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위 '마스크맨', 그는 얼굴만 가린 게 아니다
최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 민간인 학살 분야 군법회의 판결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하고 ▲ 농성 유족을 검찰에 송치하는 등 피해자를 탄압하며 ▲ 상층부 간부들이 망언을 일삼고 부적절하게 처신하는 등 과거 청산 역행이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비판하고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점검하는 글을 과거사 연구자, 활동가, 작가 등이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합니다. <기자말>
[김성수]
▲ 황인수 진실화해위원회 조사1국장이 7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출석해 강제 퇴장됐다. |
ⓒ 유성호 |
그런데 현재 진화위에선 과거 인권침해 가해기관인 국정원 전 대공수사관이 거꾸로 조사책임자로 임명되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즉 지금 진화위가 국정원 등 파견 공무원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란의 중심엔 황인수(1968~)씨가 있다. 1994년 1월 국정원에 대공수사 분야 7급으로 입사한 황씨는 2015년 9월부터 2022년 12월 퇴직할 때까지 국정원 3급 대공수사처장을 지냈다. 이후 지난해 9월 진화위 국장으로 왔다.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온 내용과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 1년 동안 황씨가 진화위 조사국장 신분으로 조사관들에게 한 주요 발언을 살펴보자.
"이거 말이야… 신청인들이 국가한테 돈 1억4천(민간인 희생자 배·보상 평균금액) 받으려고 거짓말을 하는데, 조사관들이 그거 다 받아쓰고 앉아 있어." (한겨레 2024.3.27. 진실화해위 국장 막말 "유족들이 돈 뜯어내려 거짓말")
"진술인은 위원회의 진실규명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거짓의 진술(진술서 제출 포함)을 할 경우 법에 따라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나요."
: 한겨레 2024.7.10. "진실화해위가 간첩잡는 곳인가"…'변장' 황인수의 이상한 교육
"북한 김정은 한테 생일축하편지를 쓰는 국민이 수만 명이다"
"안보의 현장(국정원)에 있다가 못 이뤘던 결실을 (진화위) 여기서나마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발언을 외부로 유출하지 말라, 내가 포렌식(법의학)전문가다" (MBC 2024.3.25. 진실화해위 국장 "김정은한테 수만 명이 생일 편지"‥근거 따져 묻자‥)
▲ 문제의 발언이 보도된 MBC 뉴스 화면 황인수가 진화위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 문제의 발언이 담겨 있음을 MBC가 보도했다. |
ⓒ MBC 보도화면 갈무리 |
"(한국전쟁기 13살·14살 희생자들은) 자수하지 않은 간첩과 같다"
"(한국전쟁기) 5살짜리 3살짜리가 암살대원 방화범이 되기도 한다" (한겨레 2024.7.11. 진화위 황인수 "5살짜리 암살대원은 그런 짓을 한 놈의 동생")
"내가 (국정원에 있을 때) 간첩 잡으려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나보고 못 하게 했다" (한겨레 2024.8.8. 국정원 출신 황인수 진화위 조사국장 '색깔론 허언' 논란 )
"군경 (학살)사건과 적대세력 (학살)사건의 숫자적 균형을 맞춰 달라." (한겨레 2024.7.16. 황인수 '막말'에 진화위원 "민중 개돼지 발언보다 심해")
1기 진화위 간첩조작사건 진실규명 부인... 조작이 맞다며 피해자 명예 훼손
특히 1기 진화위에서 이미 진실규명이 결정되고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석달윤 등 간첩조작사건'(진도간첩단 사건)에 대해 황인수씨가 2기 진화위 조사관 교육자리에서 한 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는 해당 사건이 조작된 게 아니라며 '석달윤이 형사절차상 하자 문제로 무죄를 받은 것이지 간첩을 한 것은 맞다'는 취지로 이야기 했다. 또 자신이 석달윤이 '간첩한 것은 맞다'고 이야기 하기 위해 진화위에 오고 싶었다고도 이야기 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인수씨는 "'석달윤 등 간첩조작사건'이 조작되었다"는 1기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은 물론 법원의 무죄판결까지 아무런 근거 없이 부인했다. 그럼으로써 황씨는 고 석달윤씨 등 이 사건 피해자들의 명예를 또 한 번 중대하게 훼손했다. 나아가 중앙정보부(아래 중정, 현 국정원)의 과거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며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조작하려고 시도한 것과 다름없다.
