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체크 스윙을 정의하자.

얼마 전, 염경엽 감독이 체크 스윙 스트라이크 여부를 2025 시즌부터 비디오 판독에 포함을 시키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디펜딩 챔피언 팀의 감독이 공론화 시도를 했음에도 이후 리그 경기에서는 오심으로 봐도 무방할 장면들이 속출했습니다.
캡쳐 화면 한 장 보고 가시죠. 그리고 질문 드리겠습니다.

사진 SBS스포츠 중계 화면 캡쳐.

위 캡쳐 화면은 제가 중계방송 했던 지난 8월 22일, 롯데와 기아의 경기 8회말 무사 주자 1,2루에 나성범 선수의 타석입니다. 8회말에 기아가 5:4로 역전에 성공을 한 이후, 2-2 카운트에서 나성범 선수는 스윙을 체크했습니다.

여러분. 위 캡쳐 화면의 나성범 선수의 배트는 돌았나요? 돌지 않았나요?

정답을 말씀을 드리면
"스윙 여부는 오직 심판만 답을 알고 있다."입니다.

사실 이는 중계방송을 통해서도 수년에 걸쳐 수차례 말씀을 드린 내용입니다.

'야구 세계'에는 이와 관련한 규칙이 없습니다.

체크 스윙(check swing) 혹은 하프 스윙(half swing)이 완전한 스윙이 이뤄졌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지 심판의 눈과 심판의 의사입니다.
이는 KBO, NPB, MLB 등. 야구 규칙이 성문화 되어있는 모든 프로리그에서 똑같습니다. MLB도 NPB도 하프 스윙의 어디까지가 스윙이 인정이 되고, 어디까지가 스윙이 아닌지를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심판의 눈과 심판의 마음에 맡깁니다.

위의 장면은 나성범 선수의 배트가 충분히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스윙이 이뤄졌는지 아닌지는 오직 주심과 3루심만 압니다. 이 경기의 주심은 위 장면을 스윙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롯데의 손성빈 포수는 3루심에게 스윙 여부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는 손짓을 보냈습니다. 3루심도 스윙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볼카운트는 3-2가 되면서 다음 타격 기회를 얻은 나성범 선수는 적시타를 때려냈고 기아 타이거즈는 리드를 두 점 차로 벌릴 수 있었습니다.

즉, 위 캡쳐 화면에서 나성범 선수의 배트는 돌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돈 것처럼 보이지만 심판이 돌지 않았다고 판정했으므로 돌지 않은 겁니다. 불합리해 보여도 그게 야구입니다.

그렇다면 야구의 불합리함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왜 없겠어요. 있습니다.

우리가 스윙 여부를 먼저 규정하면 됩니다.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 야구계에서 앞서가는 움직임을 여러차례 보여줬고 이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기 때문입니다.

  • KBO는 지난 2022년 시즌 중에 내야 타구에 대한 페어와 파울도 비디오 판독 대상에 포함 시켰습니다.
  • 2024년 PTS를 활용해서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를 시도했고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만 하더라도 이미 KBO는 세계 야구계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아무도 따라오지 않더라도 옳은 길이었다고 생각하고요.
만일 리그도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꿋꿋하게 가면 됩니다. 체크 스윙 혹은 하프 스윙을 정의하는 작업도 위와 맥을 같이 하는 옳은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저는 이를 위해 혹시 하프 스윙을 규정하는 있는 리그는 없는 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야구공작소의 이금강 님께서 작성했던 게시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이금강 님의 체크 스윙 관련 칼럼도 공유합니다. 이금강 님은 비교 야구학을 추구하시는 분으로 아래 링크의 글을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하프 스윙의 스윙 여부를 유일하게 규정하고 있는 미국 대학 리그 NCAA 룰 원문은 이렇습니다.

"SECTION 39. An attempt by the batter to stop the forward motion of the bat while swinging, which puts the batter in jeopardy of a strike being called. The half swing shall be called a strike if the barrel head of the bat passes the batter’s front hip. This does not apply to a bunt attempt when the batter pulls the bat back."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굵게 이탤릭체로 표시한 부분입니다.

야구공작소에서는 '만약 배트의 배럴 끝이 타자의 골반 앞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다.'라고 간결하게 번역했습니다. 배럴 끝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배트 헤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골반 앞'은 우타자에게는 왼쪽 골반, 좌타자에게는 오른쪽 골반에 해당합니다.

