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100여 명의 동생들 만나 깨달은 것
[신나리 기자]
스물아홉, 방송 작가로 살며 품었던 고민을 끝내고 싶었다. 지도를 펴놓고 나라를 훑다가 일본이 눈에 들어왔다. 막연함과 설렘 사이, 정수윤 작가는 2000년대 후반 일본으로 향했다. 자신을 찾고,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며 와세다대 문학연구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 사이 정 작가가 종종 마주한 질문은 한국에서 살 땐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당시 일본 근대문학을 전공한 이들을 자주 만났는데, 이들은 대화 중에 자꾸 '북한'을 꺼냈다. 하나의 민족이 전쟁으로 분단된 과정, 이를 통해 생긴 남북의 갈등, 일본은 북한을 쉽게 오갈 수 있는데 남한은 그렇지 못한 이유 등 쏟아지는 질문에 정수윤 작가가 할 수 있는 답은 빈약했다. 이 경험을 계기로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북한'과 관련된 무엇이든 찾아보고 경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정 작가는 2011년, 한국에 돌아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띠앗머리'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북한에서 온 청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남한의 '친정언니' 역할을 지향하는 모임이었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 했지만, 그가 쓴 소설 <파도의 아이들>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 정수윤 작가는 소설 <파도의 아이들>에 북한을 떠나 온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
ⓒ 신나리 |
수경이의 부모님은 농사꾼이었는데, 북한에서 부모님이 농사꾼이면 수경이도 농사꾼으로 사는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수경이는 그게 싫었어요. 부모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던 거예요. 자신의 꿈이 있던 아이죠. 그래서 자유를 찾아 떠난 건데, 또 그 과정 얼마나 만만치 않았겠어요. 가족에 대한 그리움, 보고 싶고 애절한 마음도 있고요. 이 아이를 떠나게 만든 것, 외롭게 만든 건 무엇일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수경이의 이야기를 남겨야 겠다 생각했죠."
정수윤 작가가 만난 북에서 온 동생들은 100여 명이 넘는다. 13년간 이어진 만남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 만남을 이어간 건 아니다. 이곳과 저곳의 이야기를 나누며 '다르다'는 오해를 풀고 '비슷하다'는 생각에 다다르는 시간이었다.
정 작가는 이 시간을 "북한을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자신이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 속에서 가지각색의 북한을 마주했다"고 설명했다. 신분, 성별, 나이에 따라 북한에서 경험은 달랐지만, 이와 별개로 '자유'가 박탈됐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들은 이들의 삶을 이야기로 남기기로 했다.
주로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 일본문학 걸작들을 옮기며 신뢰받는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불리던 그가 써 내려간 탈북 청년의 이야기는 그렇게 한 권의 소설에 담겼다. 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핵실험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정수윤 작가를 만났다.
북한 떠나 파도 앞에 선 아이들
<파도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10대 주인공 '설', '광민', '여름'의 이야기 속에 정수윤 작가가 듣고 마주한 북한이 담겨있다. 위대한 수령님이 아닌 자신만의 꿈을 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청소년들이다.
이들의 삶은 다르고 또 같았다. 부모님이 고위급 북한 간부였던 친구부터 국가대표 선수, 부모님을 다 잃은 아이들까지 북한에서 탈출한 이유와 경로, 상황은 모두 달랐는데 공통점도 있었다.
"(북한을 탈출한 아이들) 모두 외로워했어요. 막상 남한에 왔고, 자유를 찾긴 했는데 일단 가까이에 믿을 만한 '안전한 어른'이 없었어요. 자기를 이해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좋은 어른을 만나지 못해, 고립됐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이곳에 와서는 단지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고, 차별을 받기도 하고요.
그런데 북한에 살았다고 모두 김정일·김정은을 믿고 따르거나, 위대한 수령님을 찬양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들은 그거에 동의하지 못해 북한을 떠나온 거기도 하고요. 제가 만난 북한 친구들은 저랑도 별반 다를 게 없었어요. 소설과 시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춤을 즐기는 등 모두 다양한 취향을 지닌 아이들이었어요."
<파도의 아이들> 속 광민이, 여름이, 설이 역시 모두 꿈이 있었다. 북한 고위층 자녀인 광민이는 축구선수 손흥민을 좋아하는 소년이다. '천재소녀'라고 불린 여름이는 늘 자신이 속한 체제에서 현실의 벽을 느꼈다. 설이의 꿈은 촌구석을 벗어나는 거였다.
