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김형남의 갑을,병정]

김형남 2024. 10.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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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의 갑을,병정] 개정된 '대 국회 및 정당 업무 처리 훈령'의 문제점

[김형남 기자]

요즘 국회의사당 앞 의원회관은 불야성이다. 밤이고 휴일이고 초췌한 모습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보좌진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10월 7일부터 22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미 각종 국정 현안에 문제제기 하는 내용을 담은 여러 의원실의 보도 자료가 기사가 되어 쏟아지고 있다.

이 시즌이 되면 국회에서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려는 의원실과, 이에 응대하는 행정부 담당자들과의 줄다리기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국회가 국정감사 기간 너무 많은 자료를 요구하는 통에 행정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비판도 있으나, 행정부에서 제출하는 자료 없이 국정을 감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헌법 제61조와 국회법 제128조에 따라 국회는 안건의 심의 또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 등의 제출을 정부, 행정기관 등에 요구할 수 있고, 정부와 행정기관은 10일 이내에 보고 또는 서류 등을 제출하여야 한다. 제출을 거부하는 절차는 법률로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밖에 필요한 절차는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조문에 따라 제출을 거부하려면 법률이 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유독 눈에 띄는 이상한 훈령이 있다. 국방부 장관이 정하는 규칙인 <대 국회 및 정당 업무처리 훈령>이다. 공개된 훈령 중에 다른 부처는 이런 비슷한 이름의 훈령을 가지고 있지 않다. 훈령은 국방부와 각 군이 국회를 상대할 때 숙지해야 할 요령과 국회의 자료제출요구나 대면설명에 대한 대응 지침이 나열되어있다.

원래 이 훈령에는 국회에 보고하거나 자료를 제출할 때 해당 내용이 군사기밀보호법 등이 정한 비밀인 경우 세워야 할 보안 대책과 자료제출, 대면설명 절차를 다루는 것 외에는 별달리 눈여겨 볼 내용이 없었다. 군사비밀은 '다른 법률'에서 보호의 의무를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하위 훈령에 둔 세부 규정에는 문제가 없다.

'자료 공개 거부' 규정까지 만든 국방부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 걸린 태극기와 국방부기.
ⓒ 연합뉴스
그런데 올해 초인 1월 22일, 국방부는 돌연 해당 훈령을 전부 개정해서 내용을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했다. 의원실의 자료 제출 요구나 대면설명 요구 절차를 아주 까다롭고 복잡하게 바꿨다.

일단 군사비밀, 평문(비밀이 아닌 문서)으로 구분하던 국회에 제출하는 자료의 기준을 셋으로 나눠 평문을 '평문 일반자료'와 '평문 비공개 업무자료'로 다시 구분했다. 군사비밀과 비공개 업무자료는 무조건 주관부서에서 보안성 검토를 진행하고, 방첩사령부 예하 방첩부대에서 보안영향성 평가를 받아야 하며, 검토부서와 국방부 실장급, 각군 참모차장급의 결재권자에게 보고도 해야 한다. 이후 차관급의 고위급 회의에서 논의도 하고, 필요시에는 장관이나 합참의장에게도 보고해야 한다.

이러한 복잡한 절차를 다 통과해야 비로소 해당 자료를 국회에 제출할지 말지가 정해진다. 물론 어느 상위 법률에도 '평문 일반자료'나 '비공개 업무자료' 같은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국방부의 업무상 편의를 위해 내부 훈령으로 만든 말일 뿐이다.

업무자료가 일반 자료인지 비공개 업무자료인지 판단하는 1차 주체는 해당 업무 주관 부서다. 그러나 분류 기준은 불분명하다. 다만 훈령 [별지9] 양식에는 주관 부서가 방첩부대(구 기무부대)에 보안영향성 평가를 의뢰할 때 '국회에 제출, 설명해야 할 내용이 비공개 업무자료라고 판단한 이유를 간단하게 작성'하는 란이 있다.

여기에는 예시도 적혀있는데 '최근 언론보도 등으로 인한 정치적 민감성', '군사기밀은 아니지만 유출될 경우 적을 이롭게 할 정보' 등 실무자의 주관적 판단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실무자가 보기에 군사비밀과 하등 관련이 없어도 정부나 국방부에 부담이 되거나 국민적 관심사가 쏠리는 사건·사고 등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면 국회의 요구는 그냥 묵살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소관부서가 보안성 검토를 진행할 때 참고해야 할 체크리스트가 담긴 [별지1]에도 '보안성'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내용이 많다. '군 비하 및 사기 저하 등 대군 신뢰에 악영향', '공개 시 민감한 내용이나 사회적 물의 야기' 등이 그렇다.

어느 정부 부처도 '언론보도 등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과 관련된 자료를 제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암암리에 제출 요구를 뭉개거나 눈치를 보다 늦게 내놓는 식이다. 그러나 대놓고 부처에 규정까지 만들어 자료를 공개하지 말라고 정해둔 부처는 국방부뿐일 것이다.

국회의 정당한 권한을 깔아뭉개는 국방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왼쪽),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전임 국방부 장관이었다.
ⓒ 연합뉴스
국방부는 예전부터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불성실하게 응했다. 통계 합산 숫자가 불일치하거나, 같은 정보값이 제출하는 부서마다 다른 수치인 경우, 자료 명칭이 부정확하다는 핑계로 자료가 없다고 우기는 경우, 일부 자료가 누락된 경우, 알아볼 수 없게 스캔해서 제출하는 경우, 엑셀 파일로 수합해서 굳이 PDF 파일로 변환해서 제출하는 경우, 아무 이유 없이 자료 제출을 국정감사 끝날 때까지 미루는 경우 등 다종다양한 자료제출요구 회피 방법을 썼다.

그러던 국방부가 이제는 아예 자체 훈령을 핑계로 걸핏하면 자료 제출 요구를 지연시키고, 국회의원에게만 보고하려 하며 보좌진 배석을 배제한다던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일도 부지기수라 한다.

국방부의 태도는 이중적이기도 하다. 같은 훈령에서는 국방부와 각 군 소관부서에 논쟁적인 현안이 발생한 경우 적극적으로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하라는 규정도 있다. 훈령 상 표현은 '해당 사안에 대한 쟁점화 방지 등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다. 이 경우에는 긴급하게 전화, 메시지, 전자우편 등 긴급 전파망을 활용해 자료도 제공할 수 있게 해두었다.

사실상 의원이 요구하는 현안 자료는 다단계로 검토해서 가급적 주지 않을 수 있게 하고, 국방부가 주고 싶은 현안 자료는 아무 때나 긴급하게 주겠다는 말을 공개된 훈령에 써놓는 배짱이 놀라울 뿐이다. 결국 이 훈령의 존재 목적은 군사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국방과 관련한 문제 사안이 국회나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작전 계획에 있다는 얘기인 셈이다.

국정과 관련하여 행정부 내부에서 공개된 업무자료는 별로 없다. 대부분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비공개 업무자료다. 국민의 대표들이 이러한 자료에 접근해서 국정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낱낱이 뜯어보라고 만든 제도가 '국정감사', '국정조사'다.

그런데 국방부는 국회의 정당한 권한을 깔아뭉개고 있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나 설명 요구를 대응해야 하는 적대행위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국회의 권한에 도전하는 하위 훈령은 명백한 위헌이다. 국회가 신속하게 바로잡든지, 아니면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라도 구해야 할 일이다. 국회가 행정부를 상대로 제 역할을 못 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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