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상위 1천 명, 무슨 돈으로 4만 1721채 구입했나

남기업 2024. 10. 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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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세입자 전세자금대출, 다주택자와 전세사기 양산...민주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남기업 기자]

 아파트 값 상승폭이 다소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이 17일 발표한 '10월 둘째 주(14일 기준)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11% 오르며 30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아파트.
ⓒ 연합뉴스
놀라운 숫자다.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5년간(2019∼2023년) 아파트, 연립, 다세대, 단독 다가구 등 주택을 가장 많이 사들인 상위 1000명을 조사해 봤더니 약 4만 2000 채, 평균 42채를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돈은 얼마나 썼을까? 무려 6조 1475억 원이나 썼다. 1위 매수자는 5년간 793채를 사들였고 매수액은 1157억 9000만 원, 2위 매수자는 1150억 8000만 원을 투입해서 710채를 사들였고, 3위 매수자는 1080억 3000만 원을 써서 693채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약 44%에 달하는 무주택 가구 혹은 주거 취약계층엔 충격이다. 그럼 질문해 보자. 왜 자기가 살지도 않을 집을 저렇게 많이 사들인 걸까? 수백 채를 일년내내 순회하며 하루씩 머무르려는 걸까? 물론 아니다. 직접 사용할 집은 아무리 많아도 3채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왜일까? 우리는 알고 있다. 돈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위 1000명은 고민 끝에 '기대'에 근거한 '합리적 선택'을 한 것임을. 그 기대란 비트코인, 주식, 채권, 달러 등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 다시 말해서 앞으로 집값이 계속 올라갈 것이란 예상이다. 물론 보유하고 있을 때는 세입자에게 계속 늘어나는 임대소득도 기대할 수 있다.

세입자의 전세금과 전세대출이 주된 매입 자금

그러면 6조 원이 넘는 돈은 모두 자체 조달한 걸까? 아니다. 자기 돈은 일부일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 자금은 은행에서 빌린 걸까? 그것도 일부일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에는 한도가 있다. 금융기관은 갚을 수 있는 능력, 즉 소득을 보고 돈을 빌려준다. 더구나 다주택자에겐 주택담보대출이 더 어렵다. 부모님에게서 받거나 친척에서 빌린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도 일부일 것이다.

상당한 자금은 세입자의 전세금이다. 세입자의 전세금은 다주택자들에게 '무이자 대출'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 부담이 있지만, 전세금은 이자 부담이 없다. 다주택자는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 즉 갭(gap)만 메울 수 있는 돈만 마련하면 된다. 그러므로 다주택자에게 갭이 줄어들수록 좋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부터 갭은 점점 줄어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전세대출 때문이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처음에는 전세가 1억 원까지 대출해 주더니 점점 올라 지금은 수도권은 7억 원(지방은 5억 원) 전세의 90%까지 대출해 주고 있는데, 신기한 것은 전세대출 한도를 올릴 때마다 전세가가 따라서 올라갔다는 것이고, 따라서 전세가와 매매가의 갭은 계속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이 세입자에게 쉽게 대출해 준 이유는 뭘까? 세입자는 집이 있는 사람보다 신용도와 소득수준이 낮은데도 말이다. 그것은 세입자가 전세금을 못 돌려받는 사고를 대비해서, 은행의 관점에서 보면 전세대출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고를 대비해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라는 제도까지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로 은행은 전세대출금 미회수 염려가 사라졌고 그런 까닭에 은행은 안심하고 가능한 대출을 후하게 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세대출자인 세입자의 연 소득이 얼마인지 따질 필요도 없다. 전세자금 대출액은 은행이 세입자의 통장으로 입금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 통장으로 보내고, 전세 계약 만료 시 만약 세입자에게 대출금을 못 받으면 보증해 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받으면 된다. 전세자금 대출만큼 은행에 안전하고 좋은 대출 상품은 없을 것이다. 사고가 나면 HUG가 책임지니 말이다.
 서울 시내의 주요 은행 ATM 기기 2024.10.1
ⓒ 연합뉴스
2008년 0.3조 원이던 전세대출 잔액, 2023년 10월엔 161.4조 원

