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논리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도 간첩"

이필립 2024. 9. 2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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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보안법 폐지' 외길 걷는 장경욱 변호사 "국보법 본질은 가스라이팅"

[이필립 기자]

반국가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으니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여야 한다.

8월 19일 국무회의 중 윤석열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지난 2년간 윤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언급한 '반국가세력'의 의미는 주체사상파에서 문재인 정부와 야권으로, 윤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과 시민으로 확장됐다.

"반국가세력이라는 말은 국가보안법(국보법) 중 반국가단체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것 같아요. 국민의 지지를 못 받으니 불안과 공포를 통치 기반으로 삼겠다는 거죠."

장경욱 변호사는 극우 정권이 재집권을 위해 없는 간첩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국보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피의사실 공표, 자의적 수사, 수사 과정에서의 부당한 압력 행사 등 검찰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19일 서울시 서초구에 있는 장경욱 법률사무소에서 장 변호사와 인터뷰했다.

영부인이 갖고 있다가 버린 책
 윤석열 부부가 거주했던 아크로비스타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에서 발견된 최재영 목사 저서
ⓒ MBC뉴스 유튜브 갈무리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불기소 결론을 내렸다. 김 여사에게 명품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는 2018년 온라인 매체 <프레스아리랑>을 창간했다. 경찰은 지난 7월 <프레스아리랑> 편집자의 자택을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반국가단체 표현물을 소지하면 국보법 7조 5항에 따라 처벌된다. 윤 대통령 부부가 대통령 관저로 옮길 때 버린 책 중엔 <북녘의 종교를 찾아가다>, <평양에선 누구나 미식가가 된다> 등 최재영 목사의 저서가 있었다.

- 최재영 목사가 창간한 <프레스아리랑>이 국보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국보법의 위험성을 김건희 여사가 몸소 보여주려나 봅니다. 최 목사가 정말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면 그의 저서를 갖고 있던 김 여사는 어떻게 되나요? 마찬가지로 국보법 7조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영부인을 간첩으로 몰자는 말은 아닙니다. 이적(利敵) 표현물이라는 개념이 없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남북이 서로 소통하려는 시도를 국보법으로 막아버리는 건 문제입니다."

- 이번 수사로 최 목사가 형사 처벌을 받게 될까요?

"최 목사가 미국인이고 <프레스아리랑>이 미국 매체이지만 그의 활동지가 한국인 걸 고려하면 처벌은 가능합니다. 형법이 속인주의와 더불어 속지주의를 적용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 파장은 크지 않을 겁니다. 궁지에 몰렸을 때 상대에게 종북 낙인을 찍는 수법은 너무 뻔하니까요."

국보법의 본질은 가스라이팅
 19일 서초구에 위치한 장경욱 법률사무소에서 장 변호사가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 이필립
그는 25년째 국보법에 관련된 시국 사건을 맡아왔다. 일관되게 국보법 폐지를 주장했고, 2022년에 국보법 위헌법률심판제청 및 헌법소원의 공개변론에서 "국보법이 기본권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국보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국보법의 토대는 분단과 냉전입니다. 이 구도가 무너지지 않는 한, 이 법은 없어지기 어려워요. 애초에 냉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죠. 북한에 호기심만 보여도 바로 잡아가 버리니 시민들은 점점 위축됐어요. 남북이 서로 잘 알지 못하면 남는 건 공포와 적대감뿐이죠. 그 적대감이 다시 국보법의 필요성을 강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게 가스라이팅이 아니면 뭐겠어요?"

- 일반 시민은 국보법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전처럼 대학생이나 시민을 잡아 가두는 일은 줄었죠. 근래에는 탈북자를 간첩으로 몹니다. 남한의 법 체계에 익숙지 않고 도와줄 사람도 없어 무방비로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시민단체나 노조 활동을 하는 분을 간첩으로 엮는 경우도 있고요. 잡혀가야만 국보법의 피해를 보는 건 아닙니다. 우리의 사고와 활동은 이미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어요. 오래 가스라이팅 당해 자기 검열이 몸에 배다 보니 불편을 느끼지 못할 뿐이죠."

- 진보 정부를 세 번 거치면서 국보법 문제가 완화되지는 않았습니까?

"정권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부 사례에서 보듯이, 정부로서는 국보법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자살 행위예요. 시민들은 관심이 없는 반면, 극우 세력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주제니까요."
<사랑의 불시착> <강철비2> 고발
손예진과 현빈이 주연한 2019년 작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북한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고발 주체는 전광훈 목사가 대표로 있는 기독자유당이다. 같은 해 영화 <강철비2>는 잘생긴 배우(유연석)가 김정은 역을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 그럼 국보법 문제의 해법이 뭐라고 보나요?

"국보법의 토대를 이루는 분단과 냉전이 해소되는 게 우선입니다. 지금은 남북 간 대립과 갈등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지만, 어느 시점에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시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국보법 문제도 해결될 겁니다. 그때까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변론을 계속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적' 변호사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와 그의 변호인단이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담당 국정원 수사관과 검사를 고소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장경욱 변호사. 2019.2.13
ⓒ 연합뉴스
장 변호사는 경북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민변에서 국보법 사건을 전담해 왔다. 지금은 '간첩 사건 전문 변호사', '문제적 검찰이 만든 문제적 변호사' 등의 수식어가 그를 따른다.

