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빠, 빠방 콰광"…'역주행 참변' 아빠를 꿈에서 찾는 2살
" 아빠, 빠방 콰광. "
두 살배기 아들은 아빠 이모(33)씨가 없는 방에서 매일 밤 소리치며 깼다. 한 달여 전 강원도 영월 역주행 참변에 가장을 떠나보낸 가족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다. 이씨는 지난달 15일 가족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강원도 태백의 부인 안모씨의 할머니댁으로 향하다가 음주운전 역주행 차량에 변을 당했다. 당시 차량에는 이씨의 딸(4)과 아들(2), 부인, 장인·장모가 타고 있었다. 골절된 갈비뼈가 폐를 찔러 큰 수술을 한 장모와 허리 골절을 당한 장인은 중환자실 신세를 졌다. 부인 안씨는 사고 충격으로 기억을 잘하지 못하고 왼쪽 손목이 잘 움직이지 않는 증세가 생겼다.
사고 직전 이씨는 조수석에 타고 있던 장인과 그룹 H.O.T의 ‘캔디’를 부르고 있었다고 한다. 안씨는 “노래를 부르던 남편이 갑자기 소리를 질러 앞을 봤을 땐 이미 차가 산산이 조각나고 있었다”며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사고가 나서 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고 직후에도 가족의 상태를 걱정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안씨는 “남편이 다리가 끼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도 ‘괜찮냐’, ‘내가 미안하다’고 했다”며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뭐가 그리 미안했을까”라며 눈물을 삼켰다.
이씨는 항상 가족이 먼저인 가장이었다. 명절이면 매번 부인의 할머니댁을 찾아 시간을 보냈다. 안씨는 “추석 때 남편이 가족과 함께 갈 맛집도 찾아두고 아이들과 바다에서 물놀이할 생각에 얼굴에 웃음꽃이 폈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사고 이틀 전 인천 영종도에서 서울 마포구로 이사한 것도 이씨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씨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바버샵에서 6년간 일했다. 안씨는 “남편이 늦게 일이 끝나고 영종도까지 퇴근하면 아이들이 잠들 시간이라 아쉬워했다”며 “(이씨가) 하루하루 커 가는 아이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해 이사를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사고 전날에도 오후 8시까지 일하다가 퇴근했다고 한다. 6년 동안 함께 일한 동료는 “(이씨는) 항상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고 기술도 뛰어나 예약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건 지난달 16일 오전 1시 27분쯤 영월군 국도 38호선 영월2터널에서였다. 이씨가 몰던 카니발 승합차가 역주행을 하며 달려오던 셀토스 승용차와 정면충돌했다. 경찰 조사 결과 역주행 운전자 A씨(22)는 현역 해병대 부사관이었다. 사고 전 지인들과 모임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치(0.08%) 이상이었다고 한다. A씨도 사망하면서 경찰은 관련자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군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방침이다.
음주운전 사고로 가정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사례는 계속 반복된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만취한 안예송(23·DJ예송)씨의 벤츠 차량에 50대 가장인 오토바이 배달원이 숨졌다. 지난해 4월 울산 남구 삼산동에선 20대 남성이 음주운전 후 몰던 차량에 취직한 지 3개월 된 어린이집교사가 치어 숨졌다. 손명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 8월까지 발생한 고속도로 역주행 사고로 총 16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입었다. 역주행 사고 원인 중 1위는 음주운전(14건)이었다.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고 양형을 현실화하도록 법령을 개정하는 등 적극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일반 음주운전 사고에 적용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형량은 특가법상 위험운전에 비해 낮다. 현행법상 일반 음주운전 사고를 낸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특가법 위험운전치사죄가 적용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정경일 변호사는 “현재는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수준에 달해야만 특가법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며 “그 이하의 수치에도 높은 양형 기준을 적용하도록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park.jongsu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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