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려달라"... 헌법재판소가 놓친 사실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 불립니다. 1987년 헌법개정을 통해 법률이나 국가 공권력의 작용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판단하는, 국민 기본권 보호의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6년간 유남석·이종석 소장을 거치며 헌법재판소는 다양한 결정을 내려왔습니다. 과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한 결정이었을까요? 202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는 소장을 포함한 3명의 재판관이 교체됩니다. 이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을 선정해 〈2019~2024 헌법재판소 특집 판결비평〉을 진행합니다. 변화의 시기, 과거 결정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헌법재판소에 요구되는 사회적 기대를 담아봅니다. <기자말>
[이영아]
일곱 번째 특집 판결비평은 "대북 전단 살포 금지에 대한 위헌 결정"에 대해 다룹니다. 헌법재판소는 위헌의 이유로 '표현의 자유 침해'를 들었지만, 위헌 결정 이후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생존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 접경지 주민들 인권은 없는 것이냐' 외치는 고통의 목소리를 외면한 헌재 결정,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영아 팀장이 비평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유남석(소장),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2023.9.26. 선고 2020헌마1724·1733(병합)
"연일 계속되는 대남 확성기 방송에 바로 옆 사람과 대화도 힘들어요. 밤에는 잠도 못 자 낮에는 피곤해서 농사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왔어요."
"정부는 '탈북자 인권 때문에 대북 풍선을 보낸다'고 하지만 우리 접경지 주민들 인권은 없는 것이냐. 추수철 농사일에 바빠도 언제든 북한으로 대북 전단 뿌리면 내가 막을 거예요."
접경지역 주민들이 연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밤마다 여우·들개·까마귀 등 동물의 울음소리부터 쇠뭉치를 긁는 소리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 심지어 귀신 소리 등 소름 끼치는 소리가 밤낮없이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9월 28일부터 현재까지 한 달가량 이어진 대남 방송으로 수면제와 진정제를 먹어봐도, 귀를 막아봐도, 고통스럽다며 "제발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북한은 왜 연일 대남 방송을 틀어 접경 지역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 용산 대통령실 앞. 접경지역 주민·시민사회 긴급 기자회견 |
ⓒ 참여연대 |
남북의 '풍선 전쟁'이 5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표현의 자유'라며,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서 묵인·방조하고 있다. 반면,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재개, 군사분계선 인근에서의 군사훈련 재개 등 강경 대응책만 내놓고 있어 접경지역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한반도 군사적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며 한반도 주민들의 불안은 커져만 가고 있다.
헌법재판소,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지난 2023년 9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일명 '대북 전단 금지법'이라고 불리던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남북합의서 위반행위로서 '전단 등 살포'를 금지하는 조항과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는 규정에 대해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 재판관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김형두 4인은 과잉금지원칙과 책임주의 원칙 위반, 유남석, 이미선, 정정미 3인 과잉금지원칙 위반으로 위헌의견을, 재판관 김기영, 문형배 2인은 반대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심판 대상 조항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를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대북 전단 등 살포 금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내용' 규제로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했다. 불법행위가 아닌 행위를 금지함에 따라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며 징역형과 같은 과도한 처벌은 과잉금지원칙에서 형벌권 남용으로 판단했다.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보장을 위해 신고제나 경찰권 행사를 통해 대북 전단의 살포 등을 제한하고,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경찰의 명령과 군의 통제를 거부하는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덜 침해적인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가 처벌 조항이 정하고 있는 형량에 대한 개정이 아니라 전단 등 살포 행위와 처벌 조항을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결정은 그동안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 관계에 미쳐온 영향이나 한반도에서 분쟁과 갈등을 유발해 온 요인이라는 사실,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어야 하는 생명과 생존의 위협은 외면한 것으로, 정부의 주장처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전단 살포 행위를 허용해야 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놓친 것들
첫째, 대북 전단 금지법은 전단 등 살포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지 전단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를 판단하여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남한 민간단체들은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전단 뿐 아니라 한국 가요와 드라마를 담은 이동식 저장장치, 정치적 표현이 없는 인도적 목적의 쌀, 달러 등을 풍선에 매달아 살포해 왔다.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러한 물품들을 풍선에 매달아 군사분계선 너머로 보내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어왔고, 해당 심판 조항은 이 행위 자체를 금지한 것이었다.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그러나 그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면 제한되어야 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둘째, 헌법재판소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전단 등 살포 징후가 포착되면 경찰공무원이 출동하여 상황을 파악하여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비공개로 이뤄지거나 경찰의 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단 살포가 강행되었던 경우가 빈번하여 사실상 제한에 한계가 존재해 왔으며,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정부의 전단 살포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남한 민간단체는 경기도 연천에서 전단 살포를 강행했으며, 이후 북한이 고사총을 발사하여 고사총탄이 연천에 떨어져 무력 충돌 직전까지 갔던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그 당시 연천 지역 주민들은 대피하고 민통선 출입이 한동안 봉쇄되면서 주민들은 공포와 불안감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2020년 6월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도 했다.
셋째, 헌법재판소가 제안한 신고제로는 대북 전단 살포를 제한하거나 금지하기 어렵다. 전단 등 살포에 대해 신고제가 규정된다면, 해당 신고제는 집회 및 시위에서의 신고제와 유사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다. 즉, 일정한 신고 절차만 밟으면 전단 등 살포는 가능하고 예외적인 경우 제한되도록 운영할 수밖에 없다.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휴전선 일대에서 전투 수단의 하나인 '심리전'을 민간이 수행하도록 정부가 허용하게 되는 것이다.
정전체제에서 전투 수단인 '전단'은 금지되어야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해 남북 관계가 급격히 경색되거나,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항공안전법' 등이 현행법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전단 살포를 제한하거나 단속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전체제 상황에서 전단은 개인의 표현의 자유 수단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적대행위는 중단되어야 하며,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는 전단 살포는 금지되어야 한다. 국회의 조속한 대안 입법이 시급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이 글의 필자는 이영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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