다주택자와 공인중개사는 또 어떤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은 수월한 전세대출을 내세워 세입자에게 고가 전세 계약을 유도한다. 전세금을 떼일 염려가 없는 세입자도 전세대출을 받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렇게 전세가는 올라가게 되고 전세가가 매매가에 붙으니, 즉 갭이 줄어드니 내 돈 얼마 안 들이고, 심지어 내 돈 한 푼도 안 들이고 세입자의 전세금만으로 집을 사는 게 가능해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니 전세대출 잔액은 급격히 늘 수밖에 없었는데, 경실련의 조사에 따르면 전세대출이 시작되던 2008년 0.3조 원이었던 전세대출 잔액이 2023년 10월에는 무려 161.4조 원까지, 그러니까 15년 동안 무려 538배나 늘어난 것이다(경실련 2024년 3월 20일 '전세자금대출 실태 분석결과 발표 기자회견'). 또 이 과정에서 전세사기 사건도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상위 1000명이 4만 2000 채를 사는 데 투입한 돈 6.1조 원의 상당 부분은 세입자가 은행에서 빌린 전세대출금인 것이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명목으로 대출해 준 전세금이 결국 다주택자들의 투기 자금으로 쓰이고 전세사기 피해자를 양산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주택가격 폭등에 중요한 원인이 되었으니 생각해 보면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지난 5년간(2009~2023) 다주택자 상위 1000명이 4만 2000채를 사들였다는 통계를 발표한 민홍철 의원이야 다주택자의 주택투기 현실을 고발하는 차원에서 자료를 생산·제공했을 테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전세대출 비중을 높이고, 다시 말해서 전세대출 규모가 폭증하는 법과 제도를 만든 정권은 문재인 정부다. 요컨대 상위 1000 명이 4만 2000 채를 사들일 수 있었던 원인의 최소한 절반은 민주당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매매가가 떨어지면 전세는 크게 줄어든다!

10월 들어서 거래가 줄고 매도 물량이 늘어나는, 결과적으로 집값이 하락하는 징후가 뚜렷한 지금, 4만 2000 채를 사들인 1000명의 맘은 어떨까? 타들어 갈 것이다. 후회가 마구 밀려올 것이다. 전세가도 동반 하락하니 계약이 만료되어 더 낮은 전세가로 세입자가 들어오면 차액만큼 대출을 받든지 아니면 자기 돈을 써야 한다.

그렇다. 4만 2000채를 사들인 상위 1000명이 노리는 것은 매매차익이다. 그들에겐 지금 가계부채가 GDP의 100%가 넘는 것, 그래서 소비가 위축되어 문을 닫는 가게가 느는 것은 관심 밖이다. 오직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신속하게 더 많이 내리고 시중은행은 더 낮은 금리에 주택담보대출을 많이 해주고 전세자금 대출도 더 쉽게 해줘서 소유한 집값이 계속 올라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이 현실이 되는 것은 망국의 길이다. 수도권 과밀 현상이 더 심해지는 길이다.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길이다.

한편 매매차익이 기대되지 않으면, 즉 집값의 변동성이 줄어들고 장기적으로 안정되면 전세제도는 어떻게 될까? 점차적으로 월세 혹은 보증부 월세로 전환될 것이다. 임대인은 매월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임대소득에서 이익을 얻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다주택자들의 수는 어떻게 될까? 줄어들 것이다. 왜냐면 임대인이 되려면 전보다 자기 돈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하고 기대되는 이익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나라에 다주택자가 선진국보다 많은 이유는 전세제도 때문이고 전세제도가 계속 유지된 까닭은 집값이 계속 올라갔기 때문이다.

전세대출 확대, 무주택 서민들에게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2008년 이후부터 계속 늘려온 전세대출 확대가 서민들에게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전세가를 올리고 투기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아 자신들의 주거 불안을 더 가중한다. 전세대출 확대는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부양책 성격이 짙고 지금 전세대출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도 현재의 주택가격을 떠받치기 위한 차원이 크다.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값이, 전셋값이 오르지 말아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정부가 갈 길은 분명하다. 공공임대주택을 꾸준히 늘리면서 민간임대주택 등록을 의무화하고 임대료를 규제하는 동시에 주거비 보조를 늘리는 방향에서 주거 정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한다. 이것과 동시에 집값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금융정책과 세제 정책도 마련하여 추진해야 한다. 물론 현 정부에서 이걸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오직 문제 해결 의지를 가진 유능한 정부가 들어섰을 때라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강조하고 싶다. 상위 1000명이 4만 2000 채를 매입했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하기보다 어떻게 그 돈을 마련했느냐를 생각해야 한다고. 그리고 연결고리를 추적하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간파해야 한다고.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주거 문제의 본질과 해법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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