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위해 왔는데..." 아이들 아플 때마다 전전긍긍

월간 옥이네 2024. 10. 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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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의료의 지금②] 면 단위 소아과 진료, 언제 가능할까요?

'필요할 때 언제든 병·의원에 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현대사회의 공통감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이나 성별, 직업,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농촌 의료의 지금을 조명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청성면의 모습.
ⓒ 월간 옥이네
"불편하죠. 안타깝게도 이 불편함도 점점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아프면 아이들을 누가 돌보지?' 이 생각하면 막막해요. 병원이 멀어도 제가 운전해서 가면 되지만 제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저 대신 해줄 사람이 없거든요. 그 점이 가장 걱정돼요."

동네의원, 약국,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처가 없는 충북 옥천군 청성면에서 해열제 하나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 성장기 어린이를 양육하고 있는 이라면 이런 상황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3년째 병원과 약을 찾아 청산면, 옥천읍은 물론 충북 영동군, 대전시까지 오가고 있다는 이지현(43)씨를 만나봤다

[면 지역 어린이 양육법 ①] 약 쟁이기
 충북 옥천 청성면 산계리 양육자 이지현씨.
ⓒ 월간 옥이네
커다란 나무가 반기는 청성면 마을 입구에서 청성초등학교 방향으로 죽 걸으면 보이는 분홍색 건물. 미용실을 알리는 알록달록한 회전 간판 아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머리 정돈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버스, 자전거를 타고 온 주민들로 가득하다. 그를 만나러 간 9월 11일은 추석을 앞두고 가족맞이 준비하는 주민들로 미용실이 한창 바쁠 때였다. 이지현씨가 청성면에서 유일한 미용실인 '지현헤어'를 운영한 지도 2년째다.

"자녀 교육을 위해 청성면으로 이주했는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미용실을 열었죠. 20년 넘게 미용 일을 했고 마침 마을에 미용실이 없어서 주민분들도 반겨주셨고요."

초등학교 1학년 오다은, 5학년 오정훈씨를 양육하고 있는 이지현씨는 3년 전 청성면으로 이주했다. 자연과 어울려 살고 싶다는 오정훈씨를 위해 전국에 있는 작은학교를 알아보던 중 "청성면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는 말에 경기도 양주시를 떠나오게 된 것이다. 오로지 자녀를 위해 선택한 일, 고민 없이 청성행을 결정했지만 부족한 생활 기반 시설이 청성에서의 삶을 고민하게 했다.

"1년쯤 지났을 때 아이들한테 다시 양주로 가자고 했어요. 장을 볼 수 있는 마트도 없고 배달 음식은커녕 그 흔한 편의점도 없어서 힘들더라고요.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집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이곳이 너무 좋다고, 엄마가 적응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빌딩 숲이 아닌 진짜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 좋다는 자녀들의 말에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주 초반 느꼈던 불편함은 점차 익숙해졌지만 '의료' 문제는 여전히 고민이다.
 충북 옥천 청성 보건지소.
ⓒ 월간 옥이네
"어릴수록 감기에 자주 걸려요. 감기가 아니더라도 이유 모를 열이 자주 나서 해열진통제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청성면은 병원뿐 아니라 약국도 없고 상비약을 판매하는 편의점도 없어요. 보건지소가 있어도 노인 인구가 많은 곳이라 어린이 약을 갖추지 않아요. 양주에서 살 때도 병원을 가기 위해 자동차로 20~30분 이동해야 했지만 주변에 약국은 있었거든요."

청성면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은 옆 마을인 청산면 소재지인 지전리, 자동차로 7분 거리에 있다.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옥천읍에서 장을 볼 때면 잊지 않고 약국을 들른다. 어렸을 때부터 모기 알레르기, 비염 등으로 병원을 자주 다니는 딸이 언제 열이 날지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상약을 쟁여둔다고.

"비상약을 살 수 있을 때 사 두는 편이에요. 그렇게 해도 필요한 순간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근처에 사는 학부모께 연락해서 약을 받아요. 응급실을 가더라도 최소 30분은 이동해야 하는데 그 사이 열이 더 오르지 않게 해열제를 먹이거든요."

[면 지역 어린이 양육법 ②] 병원 찾아 삼만리, 운전은 필수

활발한 성격 덕분에 자주 다치는 딸이 자주 찾는 곳도 응급실이다.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이면 "응급실이 집 같다"고 말할 정도.

