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짓고 좋은 옷 입는 목사? 예수 모습 아니죠"
[이민선 기자]
▲ 노숙인 쉼터 '유쾌한공동체'를 운영하는 안승영 목사 |
ⓒ 이민선 |
"신학대학을 13년 만에 어렵게 마치고 고향인 남원(전북)에 있는 한 교회 전도사로 일하면서, 어쩐지 이게 내 옷이 아닌 것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어요.
내 관심사는 가난과 불행이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어린 시절 보아온 그대로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늘 가난에 허덕이는 모습을 보며, 가난과 불행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노숙인 사역(事役, 종교 행위)'을 해 보라는 선배 목사 권유가 있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단걸음에 백일도 안 된 둘째를 들쳐업고 상경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예수께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한 복음이 과연 이들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그 복음이 생명이 있는가,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노숙인 쉼터 '유쾌한 공동체'를 운영하는 안승영(57) 목사를 지난 13일 만났다. 2년 만의 재회였다. 2022년 7월, 그때는 재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세 들어 있던 안양역 인근 건물을 비워줘야 할 처지였는데, 천정부지로 치솟은 임대료 부담 등으로 인해 이전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유쾌한 공동체'는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라 보상금을 받을 수 없었다. 영리 사업자가 아닌 비영리사업자라서 상가 세입자에게 지급되는 영업손실 보상금조차 받을 수 없었다.
재개발 조합에서 이사비용으로 제시한 1000만 원 정도가 받을 수 있는 돈의 전부였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반대. 노숙인 쉼터가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대부분 꺼렸다(관련 기사 : 재개발의 그늘... 보상 한푼 없이 내몰리는 노숙인쉼터 https://omn.kr/1zvm2 ).
쫓겨난 안 목사가 우여곡절 끝에 안양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소문으로 알게 됐다. 2년 만에 찾아온 무심한 기자를 안 목사는 반갑게 맞았다. 넓은 가슴과 두툼한 어깨, 친절한 눈빛. 2년 전 그때, 16년 전 처음 만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하얗게 센 머리카락 같은 세월의 흔적뿐이었다. 추석 연휴 직전이라 자연스레 '노숙인들의 추석'으로 화제가 모아졌다.
"거리에서 방황하는 분들이니까. 추석 때는 시름이 더 깊어지죠. 손에 선물 꾸러미 든 사람들 모습을 안 볼 수도 없을 테고. 그래서 명절 때도 계속 급식소 문을 열어놓고 있는 거죠.
원래는 쉼터 식구(쉼터에서 기거하는 노숙인)들 7명만 세 끼를 다 주는데, 명절에는 급식소를 찾는 모든 이에게 세 끼를 줍니다. 쉼터 식구들하고는 차례도 같이 지내고 설날에는 윷놀이도 합니다."
"추석 같은 명절이면 노숙인들 시름 더 깊어"
▲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칠때는 도시락을 만들어 비대면 나눔을 했다. |
ⓒ 안승영 |
▲ 유쾌한 공동체 자원 봉사자가 거리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주는 모습 |
ⓒ 안승영 |
유쾌한 공동체는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로 인한 실직자 증가, 이로 인한 노숙인 증가가 사회 문제가 되자 이들을 구제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안양노회'에서 지원을 받아 설립한 노숙인 보호시설이 모태였다.
그동안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에게 잠자리와 일자리 등을 제공했고, 쉼터에서 기거하는 노숙인들을 위한 의료 지원 등의 치유 활동도 하고 있다. 직업 교육 등 자립 지원사업을 통해 그동안 노숙인 700여 명의 사회적 자립을 도왔다.
몇 년 전부터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추모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안 목사에 따르면, 안양시 무연고 사망자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2명 정도 발생했다. 안양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 공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무연고 사망자는 2016년 735명에서 2020년 1145명으로 늘었다. 4년 사이 55.8%나 증가한 것이다(관련 기사 : 이들이 '외로운 죽음' 위한 추모제 연 이유 https://omn.kr/1r395 ).
2020년 추모제에서는 안 목사가 직접 지은 '길 떠난 노숙형제에게 바치는 시'가 낭독됐다. 다음은 추모시 전문.
먼 길 떠난 노숙형제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리움에
미안함에
그렇게 떠난 길 한은 풀리셨소
모난 아스팔트 바닥에서
끊어져라 이 목숨
그렇게 무심하게 살아왔는데
마침내 그 뜻을 이루셨소
부디 평안하시오
이승에 더럽고 섭섭한 번뇌는
이제 우리의 몫으로 돌려주시구료
그리고서 하늘에서 꽃비 내리는 것도 보고
폭풍처럼 휘휘 휘날리는 비바람에 세상 시름도 흘려보내고
낙엽이 지면 또 귓볼 빨갛게 될 겨울 걱정일랑
허허 웃어넘기고 눈보라 속에 그리운 추억만 되새기구료
이승은 아직도 매섭소.
