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수출 넘어 기술패권 국가로

김영근 2026. 5. 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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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표준·탄약·우주 협력, AI 국방혁명의 시험대에 서다

한국·나토 방산협의체가 다시 열렸다. 일본은 방위산업의 문을 늦게 열었다. 한국은 국방개혁 5.0으로 그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기자말>

[김영근 기자]

▲ 탄약과 우주를 말한 한·나토 회의, 한국 방위산업의 다음 질문은...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이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한·나토 방산협의체에 앞서 타르야 야아꼴라 나토 방위혁신군비실장과 면담하고 있다.
ⓒ 김영근
과천 회의실에서 던져진 질문

2026년 5월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제2차 한·나토 방산협의체 회의는 사진 한 장으로 지나칠 행사가 아니다. 방위사업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혁신군비실은 무기체계 상호운용성, 나토 표준 정보, 탄약과 우주 분야 다자협력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말은 딱딱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훨씬 현실적인 질문들이 들어 있다. 무기를 잘 만들어 빨리 파는 나라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동맹의 표준과 미래 전장의 규칙을 선도적으로 함께 만드는 '기술패권 국가'로 올라설 것인가의 문제의식이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협의체 개최에 앞서 타르야 야아꼴라(Tarja Jaakkola) 나토 방위혁신군비실장을 면담하고 나토 대표단의 방한을 환영했다. 이 청장은 "한국은 나토와 상호 호혜적인 방산협력 방안을 꾸준히 모색해 나갈 것이며, 신뢰할 수 있는 IP4 파트너 국가로 자리매김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와 나토의 안보는 더욱 긴밀히 연결되고 있다"라며 "나토 국제사무국과의 지속적이고 긴밀한 소통을 통해 한·나토 간 방산협력 방안을 구체화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국방개혁 5.0이란
아직 정부가 확정한 공식 명칭이 아니다. 국방혁신 4.0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군에 적용해 AI 과학기술강군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면, 국방개혁 5.0은 그 다음 단계다. 인공지능 전환, 즉 국방 AX를 무기 개발과 작전, 조달, 정비, 훈련, 동맹 표준까지 연결하는 개념이다. 탱크에 센서를 붙이는 일이 아니라, 전장을 읽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제도 전체를 바꾸는 일이다.
나토가 과천까지 와서 한국을 보는 이유: K-방산은 수출 산업을 넘어 안전혁명이 될 수 있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계산법은 달라졌다. 평시에는 느린 조달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 탄약, 정비 부품, 생산 속도가 곧 안보가 된다. 그래서 나토가 한국을 다시 본다. K9 자주포, K2 전차, 천무, 함정, 항공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빨리 만들고, 일정에 맞춰 납품하고, 현지 생산과 기술 협력을 붙일 수 있는 산업 능력이 평가받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로버트 피터스는 한국을 미국 동맹국 가운데 가장 건강한 방위산업 기반을 가진 나라로 평가했다. 미국 무기는 뛰어나지만 비싸고 납기가 길다. 그 빈틈을 한국이 비용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메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이정민 선임연구원도 한국이 단순한 무기 수출국에서 신뢰할 수 있는 방위 파트너로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상호운용성, 공동 연구개발, 기술 협력이다.

이 대목에서 착각하면 안 된다. 수출액이 늘었다고 기술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 군이 한국 장비를 쓰는 순간, 그 장비는 작전 교리, 통신 체계, 탄약 규격, 정비 데이터와 함께 움직인다. 제품만 팔고 표준과 데이터의 언어를 놓치면 한국은 오래 버티는 파트너가 되기 어렵다.

국방개혁 5.0은 무엇을 바꿔야 하나

국방혁신 4.0은 이미 AI 기반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합동 전 영역 지휘통제, 국방데이터 관리, 한국형 국방혁신조직 같은 과제를 제시했다. 중요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2026년의 전장은 그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드론은 싸고, 위성은 촘촘해졌고, 사이버 공격은 군과 민간을 가르지 않는다. 앞으로의 군은 장비를 많이 보유한 군이 아니라 데이터를 안전하게 쓰고, AI 판단을 검증하며, 동맹과 같은 언어로 움직이는 군이어야 한다.

그래서 국방개혁 5.0은 방산 수출의 후속과제가 아니라 그 전제조건이다. AI가 표적을 식별하고 지휘관의 결정을 돕는다면, 누가 데이터를 검증할 것인가. 무인체계가 전방을 감시한다면, 오작동과 해킹 책임은 어디까지 물을 것인가. 나토 표준에 맞춘다고 할 때, 우리 중소 방산기업은 그 정보를 제때 받아 설계와 시험평가에 반영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K-방위산업의 성장도 얇은 모래 위에 선다.