- 어쩌다 국보법 전문 변호사가 됐나요?

"제가 대학 다닐 땐 대학생 양심수가 많았습니다.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인권위원장을 지내면서 민변 변호사들과 연락할 일이 많았죠. 학생운동에 열중하느라 학부 때 사법고시를 준비하지는 않았어요. 졸업 후 1년 반 동안 진로를 고민하면서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 일관성 있는 삶에 대해 생각했죠. 뜻이 선 다음에야 시국 사건을 도맡아 하던 선배 변호사들을 본보기 삼아 공부했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이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요?

"2013~2015년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죠. 허위 자백을 받아내려 피고인의 동생을 감금·폭행하고, 검찰이 중국 공문서를 조작하는 등 우리나라 사법 체계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 2013년 4월 기자회견을 통해 탈북자 고문과 간첩 조작을 폭로했을 당시엔 회의적인 시선을 받았다고요.

"2000년대 들어서는 우리나라가 인권 사회가 됐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고문이나 간첩 조작이 있는 게 말이 되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어요. 저는 사상의 자유가 없는 인권 선진국도 있냐고, 탈북자를 감금해 조사하는 고문 시설(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구 중앙합동신문센터)이 있는 인권 선진국이 어디 있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 그런 시선이 지금은 달라졌나요?

"2015년에 대법원 무죄가 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전엔 사람들이 '조작'이라는 말 쓰길 꺼렸어요. 지금은 의혹이 있을 때마다 여기저기서 꺼내는 단어가 됐죠. 조작이란 말에 저작권료라도 받아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웃음)"

국보법 외길을 걷다
 장경욱 변호사는 국보법 외길을 걸어왔다.
ⓒ 이필립
그는 '동네 사람'을 돕는 '동네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그의 상담 책상 위에는 "상담료는 받지 않습니다. 대신 이곳에 기부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과 결식아동지원단체, 청소년 쉼터 등의 계좌번호가 있었다.

"변호사 업계엔 무료 상담이 더러 있어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남다른 개업을 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이웃들이 있는 봉천동에 사무실을 내보자고 생각했죠.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관악주민연대의 고 전춘우 목사님과 청소년을 돕는 일을 해왔는데, 이게 아이디어가 돼서 시작했습니다."

- 나중에 정치할 생각은 아니었나요?

"개업 때부터 받은 질문인데, 아닙니다. 국민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정치적 투쟁은 하고 있죠. 정치 활동을 위해 인권 변호사를 거친다는 것도 우리 사회의 편견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뭔가요?

"어머니께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일해왔어요. 어머니는 생활력 강하고 헌신적인 분이었습니다. 파출부, 식당 일 등 안 해본 게 없었죠. 저는 막내라 그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고요. 어머니가 제게 그랬듯, 저도 고객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한 건 한 건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 가족들은 남편, 아빠의 활동을 어떻게 보나요?

"아내는 첫 만남부터 저를 이해하고 지지해 줬습니다. 미술 하던 사람이라 학생운동과 거리가 있었을 텐데 신기한 일이죠. 그게 고마워서 교회에 가자고 하면 갑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종교의 자유는 억압받는 현실을 살고 있어요. (웃음)

아이들은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아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와는 다른 대학 생활을 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집회·시위를 데리고 다닌 게 역효과가 난 게 아닌지 반성도 합니다. 옳은 것이라도 주입식으로 배우면 싫어지기 마련이죠."

- 회의를 느낀 적은 없나요?

"힘겹기는 하지만 25년째 보람을 느끼며 활동합니다. 맡은 사건은 항상 이전 사건보다 어렵더군요. 민변에 노동 문제 하겠다는 후배들은 계속 들어오는데 국보법은 그렇지 않아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어쨌든 저는 제 길을 갑니다."

- 책을 써서 문제를 더 알릴 생각은 안 해봤나요?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경황이 없었습니다. 시중에 이미 좋은 책이 많기도 하고요. 올해 4월에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이철 선생의 <장동일지> 가 우리말로 출간됐어요.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존경하는 인물이 누군가요?

"프랑스의 변호사 홀렁 베이(Roland Weyl) 선생입니다. 오랫동안 흠모하던 분이라, 한국에서 그분 100세 잔치를 열어드리기도 했어요. 한 세기 동안 당신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갔던 분이죠. 자전거는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진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변호사로서 힘닿는 데까지 변론을 할 생각입니다."

-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변치 않고 한 방향으로 살아온 사람이요. 20대에 세운 뜻을 끝까지 지킨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초심을 지켰다는 게 제게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 지금까지 지켜온 신념이 있나요?
"역사를 보면 억압 밑에서도 국민은 옳은 선택을 했고, 정의는 순리대로 실현돼 왔습니다. 한반도 평화가 오면 국보법은 폐지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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