 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이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 살해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부를 암살할 때는 유선전화를 폭발시켰다. 1996년 하마스의 사제폭발물 기술자 야히아 아야시를 살해할 때는 휴대전화에 50g 분량의 폭발 물질을 심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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