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캐디들 애환의 코스…‘설계자’ 우즈는 사라졌고 VIP 행사 한창

오거스타 시립 골프코스 입구를 경찰차와 경호원이 막고 있었다. VIP 행사 중이라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7년 전인 2019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시립 골프코스는 허름한 동네 골프장이었다. 경비 같은 건 필요도 없었다. 코스 별칭은 ‘더 패치(The Patch)’다. 코스 옆에 채소밭(patch)이 있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코스 상태도 채소밭처럼 듬성듬성했다.
공항 바로 옆에 붙어 있어 경비행기 소음이 끊이질 않았다. 1928년 생겨 90여 년을 거의 손대지 않고 버텨온 코스다. 월 65달러, 연 720달러를 내면 무제한 라운드가 가능하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는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버금가는 골프 성지다. 이곳에는 오거스타라는 이름을 단 골프장이 세 개 있다.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 지역 명문 오거스타 컨트리클럽(ACC), 그리고 오거스타 시립 코스다.
흥미롭게도 골프계 최고 권위의 오거스타 내셔널은 나이로 치면 그 중 막내뻘이다. 1899년에 생긴 ACC가 맏형이고, 시립 코스가 그 다음이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1933년 문을 열었다.
그 막내는 워낙 출중해 형들을 바꿨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ACC 땅 일부를 ‘거절할 수 없는 가격’에 사들여 아멘코너 13번 홀 전장을 510야드에서 545야드로 늘렸다. 완벽주의 동생을 위해 맏형의 페어웨이가 잘려나갔다.
시립 코스의 변신도 오거스타 내셔널이 주도했다. 코스를 전장 약 6800야드로 리노베이션했고, 클럽하우스를 번쩍이는 유리와 철골로 새로 지었다. 리노베이션의 핵심은 새로 생긴 9홀 파3 코스인데 설계자가 타이거 우즈다. 이름은 ‘더 루프 앳 더 패치(The Loop at the Patch)’다.
‘루프(loop)’는 캐디 은어로 18홀 한 라운드의 캐디 업무를 뜻한다. “오늘 루프 두 개 돌았다”면 36홀을 뛰었다는 의미다. 수십 년간 오거스타 내셔널 캐디들은 루프를 마친 뒤 이 시립 코스로 몰려와 직접 클럽을 잡았다. 더 패치는 그들의 아지트였다.
1980년대까지 오거스타 내셔널 캐디는 모두 흑인이었다. 흑인 캐디들이 골프채를 쥘 수 있는 곳은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8㎞ 남쪽에 있는 시립 코스가 유일했다. 오거스타 내셔널이 이 전통을 기리고, 1997년 마스터스에서 흑인·아시아계 최초로 그린 재킷을 입은 우즈가 이에 호응해 새 코스를 만들었다.
마스터스 기간 더 패치는 VIP 접대와 기업 행사로 채워진다. 클럽하우스 한켠에는 ‘캐디 레거시(Caddie Legacy)’ 전시도 마련됐다. 흑인 캐디들의 애환이 서린 코스가 골프 업계 VIP들의 호스피탈리티 베뉴가 됐다. 역사는 기리되, 주인공은 달라졌다. 시립코스는 남아 있지만 낭만적인 전통은 오거스타 내셔널이 사들였다.
우즈는 오거스타에 없다. 지난달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뒤 스위스의 고급 재활시설로 갔다. 2026년 봄 오거스타의 풍경이다.
오거스타=성호준 골프전문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금 월 350도 소용없다” 은퇴자 65명이 알려준 최악 직업 | 중앙일보
- 아들 수익률 8224% 만들었다, 40억 파이어족 엄마 ‘존버 종목’ [더파이어③] | 중앙일보
- 윤석열 사단 6년9개월 왕좌의 게임…그 진군 끝에 78년 검찰 망했다 | 중앙일보
- 배우 오연수 또 일냈다…“나라에서 주는 상 두번째 받아” 무슨 일 | 중앙일보
- '29금 영화' 따라하며 아내와 성관계…그 남편 법정 선 이유 | 중앙일보
- 수원역에 걸린 회장님 ‘어록’…MZ들 수백만 번 다시 보는 이유 | 중앙일보
- 박성광 “고 박지선 떠난 후 우울증”…신동엽과 하늘 향해 손인사 | 중앙일보
- [단독] 일하면 194만원, 쉬면 198만원…‘실업급여 역전’ 손본다 | 중앙일보
- “원장이 돈 내고 병가 쓰래요” 아파도 출근하는 유치원 교사들 | 중앙일보
- 서유리 “스토킹 피해자가 피의자 됐다” 억울함 토로…무슨 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