돌쇠 목사, 노숙인 돌봄에 뛰어든 이유?
▲ 노숙인 쉼터 '유쾌한공동체'를 운영하는 안승영 목사 |
ⓒ 이민선 |
주변 사람으로부터 '돌쇠 목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몸으로 부딪치는 일을 좋아하던 터라 적성에도 맞으리라 생각됐다. 또한 사회적 약자가 잘살면 자연스럽게 사회 모든 구성원이 행복해질 것이란 믿음도 있었다.
"워낙 가난한 시골 유학생이었던 덕(?)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면서 13년 만에 신학대학을 졸업했어요. 돈 벌면서 공부하느라 정말 진땀을 흘렸죠. 아파트 짓는 데서 목수로도 일했고, 총알택시 기사도 해 봤어요. 두부 공장 일도 해 봤고요.
또 '기독교 농촌연구소'를 표방하며 수박 농사도 해 봤는데, 엄청난 장마에 넝쿨째 강물에 버려야 했지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가난과 불행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고 또 묻게 됐어요."
유쾌한 공동체에 오기 전 안 목사는 고향인 전라북도 남원 시골 마을 한 교회에서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신앙인으로 바라본 시골 마을은 그가 어린 시절 살던 마을과 마찬가리로, 무척이나 가난했다. 억세게 노동해도 가난은 계속 대물림됐고, 몇몇 마을 사람들은 장애인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그들을 지키는 것이 신앙이 됐다.
"뭐랄까, 제게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게 태생적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늘 약한 사람 편에 서고 싶었고, 함께 행동하고, 눈높이도 맞춰야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게 있었어요.
그런 면을 선배 목사가 짚은 거죠. 노숙인, 사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보면 약자 중의 약자에 속하죠. 대부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학습 능력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경쟁에서 밀려 오갈 데가 없어진 거죠."
노숙인 발생이 많은 근원적 원인을 안 목사는 '지나친 경쟁'으로 꼽았다.
"태생적으로 약한 고리인 거죠. 신체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무한 경쟁 사회잖아요. 건강하고 학벌 좋은 사람들도 툭툭 나가 떨어지는데, 원래 가난하고 못 배웠고, 신체도 허약한 사람들이 어떻게 버틸 수 있겠어요.
그러다 보니 사회에서 낙오하게 되고, 정서적으로 고달프고, 그러다가 가족한테 버림받게 되면 거리로 나오는 거죠. 막노동하며 전전하다가 결국은 노숙자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숙자 중 상당수가 알코올 중독자다. 이들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릴 때는 정말 난감하다. 이보다 더 곤란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우울증 있는 노숙인이 맨정신으로 난동을 부릴 때다. 이럴 때는 일단 피하고 그다음에 다독거려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 한다. 그래서 우울증 있는 노숙인이 쉼터에 오면 상담할 때부터 조심스럽다고.
알코올 중독이나 우울증이 나아져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 목사 최고의 보람이다. 알코올 중독은 마음만 굳세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고쳐집니다. 한 번 입에 술대면 한 달 동안 밥도 안 먹고 방안에 대소변 갈기며 내리 술만 먹는 분이 있었어요. 병원에 수도 없이 모셔가고 마음 써서 돌보며 재활 프로그램 가동해서 일에 대한 욕구 불러일으켰더니, 몇 년만에 금주에 성공했어요.
그러나 고치지 못하면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해 봉사자로 찾아올 때가 저에게는 최고의 순간입니다."
노숙인들을 사회로 복귀하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직업'이라고 안 목사는 누누이 강조했다. 정부 정책으로 노숙인에게 LH에서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고, 그래서 통계상 노숙인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노숙인의 정의가 집이 없는 사람이니, 집만 주면 된다는 식인데, 물론 주거 복지 차원에서 당연히 이뤄져야 할 일이지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직업을 주지 않으면 '말짱 꽝'입니다. 먹고 살 방법이 있어야 사회인으로 행세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이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에 대한 사회적인 각성과 반성이죠."
자본주의에 길든 교회는 생명력 없어
▲ 한 달에 한 번 하는 짜장데이를 위해 짜장면을 만드는 안승영 목사 |
ⓒ 안승영 |
"신앙의 본질을 왜곡한 교회가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우리가 흔히 우상숭배라고 하는 그런 탈 신앙적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고, 또 교육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개선의 여지도 안 보인다는 겁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아픈 사람과 낮은 사람(사회적 약자) 눈물을 닦아주고 울어주고, 가진 것을 최선을 다해 나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자본주의에 길들어 전혀 교회다운 생명력이 없어 보이는 그런 교회가 적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높은 빌딩 짓고, 좋은 옷 입는 것은 예수와 다른 모습입니다."
대화를 마치며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자신에게 잘 맞느냐'고 묻자 그는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내게 딱 맞는 내 옷이다. 예수께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복음이 과연 이들에게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 복음이 생명력이 있는지,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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