일본 실패학이 주는 불편한 교훈

일본은 반대로 긴 시간을 돌아왔다. 전후 평화주의와 무기 수출 제한은 일본 방위산업을 국내 수요 중심으로 묶어 두었다. 2014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으로 일부 문을 열었지만, 실제 완제품 수출은 제한적이었다. 해외 시장 경험은 부족했고, 방위사업은 대기업 안에서도 매력적인 주력 사업이 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지난 20여 년 동안 100개가 넘는 일본 기업이 방위산업에서 빠져나갔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은 2026년 4월 다시 큰 방향전환을 했다. 살상 능력이 있는 장비 수출의 문을 넓히고, 방위산업 기반을 키우겠다는 쪽으로 제도를 바꿨다. 그러나 문을 여는 것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다르다. 미국 CSIS는 일본의 새 수출 정책이 역사적 전환이지만, 산업 구조와 생산 능력, 해외 사업 경험의 한계를 넘지 못하면 성과는 제한될 수 있다고 봤다. 이것이 실패학의 핵심이다. 제도는 늦게 바꾸면 바뀐 뒤에도 한동안 말을 듣지 않는다. [관련기사→ "호위함 6척과 4명의 PKO... 일본 신안보정책의 두 가지 방향: 필리핀 호위함 이전 협의가 드러낸 재무장과 평화유지의 갈림길"]

한국은 일본과 처지가 다르다. 우리는 이미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서 성과를 냈다. 하지만 거꾸로 빠른 성장의 함정이 있다. 주문이 몰릴 때 표준, 품질, 후속군수, 부품 공급, AI 안전성까지 제도로 묶어두지 않으면 한 번의 납기 차질이나 품질 논란이 신뢰를 갉아먹는다. 일본의 실패는 '수출 규제를 풀자'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산업 생태계와 국제 표준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기술은 있어도 세계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경고다.

기술 경쟁력을 안전사회로 연결하는 네 가지 길

첫째, 나토 표준 정보를 기업 생태계에 연결해야 한다. 상호운용성은 외교 행사에서 쓰는 멋진 말이 아니다. 통신이 맞고, 탄약이 맞고, 정비 절차가 맞아야 전장에서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만 정보를 알고 중소기업은 뒤늦게 따라가는 구조라면 국방개혁 5.0은 시작부터 삐걱거린다.

둘째, 국방 AX는 무기체계 안에만 갇혀서는 안 된다. 조달 심사, 시험평가, 군수 정비, 재고 관리, 장병 교육에도 AI를 써야 한다. 다만 'AI가 해준다'는 식의 낙관은 위험하다. 군사 분야의 AI는 설명 가능성, 보안, 책임 소재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빠른 결정만큼 중요한 것이 잘못된 결정을 멈추는 장치다.

셋째, 방위산업 공급망을 국가 생존 인프라로 봐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희소금속, 정밀부품, 탄약 생산 능력은 전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시에도 외교와 경제의 협상력을 만든다. 폴란드와의 현지 생산 사례가 보여주듯, 이제 수출은 완제품 선적이 아니라 기술 이전, 공동 생산, 장기 정비망을 포함하는 신뢰 계약이다.

넷째, 안전혁명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드론, 위성, AI 관제, 통신망, 로봇 기술은 군사 작전뿐 아니라 산불, 홍수, 해양 사고, 사이버 재난에도 쓰일 수 있다. 방위산업 기술을 민간 안전과 재난 대응으로 잇는 제도전환이 있어야 시민이 체감하는 안전사회가 된다. 국방개혁 5.0이 군 안에서만 끝나면 절반의 개혁이다. 미래리스크 관리는 전방 초소와 도시의 재난 현장을 함께 보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흥분보다 설계다

K-방위산업의 성장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방위산업은 일반 수출품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팔고 끝나는 물건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정비하고 개량하며 함께 책임을 나눠야 하는 장기 약속이다. 오늘 과천 회의에서 논의된 나토 표준, 탄약, 우주 분야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이 어떤 수준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국방개혁 5.0(MAX/AX: Military AI Transformation)은 그 시험대에 내놓을 답이어야 한다. AI 전환(AX)을 무기 홍보 문구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데이터 관리 기준과 책임 규범, 공동 연구개발, 후속 군수지원, 민간 안전 연계까지를 하나로 묶는 실질적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K-방위산업은 단지 많이 파는 산업이 아니라, 한국 기술 경쟁력의 위상을 높이는 국가 전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시민의 눈에 국방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탄약이 부족하면 군이 흔들리고, 공급망이 막히면 산업이 멈추며, 사이버 방어가 뚫리면 일상이 위태로워진다. 안전사회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국방개혁 5.0과 K-방위산업의 접점이 안전 혁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천 회의실에서 시작된 논의가 기념사진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파인에도 실립니다.글쓴이 김영근은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겸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과정 교수이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박사를 취득한 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및 계명대학교 일본학과 조교수를 역임하였다. "AI시대의 안전경제학: 글로벌 불확실성 및 위기관리" 및 "북핵 리스크 관리와 국제안보레짐의 변용", 『포스트 제국주의』(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II: 경제』(공저), 『한일 관계의 긴장과 화해』(편저)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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