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불상의 얼굴과 손이 많이 훼손된 이유
2024년 12월 21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산동성의 문화유산을 답사했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태산과 곡부의 공자유적 답사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태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결합된 복합유산이고 공자유적은 문화유산이다. <기자말>
[이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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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와 팔 등이 훼손된 보살상 |
| ⓒ 이상기 |
산동성에서는 1980년대 이후 일련의 고고학적 발굴과 조사가 이루어졌다. 1996년 청주시(靑州市) 용흥사(龍興寺) 발굴이 이루어져 많은 불상이 발굴됐다. 이때 나온 정교하고 화려한 북조시대 조각상이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 그 외 비석 불비상 불탑 동종 불두가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불상의 얼굴과 손이 상당히 많이 훼손되어 있다. 그것은 역사 속에서 불교가 탄압을 받으면서 발생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선지 전시실 한쪽에 청동으로 수인(手印)을 만들어 놓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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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상의 수인 |
| ⓒ 이상기 |
북위를 대표하는 삼존불상과 미륵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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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지연석조삼존상 |
| ⓒ 이상기 |
가운데 주존불은 헐렁한 가사에 띠를 두르고(褒衣博帶) 날렵한 몸에 미소를 띤 모습(秀骨淸像)으로 연화대좌 위에 서 있다. 수인은 왼손이 여원인 오른손이 시무외인이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영락과 장식이 표현되어 있다. 주존불과 협시보살 사이에는 두 명의 공양상이 부처님께 꽃을 바치고 있다. 광배에는 9기의 화불이 주존불의 어깨부터 머리까지 감싸고 있다. 그 위쪽 가운데 하강하는 용이 표현되어 있다. 광배의 가장자리에는 11명의 비천이 표현되어 있다.
가운데 비천이 정병을 들고 부처님께 공양을 하며, 양쪽으로 5명씩 10명의 비천이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다. 주존불 주변에는 연화문, 당초문, 화염문이 낮은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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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명사 위고근법사비명 |
| ⓒ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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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공사 미륵불상 |
| ⓒ 이상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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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수관음보살상 |
| ⓒ 이상기 |
그중 천수관음이 인상적이다. 앞부분 네 팔은 선정인과 합장인을 하고 있다. 옆으로 들어 올린 무수히 많은 손에는 자비를 베푸는 데 쓰이는 지물이 들려 있다. 머리에는 삼단으로 불두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 불상 위로 두 손을 모아 연화대 위에 앉은 좌불상을 받치고 있다. 이름은 천수관음이지만 실제 팔의 숫자는 양쪽으로 20개씩 모두 40개다.
명나라 때는 영락제와 선덕제가 불교를 후원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불상의 예술성이 뛰어나다. 이곳에는 선덕제 때 만들어진 금동불이 전시되어 있다. 얼굴이 상대적으로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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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나라 청동불 |
| ⓒ 이상기 |
건륭제가 죽은 후 만든 능침의 지하 궁전에도 불교 관련 조각이 새겨져 있다. 문에는 불상을, 사방 벽에는 불교 경전과 만트라를 새겨넣도록 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건륭제는 생일 축하를 위해 피서산장을 방문한 조선의 사신단에게 판첸라마를 만날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청나라 때 불상이 명나라 때 불상보다 장식이 더 화려하고 정교해진다. 그것은 티베트 지역이 청나라에 복속되어 교류가 더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불교 장인들이 중국에 들어와 활동하면서 티베트 불상의 장식과 기법이 도입된 것이다. 정교하면서 세밀한 공예기법, 날렵하면서 관능적인 표현기법이 결합해 청나라 시대의 독특한 불교 조각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한 양식과 기법이 이곳에 전시된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에 잘 나타난다.
덧붙이는 글 | 산동박물관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역사와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이 선사시대 도기, 춘추전국시대 유산, 한대 화상석, 불교 문화유산, 진한수당 시대 유산이다. 이번에는 산동성에서 발굴된 불교 문화유산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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