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주거 사다리, 빌라 시장이 무너진다

전세 사기 대란 후유증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34)씨는 최근 아파트 월세 계약을 했다. 월세가 부담이긴 하지만 전재산 2억5000만원으로는 빌라 전세가 최선인데 사기를 당할까봐 두려워서다.

작년 하반기부터 인천과 서울 강서구를 시작으로 빌라(다세대·연립주택) 전세 사기가 이어지면서 빌라 시장이 붕괴 위기에 빠졌다. /사진=게티

작년 하반기부터 인천과 서울 강서구를 시작으로 빌라(다세대·연립주택) 전세 사기가 이어지면서 빌라 시장이 붕괴 위기에 빠졌다. 빌라 기피 심리가 번져 매매·전세 모두 거래량이 20% 넘게 줄었고, 신규 인허가도 작년 1만1620가구(서울)에서 올해 2948가구로 4분의 1토막이 났다.

14일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서울 빌라 전세 거래량은 5만3674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3% 줄었다. 전세 사기 공포에 월세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면서 전·월세 거래 중 전세 비율은 2020년 70%에서 올해 53%로 급락했다.

빌라는 서민을 위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다. /사진=게티

임차인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빌라를 사고파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전국 빌라 매매 거래량은 올해 9월까지 6만3814건으로 2년 전(17만2305건)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빌라 신규 시장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빌라 인허가가 2021년(1~9월 기준) 4만6731가구에서 지난해 3만2609로 급감한 데 이어 올해는 1만1726가구에 그친다. 이어진 고금리와 물가 상승으로 주택 경기가 침체돼있는데 빌라는 전세 사기 때문에 상황이 더 심각한 것이다.

빌라는 서민을 위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다.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가 빌라에서 전세로 머물며 내 집 마련을 위한 돈을 모을 때까지 머물곤 했다. 서민이 빌라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결국 대출받아 아파트 전세를 구하거나 월세로 사는 것인데, 둘 다 주거비 부담이 커 자산 형성에 걸림돌이 된다.

빌라 기피는 즉 아파트로 수요가 몰려 부동산 양극화가 심화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아파트 전세 가격과 매매가격까지 올라가면 서민과 청년층 집 마련은 더 어려워진다.

지난 6월 전세사기 피해 신청을 접수하기 시작한 6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매달 1000건 이상의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피해 신청은 1만건(1만543건)을 넘었고,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피해자로 최종 확정된 사례가 6063건(9월 기준)에 이른다. 연령별로는 20대(21.5%)와 30대(48.2%)가 약 70%를 차지했다.

정부는 올해 들어 전세 사기 예방 장치를 강화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규모 전세 사기가 새로 생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매매가격과 같거나 높은 가격에 전세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빌라 수백 채를 사들이는 ‘무자본 갭 투기’를 막기 위해 올해 5월부터 보증금이 매매 시세의 90%를 넘는 집은 보증보험을 발급하지 않고 있다. 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안심 전세 앱을 통해 악성 임대인 정보가 공개되고 있어 세입자 스스로 전셋집의 위험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빌라 공급 위축이 장기화하면 서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미등록 임대인 등록을 높이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