아이들은 '꿈을 꿨다'는 이유로 저마다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고 누군가는 조선족 자치주의 어느 술집에서 또 다른 탈출을 꿈꿔야 했다. 새 나라에서 새 국적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기란 쉽지 않았다. 정 작가는 소설에서 북한을 떠나온 세 아이의 미래를 명시하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바다에 파도 앞에 섰을 뿐이다. 아이들은 왜 하필 바다를 찾아갔을까.
"남한에 오기 전까지 바다를 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강은 있는데 바다는 못 봤다는 거죠. 보통 제3국에서 남한으로 들어오잖아요. 대한항공에서 항공사 잡지를 봤는데, 거기에 제주도·울릉도를 보고 놀랐다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이 되면 꼭 바다를 가야지' 이런 다짐을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후에 제주도, 울릉도를 간다더라고요.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바다를 마주한 아이들을 그렸어요. 다만, 꼭 어떤 바다라고 설정하지는 않았어요. 어느 나라의 바다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북한에서 온 친구들은 태어났을 때 '국가'에 많이 얽매인 삶을 살았던 경험이 있잖아요. 그래서 '국가'를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했어요. 처음으로 자유를 느끼고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놓인 이들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바다 앞에서 자신을 옭아매던 것을 풀어내고 마음껏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어요."
▲ <파도의 아이들> 속 아이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되기를 바랐던 정수윤 작가는 소설 속에 북한 사투리를 담아냈다. |
ⓒ 신나리 |
"보통 남한과 북한이 한민족이라는 걸 설명하며 '언어가 같다'고 표현하잖아요. 우리는 해석이 필요 없는 사이라고요.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북한에서 온 친구들을 만나며 대화하며 오해한 일들이 많거든요. 이를테면 저에게 '얼굴이 왜 이렇게 패였습니까'라고 해서 엄청 상처 받았어요(웃음).
피곤해서 잠이 부족하긴 했는데, 그래도 사람 얼굴이 '패였다'니 말이 너무 세잖아요. 알고 보니 '얼굴이 왜 이렇게 야위었어'라는 뜻으로 저를 걱정하며 한 말이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같지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걸 실감했어요. 그래서 소설의 큰 흐름,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북한 사투리를 담아내기로 했죠."
그는 남한과 북한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만나더라도 '말' 때문에 괜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남한 사람들은 다소 공격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없습니다'가 북한에서는 '괜찮습니다'처럼 쓰인다는 걸 아는 것과 모르는 건 큰 차이가 있다는 거였다. 정 작가는 "서로의 선의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했다"면서 "언젠가 우리가 자유롭게 만날 때에 잘 대화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대화', '이야기의 힘'을 언급했다. 최근 남북을 둘러싼 뉴스는 오물풍선 살포와 강경대응, 단거리 탄도미사일이었지만, 정치적인 뉴스에서 벗어난 '북한'의 이야기도 필요하다는 거였다.
"보통 우리가 아는 남북을 둘러싼 뉴스는 군사나 정치적인 게 많잖아요. 서로를 겨누는 말을 하고 누군가의 발언과 행동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하죠. 이런 뉴스의 피해자는 탈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에서 왔으니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야 라고 쉽게 규정되며 오해받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뉴스가 아닌 개인의 삶을 담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저도 소설 속에 그걸 담으려 노력했고요. 북한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꿈을 위해 노력한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누구나 한 번은 소설 속 설이·여름이·광민이의 꿈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 점이 문학의 힘이기도 하고요."
정 작가는 여전히 북한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그는 올해부터 한 달에 한 번 남북 청년이 함께 시를 쓰고 책을 읽는 모임을 시작했다. 중국 한시를 좋아하는 친구는 자신의 삶을 시에 담고 평소 괴테를 좋아한 친구는 책의 한 구절에 빗대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 식이다. 누군가의 집에 모여 시를 쓰고, 읊다 결국 자기의 삶을 털어놓는다. 그는 이 시간을 "'남한'과 '북한'을 떠나 '사람'이 남는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날'을 언급했다.
"자기 이야기를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면, 결국 사람은 외롭고 고립되잖아요. 그런데 또 아무나 붙잡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는 없고요. 그래서 시를 빌어서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요. (북한에서 온 친구들은) 어린 시절 뛰어다니던 동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 같아 더 보고 싶은 가족을 그리워하며 속상해 하기도 하죠. 동시에 우리가 언젠가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을 꿈꿔요. 정말 그런 날이 올 거 같으냐고요? 물론이죠. 우리가 마주한 시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쌓일수록 '그날'은 빨리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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