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작가도 비슷한 '도망자'였다

이자연 2024. 10. 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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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책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소설 <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에 물었다

[이자연 기자]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미우라 켄타로의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오는 명대사다. 짧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로도 회자되곤 한다. 도망친 곳에서는 결코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는 한국이 싫어 호주로 떠나는 여자 주인공 '계나'가 등장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명이랑은 내가 호주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공식적으로 헤어졌지.' (p. 9)

계나는 한국에서 번듯한 직장과 남부럽지 않은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그걸 다 버리고 호주로 떠난다. 이별과 떠남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계나의 시점으로 그 후 계나가 어떤 일들을 겪는지 서술한다. 독자는 계나의 말을 들으며 계나의 여정을 따라간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 Nick Sarvari on Unsplash
계나는 왜 한국을 떠났을까? 소설의 한 페이지만 넘기면 이유가 나온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p. 10)

우리는 한국인이고,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은 우리가 마땅히 우리의 조국인 한국을 좋아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싫어서>란 제목은 꽤 자극적이다. 하지만 계나의 말을 들으면 왜 한국을 떠나는지, 왜 한국이 싫은지 수긍이 간다. 계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p. 11)

한국은 정말 치열하다. 계나는 자신을 톰슨가젤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사자가 올 때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아 먹혀버리고 마는 톰슨가젤이 꼭 자신 같다고 말한다.

한국이 치열한 '승자 독식의 사회'라는 데엔 이견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잘해야 한다. 심지어는 아주 아이 때부터. 최근 '초등 의대반'을 넘어 '유치원 의대준비반'의 존재가 사회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 유치원생 때부터 의사가 될 준비를 시키는 사회.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독자들이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에 공감하는 이유다.
 책 표지
ⓒ 민음사
이 책의 저자 장강명은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여러 저작으로 한국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쳐왔다. <표백>을 통해 청년 세대의 자살 문제를 다뤘고 <댓글부대>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을 다루는 등 작가는 문학으로 시대의 맥을 짚고 현대사회의 복잡성을 예리하게 탐구한다.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나는 한국의 청년들이 어쩌면 떠나도록 내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까, 다른 어떤 곳에서는 미래가 보일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게 되는 거다.

아니면, 한국에서 초라한 자신의 현실을 들키기 싫어 어디 다른 곳으로 숨으러 가는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 책 역시 우리가 주인공 계나의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상황으로 시선을 확장하게 한다.

장강명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이 싫어서>를 쓸 당시 계나를 주체적인 인물로 묘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 9월 16일, 작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직접 물었다. 최근 한국을 떠나는 수많은 젊은이들도,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떠나는 것 같냐고 말이다(관련 기사: 데뷔 14년 차인데도 여전히 필사 한다는 작가 https://omn.kr/2ae52 ).

작가는 대답했다.

"도망가는 사람도 많죠. 계나도 처음에는 도피처럼 갔어요. 소설을 통해 계나가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계나는 처음에는 한국이 싫어 호주로 도망쳤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계나가 다시 한 번 떠나는 선택을 할 때, 그건 도망이 아니었다. 계나는 그간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게 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환경으로 가서 인생을 꾸려보려고 떠난다.
 배우 고아성이 주인공역을 맡은 영화 <한국이 싫어서> 포스터 (원작소설 : 한국이 싫어서 )
ⓒ 영화 <한국이 싫어서>
계나의 여정은 단순한 도피처럼 시작되었을지 몰라도, 결국엔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작가는 덧붙였다.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한국에 뼈를 묻어야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안 맞는 환경에 있으면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죠. 예를 들어 회사에 들어갔는데 이상한 회사라면 도망쳐야죠. 사이비 종교 같은 회사도 있잖아요.

전공이 아니다 싶으면 도망쳐야겠고요. 저도 그랬던 사람이예요. 건설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이건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력해서 이 일을 사랑할 때까지 나를 갈아넣어야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망쳐 나왔어요."
 처음에는 '도망자'여도 괜찮다.
ⓒ Marek Szturc on Unsplash
작가는 자신도 '도망자'라고 말했다. 한편으론 그저 도망만 친 것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많이 생각해보고 그에 맞는 환경을 찾아나가려 노력한 사람이라고.

그는 20대부터 소설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소설가가 되는 데 유리한 직업,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기자에 도전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기자 일은 그에게 잘 맞았다.

힘들긴 했지만 그는 그 일을 사랑했다. 11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상도 많이 받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이른 성공을 맛보지는 못했지만 부단히 노력해 결국 소설가가 되고 만 사람. 지금 그가 구사하는 리듬, 속도감, 명료함 같은 문체는 부단한 기사 쓰기 훈련을 통해 얻어진 것일테다.

'나는 뭘 좋아하나' 생각해보자. 막연하게 '저기에 가면 낙원이 있겠지' 하고 오매불망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를 그리며 괴로워하기보다는 차라리 계나처럼 자신을 찾는 여정을 적극적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좌충우돌 부딪힐지라도 어제보다 한 뼘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을테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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