석달윤씨는 "(지난 1980년 8월 중정으로) 연행된 첫날 양손에 수갑을 채우고 손과 발을 묶은 뒤 몽둥이를 끼워 책상사이에 매달리게 한 뒤 물고문을 당했다. 혐의사실을 부인하자 200~300와트 밝기의 전구를 눈앞에 켜놓고 전구를 계속해서 쳐다보게 했다. 전구를 계속해서 쳐다보니 정신이 빙빙 돌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밤새도록 추궁을 하면서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자게 했다. 25일부터는 담뱃불로 무릎 아래에서 발목 위까지 지져대기, 송곳으로 허벅지 찌르기 등 고문을 했다. 그러다 수사관들이 전선을 연결시키는 모습을 보고 전기고문을 당하면 정말 죽을 것 같아 모든 것을 시인하겠다고 했다. 그다음 날부터 자필진술서를 매일 오전과 오후에 한 벌씩 써내고 한 자라도 틀리면 사정없이 몽둥이세례를 받았다"고 훗날 진화위에서 진술했다(관련기사 : 믿을 수 없는 판결 내린 판사 여상규 https://omn.kr/1lpi7)
황인수씨는 이처럼 중정요원의 가혹한 고문에 못이겨 간첩이라고 '자백'한 석달윤씨 등이 '간첩이 맞다'고 진화위 직원들을 교육한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고 석달윤씨의 아들 석권호씨는 "진화위 망치러 온 황인수를 소송할 것"이라며 나서기도 했다. (진도간첩단 피해자 아들 "진화위 망치려 온 황인수...소송할 것").
진화위와 간첩 '만드는' 국정원을 헷갈리나?
물론 황인수씨의 발언들은 큰 물의를 일으켰고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은폐된 진실을 규명해서 지난 70여 년간 국가가 외면했던 한을 풀어주라고 여야가 특별법을 제정해서 만든 기관인 진화위의 역할을 국정원과 혼동하는 데서 온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 전문가들은 "진실화해위가 (국정원처럼) 간첩 잡는 기관인가?", "진화위가 설립 취지에 역행하여 직권을 남용하고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진실화해위가 간첩 잡는 기관인가요?" 과거사 전문가들 지적).
황인수씨의 문제는 그가 1기 진화위 조사결과를 부정하고 법원의 판결은 무시하며, 국가폭력의 피해자는 폄하하는 동시에 오히려 가해자를 두둔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황씨 과거사건을 또다시 왜곡·조작하는 국가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것뿐만 아니라, 진화위 조사관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면서 국가폭력 범죄를 부정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 진화위가 국회에 제출한 황인수의 인적 사항 마스크를 쓰고 국회에 출석할 당시 제출한 인적사항 기록이다. |
ⓒ 김성회 의원실 |
황인수씨럼 이렇게 편향된 사고를 가진 자를 다른 곳도 아닌 진화위 국장으로 채용한 진화위 위원장 김광동씨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광동·황인수씨는 그동안 진화위가 이룩한 진실과 화해를 위한 노력을 왜곡하고 되돌리고 싶은 것인가? 황인수씨의 주장처럼 대한민국에서 김정은에게 수만 명이 생일편지를 써 보냈다면 이미 여당과 국정원은 지난 총선에서 이를 마음껏 이용했을 것이다.
마스크맨 황인수… 국민적 웃음거리일 뿐
지난 6월과 7월 제22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황인수씨는 진화위를 또 한 번 희화화하고 조롱거리로 전락시켰다. 행안위 전체회의는 진화위 운영과 관련 국회의 협조와 신뢰를 얻기 위한 중요한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씨는 정당한 사유 없이 마스크 착용을 끝까지 고집함으로써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뜨거운 비판을 받았다. 결국 그는 마스크를 벗으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강제 퇴장당했다.
나는 지난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의문사위에도 지금의 진화위처럼 국정원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조용한 '투명인간' 같았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기억력이 흐릿하다.
하지만 황인수씨는 어떤가? 이른바 '국회 마스크 사건'으로 인해 황씨는 지금 '마스크맨'을 넘어 '아이언맨', '베트맨'으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고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황인수씨는 지금이라도 진화위를 떠나라
지난 8월 21일 진화위 야당 추천 위원들도 그동안 황인수씨의 기이한 언행과 관련해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은 요청서를 진화위 위원장에게 제출했다.
"결재권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조사관들에게 부당한 교육을 하고 국회에서 마스크 착용을 계속 고집하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황인수 조사1국장에 대해 위원장이 중앙징계위원회에 징계의결을 요구해야 한다."
그동안 1기 진화위의 진상규명을 부정하고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며 국가범죄를 정당화한 황인수씨의 언행은 더 이상 그가 진화위 조사국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인물임을 알려준다. 황인수씨는 진화위의 목적을 부정하는 지금까지의 망언을 머리 숙여 깊이 사죄하고 즉시 조사국장의 자리에서 사퇴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의 진화위가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지난 70여 년을 슬픔 속에 살아온 수백만 국가폭력 피해자 유족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 주며 감동을 주는 기구가 되길 기대해본다.
*글쓴이 김성수는 1기 진화위에서 국제협력팀장으로 일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뉴라이트 이영조(1955~) 위원장이 글쓴이가 번역한 진화위 영문보고서를 '영어가 엉망'이라는 이유로 배포금지 했다. 그러자 이영조를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으로 총 6천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2심과 대법원까지 6년간의 소송에서 승소해 이영조는 글쓴이 등에게 420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저서로는 국영문 <함석헌 평전>, <조작된 간첩들>,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이야기>,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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