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자유, 또 자유'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착각 [소셜 코리아]

정승일 2024. 10. 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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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선택의 자유'는 허울... 불평등 사회, 개인의 합리적 선택은 '비혼+무자녀'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정승일]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기획하고 예산을 투입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주요 국정 연설마다 '자유, 자유, 또 자유'를 외치는 열혈 자유주의자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가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까?

'자유로운 개인'이 가진 '선택의 자유'는 자유주의 사상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목표이며 또한 밀턴 프리드먼 등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그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경제 제도가 자유 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라고 말한다.

오늘날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궁극적 주체는 가임기 여성 즉 주로 20~30대 여성이다. 이들은 '선택의 자유'를 가진 '자유로운 개인'이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 종에게 출산과 양육은 절대로 개인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30만 년 간의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 아이들 양육과 돌봄은 종족 또는 부족 전체의 공동 과업이었다. 농업과 문명이 시작된 이후에도 그것은 마을공동체와 대가족공동체가 분담하는 공동의 과업이었다. 여성인 엄마 혼자서 아이 낳고 키우는 '독박 육아'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장 자본주의를 실체로 하는 근대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마을공동체가 해체되고 동시에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핵가족이 1인가구로 해체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사태이며 그것이 바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요구이기도 하다.

출산·양육, '선택의 자유' 목록에 없어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아산홀에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주제로 열린 2024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자유주의의 궁극적 가치(value)인 '단독자로서의 개인'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일체의 연고와 연대, 즉 전 근대적 연고주의(혈연, 지연, 학연 등)가 해체되니 오로지 '단독자로서의 자유로운 개인'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단독자 개인은 과연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을까?

물론 일부에게는 그게 가능하다. 재산과 소득이 많은 부유층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필요한 조건과 환경을 돈으로 구매하면 된다. 유모와 보모, 가정부 등을 채용하고 아이를 비싼 유치원 등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돈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출산·양육이 불가능하니 그것을 포기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요즘 한국의 2030 청년들 특히 여성들에게 실제 일어나는 일이다. 이들에게 출산과 양육은 '선택의 자유' 목록에 없다. 즉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란 허울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비혼 + 무자녀'라는 삶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즐겨 말하는 합리적 선택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0년에 제4차 저출산·고령화 대응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 계획에는 우리나라의 인구정책에서 획기적인 대전환이 담겨 있다. '출산율 회복'이 이 제4차 계획의 공식 목표 범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출산은 국가가 요구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출산·양육의 궁극적 주체인 여성·청년들의 자발적·개인적 선택(즉 선택의 자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지한 것이다.

제4차 계획에서는 정부·국가 인구정책의 공식적 목표가 '출산율 회복'에서 '삶의 질 개선'(불평등 완화 포함)과 '성평등'으로 바뀌었다. 즉 국민들 특히 청년과 여성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성평등을 달성할 경우, 청년과 여성들은 아이 낳아 키우는 것을 선택 가능한 여러 옵션 중 하나로 여기게 되어 '선택의 자유'의 폭과 내용이 크게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이다. 달리 말해서 '실질적인 선택의 자유'를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허울만 남은 '형식적인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2023년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연간 1874시간이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122시간 길고, 독일(1350시간)에 비해서는 524시간(66일의 근무일)이나 길다. 삶의 질 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 워라밸(일-생활 균형)이며, 이에는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이다. 육아분담과 가사분담의 성평등을 위해서도 사회적·공동체적 육아·돌봄 인프라 구축과 함께 육아·가사 시간의 충분한 확보가 엄마 아빠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한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으로 증가하는 여유 시간이 모두 육아·돌봄을 위한 시간은 아니다. 요즘 청년·여성들은 여행과 문화예술, 스포츠 등 여가 생활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그것은 선진국(한국 역시 OECD 선진국이 되었다!)의 2030세대에 공통적인 모습이다.

비상사태라며 주 52시간제 허물려 해
 육아·가사 시간의 충분한 확보가 엄마 아빠 모두에게 필요하다.
ⓒ 셔터스톡
스웨덴의 알바 뮈르달은 1930년대에 심각했던 스웨덴 인구감소 위기의 해법 중 하나로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제안했다. 그것 없이는 아빠들이 일찍 퇴근해 아이들을 돌봐주며 함께 놀아줄 수 없으며, 따라서 여성들은 아이를 낳을 엄두를 못 낸다. 또한 그 경우 아빠들은 가정에서 '잊혀진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아버지들이 은퇴 후 식구들 사이에서 퇴물, 꼰대 취급받는 현상과 동일하다.

뮈르달은 어린이와 아빠들을 위해, 즉 가정의 행복을 위해 하루 6시간 노동을 제안한 것이다. 하루 6시간 노동은 또한 세계적인 인구·돌봄 경제학자인 미국의 낸시 폴브레가 요즘 주창하는 바이기도 하다.

자유는 여유이고 여가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형 삶의 질의 핵심이 워라밸, 즉 충분한 여가시간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2030세대가 가장 반가워한 공약이 '주4일 근무제'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들이 요즘 비판받지만 주 52시간 근무제는 2030세대에서 여전히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에 반해 인구 위기 관련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는 주 52시간제를 허물려고 하고 부자감세와 긴축재정을 감행한다. 그 경우 일부 부유층과 상위 중산층 청년·여성들에게는 출산과 양육에 더욱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겠지만 대다수 청년·여성들은 거기서 소외될 것이니 불평등은 더욱 커질 것이고, 총출산율 역시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정승일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 정승일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승일은 베를린자유대학교 정치경제학 박사이며, 2007년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창립을 함께한 멤버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은행·대기업 해외매각과 민영화, 금융·자본시장 완전개방과 주주자본주의화 등 '시장 개혁'을 시종일관 비판했습니다. 그 경험과 견해를 담아 장하준 교수와 함께 <쾌도난마 한국 경제>를 출간했습니다. 또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 ·이종태 공저), <굿바이 근혜노믹스_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에서 새로운 경제민주화론과 복지국가론을 제시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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