저는 국내 전문가들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야구 중계방송 4개사의 해설 위원들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하프 스윙이 스윙으로 인정되는 경계선은 어디까지인가와 이 사항을 비디오 판독에 포함 시키는 것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물었습니다. 아울러 NCAA룰에 대한 생각도 확인을 해봤습니다.
이택근(SBS스포츠), 박재홍(MBC스포츠+), 박용택(KBSn스포츠), 서재응(SPOTV) 위원이 의견을 줬습니다.

먼저 MBC스포츠+ 박재홍 위원은 NCAA룰보다 조금 더 타이트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배트 헤드가 뒤쪽 골반을 통과하면 스윙이 인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스윙 과정에서 골반은 먼저 돌아가고 앞 골반과 뒷 골반이 거의 평행을 이루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뒷 골반이 기준이 되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디오 판독은 실시하되 제한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 3스트라이크에 대해서만 체크 스윙 판독요청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에 모든 볼카운트에 요청을 할 수 있게 되면 경기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KBSn스포츠 박용택 위원은 몸통 스윙 여부도 중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솔직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걸 배트의 움직임만 볼 것인지, 아니면 몸통도 같이 봐야 하는지, 몸은 완전히 돌았는데 배트는 안 도는 것은 괜찮은 것인지. 이런 문제 때문에 심판위원들도 매우 어려워하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NCAA와 같은 룰로 정해질 경우는 어떨 것 같느냐는 질문에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만일 그런 식으로 정해진다면 납득을 할 것 같고, 비디오 판독 역시 가능할 듯 합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SPOTV 서재응 위원은 NCAA의 룰과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배트의 헤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준점은 저는 타자의 앞쪽 무릎을 잡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디오 판독 포함 여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습니다.
"경기 흐름이 끊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저는 판독에는 포함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SBS스포츠 이택근 위원은 가상의 선을 놓고 생각했습니다.
"간단합니다. 홈 플레이트 앞쪽의 선을 놓고 봤을 때 그 선에 평행 할 때까지는 배트가 안 돈 것이고, 거길 넘으면 돌았다고 판단하면 됩니다."
비디오 판독 여부는 환영이었습니다.
"기준이 정해지면 홈런 판독처럼 횟수에 포함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보시다시피 스윙 여부에 대한 기준은 4인 4색임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박재홍 위원은 뒤쪽 골반, 서재응 위원은 앞쪽 무릎, 이택근 위원은 배트의 평행 여부, 박용택 위원은 스윙의 의사도 중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모두가 스윙과 노 스윙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심판 위원들의 기준도 매번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강철 감독은 며칠 전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의 교차 여부도 봐야한다는 위 해설위원들과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모든 관계자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인 공론화가 필요하고 의견을 교환할 시기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다가오는 스토브 리그에 KBO가 이런 모든 의견을 종합해서 먼저 체크 스윙의 스윙과 노 스윙의 여부를 정의하는 건 어떨까요?
비디오 판독 포함 여부는 일단 룰이 정해지고 나서 정할 문제고요.

체크 스윙의 스윙, 노 스윙 여부를 룰로 정하지 않은 것은 심판의 권한을 극대화하려는 오랜 야구의 관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KBO의 경우는 대표적인 심판 재량권에 해당했던 스트라이크 존의 설정 또한 ABS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룰을 정한다고 이에 대한 심판 재량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ABS가 심판과 선수, 심판과 지도자 사이의 감정싸움을 없앴던 것처럼 체크 스윙의 스윙, 노 스윙의 룰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도 오히려 심판 위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로 돌아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


미국과 한국에서 체크 스윙의 표현 차이는?
국내에서 체크 스윙이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990년대 중후반 ML 중계방송이 본격화되고 나서 입니다.
미국 캐스터들이 타자들의 하프 스윙을 놓고 '스윙을 체크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을 우리 나라의 당시 젊은 캐스터들이 '체크 스윙'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과는 반대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중계방송에서 체크 스윙은 '타자가 스윙을 체크한다'라는 뜻으로 나가다 제대로 배트를 멈췄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체크 스윙은 '타자가 체크 스윙을 했다'라는 의미로 '체크 스윙 삼진'이라는 콜로 더 자주 쓰이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