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늙을결심] 은퇴한 손님들에게 "부럽다" 소리 듣는 아빠가 일하는 법

이혜란 2026. 4. 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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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을 결심] 이발사 아빠를 보며 일과 쉼을 생각하다

잘 사는 것은 웰빙, 잘 죽는 것은 웰다잉, 잘 늙어가는 것은 웰에이징이다. 100세 시대, 삶에서 가장 긴 구간을 웰에이징하기 위한 마음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선 지금, 후반부를 웰에이징하기 위한 결심들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이혜란 기자]

▲ 이발소 사인불 영업중을 알리는 이발소 사인불
ⓒ 이혜란
우리는 흔히 쉼을 일하지 않은 상태로 이해한다. 주 5일제와 워라벨, 충분한 휴식. 그러나 이 기준이 모든 세대에게 똑같이 느껴질까. 일과 쉼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6070 세대에게 쉼은 우리와는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다시 주6일제로 돌아온 아빠

올해로 아빠는 이발사 인생 50년이 되었다. 10대 시절부터 시작해 65세가 넘은 지금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이발사로 살아오고 있다. 매주 화요일이 휴무이고, 명절에만 쉰다. 여름휴가는 길어야 2~3일이다. 일 년에 대부분을 주 6일제로 일해 오시는 게 마음에 쓰여, 작년부터 계속해서 주 5일제를 아빠에게 권했다.

"아빠,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 쉬면서 일해요."

오랜 설득 끝에 올해 초, 아빠는 주 5일제를 시작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을 쉬는 날로 정하고, 안내문도 이발소에 붙여 놓았다. 처음 몇 주 동안 아빠는 그 변화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오전에는 헬스장을 다녀오고 점심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며 지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여유로움은 지루함으로 변해갔다. 한평생 밖에서 일해 온 사람으로서 집에 오래 머무는 것이 힘들었는지, 밖으로 나갔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비어있는 시간을 채우려고 일부러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는 순간들이 더 피로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결국 아빠는 다시 금요일에 이발소 문을 열기 시작했다. 멀리에서 온 손님들이 자꾸 금요일에 연락하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아빠의 표정은 밝다. 어느새 이발소에는 금요일 휴무 공지는 사라졌고, 다시 자연스럽게 주 6일제로 되돌아왔다.
▲ 이발소 공간 아빠의 이발소 안
ⓒ 이혜란
6070 여성들에게 사넬 미용실이 있다면, 남성들에게는 이발소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발소에서 자라왔던 나에게 사람이 가득한 공간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예약제가 일반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일단 앉아 기다리며 각자의 순서대로 이발을 받았다.

이발소에는 이발을 기다리는 손님, 이발 중인 손님, 이발 후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이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누구는 TV 뉴스를 들었고, 누구는 신문을 펼쳐 읽었고, 누구는 조용히 앉아 핸드폰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들면 항상 이야기가 넘쳤고, 대화가 그 공간은 메웠다.

시끌벅적하면서도 은근한 질서와 효율이 있던 곳. 그렇게 6070 장년 남성들에게 이발소는 일종의 사랑방이자, 동네의 작은 커뮤니티였다. 수십 년 동안 오랜 단골손님들이 있다. 그들 중에서는 다른 동네 혹은 지역으로 이사 간 분들도 꽤 있는데, 여전히 아빠의 이발소를 찾는다.

금요일에 이발소 문을 닫았을 무렵, 먼 곳에서 온 손님이 헛걸음하고 갔다는 소리를 뒤늦게 듣고는 아빠는 오래 미안해 하셨다. 일부러 이곳을 찾아준 이들이 허탈하게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불편한 듯 보였다.

아빠에게 이발소는 돈을 버는 일터이자 오랜 시간 단골손님들과의 관계를 이어온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사무실이며 동시에 휴게실이 된다. 일과 쉼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손님이 친구가 되는 그 모호한 경계가 분명히 그곳에 있는 것만 같다.

내 일을 즐기며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 이발소 풍경 아빠의 일하는 모습
ⓒ 이혜란
아빠는 지금도 매주 화요일이면 자전거를 탄다.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자신이 좋아하는 서너 시간의 코스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다. 손님으로 만나 친해진 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온다. 그 외 시간에는 병원을 다니거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이발소로 돌아가 다음 날 일을 준비한다.

"쉬는 게 뭐 특별한 거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데 가고, 먹고 싶었던 거 먹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루 잘 쉬고 일하러 가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한평생 일하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부모님 세대의 관성이라고 생각했다. 쉬는 법을 몰라서 쉴 줄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애잔했다.

그러나 요즘은 쉬는 것에도 저마다 각자의 방식과 기준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는 내 마음이 편해지고자 주 5일제를 강요하지도, 3일 이상의 여름휴가를 재촉하지도 않는다. 각자 삶의 방식에 따라 자신이 가장 편한대로 일하고 쉬는 것을 곁에서 바라볼 뿐이다.

요즘 아빠는 은퇴한 60대 손님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년 없이 본인이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는 기술직이라서 좋겠다는 것이다. 평생 해온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떤 이들에게는 부러움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한때 나는 파이어족을 꿈꾸며 경제적 자유를 통해 일에서 해방되는 삶을 꿈꿨다. 그런데 요즘은 진정한 의미의 파이어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파이어족은 단순히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게 아닐까.

매일 이발소로 출근하는 아빠의 발걸음을 기억한다. 그것이 의무이든, 습관이든, 혹은 관성이든 간에 분명한 한 가지는 느낄 수 있다. 아빠에게 일은 삶을 지탱하고 유지해 가는 힘이라는 것. '내 일'이 있기에 '내일'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내 일을 즐기며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문득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 수건들 이발소 마감을 알리는 수건들
ⓒ 이혜란
《 group 》 잘늙을결심 : https://omn.kr/group/well_aging_2026
인생의 중반부에 들어선 지금, 후반부를 웰에이징하기 위한 결심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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