"며칠 전에도 친구들과 놀다가 발목을 다쳤어요. 발등을 밟혔는데 인대가 늘어나서 뼈와 뼈 사이에 염증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청산면에 있는 동네의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다친 곳에 성장판이 있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옥천성모병원 응급실에 다녀왔죠."

가까이에 신뢰할 만한 진료 시설이 없기에 응급실을 찾을 일이 잦아진다. 처음엔 청성에서 가까운 영동군 내 한 병원을 다녔지만 병명과 상관없이 입원을 권하는 모습과 어린이를 대하는 직원의 무관심한 태도에 발길을 끊었다.
 충북 옥천 청성면 어린이행복센터.
ⓒ 월간 옥이네
"병원이 몇 개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갔는데 서비스 질이 떨어져서 멀지만 다른 병원을 찾게 되더라고요. 옥천성모병원 응급실을 자주 가는데 거기도 어린이 약이 없어요. 줄 수 있는 약이 해열진통제밖에 없다면서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할 때가 많아요.

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마다 처방하는 약이 달라서 아이에게 맞는 약이 있을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고요. 그래서 이제는 대전으로 나가요. 아이에게 맞는 약을 찾다 보니 더 멀리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최근 이지현씨에게 한 가지 고민이 더 늘었다. 아들에게 찾아온 질병 때문이다.

"웬만해선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는데 어지럽다고 먼저 병원을 가자고 하는 거예요. 너무 놀라서 급하게 영동에 있는 응급실로 갔죠. CT 결과가 괜찮다고 해서 돌아왔는데 다음날 병원에서 빨리 오라고 연락이 온 거예요. 머리에 혹이 있다면서요."

MRI 정밀검사 결과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뇌하수체 쪽에서 혹이 발견됐다. 더 커질 경우 수술을 받아하는 상황. 6개월 뒤 재검사 후 혹의 크기를 보고 수술을 결정하기로 했다.

"어지러운 건 괜찮아졌는데 6개월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긴장 상태예요. 혹이 커지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내년 2월에 있을 재검사는 대전에 있는 병원에서 받을 예정이다. 매번 진료를 위해 멀리 이동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남편은 경기도 안산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제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부탁할 이도 없을뿐더러 대중교통도 취약한 곳이어서 '내가 없으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 들어요."

이지현씨는 지난 6월 손목 염증 수술을 받았다. 20년 넘게 가위를 잡으면서 손목에 탈이 난 것이다. 쉬어야 낫는 병이지만 놓을 수 없는 일에 고통이 지속되자 더욱 생각이 많아진다는 그다.

이지현씨는 여러 걱정에도 청성면을 떠나고 싶지 않다는 자녀들의 의견에 따르고 싶다. 양주에 살 때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셋째도 생각하게 된다. "가능하다면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이가 있어 예전보다 더 많은 진료가 필요할 거다"라고 이웃이자 단골손님인 박숙자(58)씨가 말한다. 10년 전 청성면 묘금리로 이주한 박숙자씨도 여성 질환 진료를 받기 위해 옥천읍에 있는 의원을 찾았지만 서비스의 질이 만족스럽지 않아 대전에 있는 산부인과를 다니고 있다.
 충북 옥천 청성면의 모습.
ⓒ 월간 옥이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기준 충북 지역 소아청소년과(전국 2185개)는 총 56개, 산부인과(전국 1316개)는 총 36개이다. 그중 옥천에 있는 의원 수는 각각 1개뿐이다.

그나마도 의료 서비스의 질을 따지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지역으로 '의료원정'을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이들. 의료취약 지역 주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옥천군이 민간병원과 연계해 실시하는 '찾아가는 희망병원 의료봉사'가 와도 검진받을 생각을 버린 지 오래다.

"의료봉사가 와도 노인 대상으로 한 검진이 주라서 어린이 약이 없어요. 또 검진받는 어르신이 많다 보니 저처럼 학부모나 어린이가 진료받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어요. '젊은데 어디가 아프냐'는 그런 분위기요. 차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이동하는 데 자유로우니까 양보하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요."

청성면으로 이주한 지 3년째, 걱정 많은 이 생활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청성면에서 뿌리내리고 싶은 마음이 큰 만큼 기본적인 생활 기반 시설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저희처럼 교육이주 온 가족이나 오고 싶어 하는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의료, 복지, 문화 시설은 당연히 없는 것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농촌에 가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요. 당연한 건 없는데 말이죠.

최소한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원이나 아파도 참지 않고 바로 진료 볼 수 있는 병원이요. 그래야 아이들의 바람처럼 고민 없이 마을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월간옥이네 통권 88호(2024년 10월호)
글 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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