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은 죽지 않잖아..." 쓸 수 없는 전역모, 달지 못한 빨간명찰

김화빈 2024. 9. 2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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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 채 상병 기수 전역날 현충원 찾은 해병들... 동기·대대장·예비역연대 연이어 발걸음

[김화빈, 소중한 기자]

 고 채수근 상병이 속한 해병대 1292기의 전역날인 26일 오후, 대전 현충원의 채 상병 묘에 그의 이름이 담긴 '빨간 명찰' 군복이 놓였다.
ⓒ 김화빈
오늘 전역한 해병 1292기 중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단 한 명, 고 채수근 상병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26일 오후 1시께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4묘역 앞. 앳된 영정사진 앞에 '채수근'이라고 적힌 빨간 명찰과 전투복, 팔각 전역모가 놓였다. 묘비 양 옆에는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근조화환이 자리했다.

다만 채 상병을 돌려보내지 못한 국가의 추모는 없었다. 국가 이름의 꽃 한송이 없던 그의 묘 인근에선 태극기 깃발만 가을 바람에 여러번 나부꼈다.

포항서 전역 후 곧장 대전 향한 동기
 대전 현충원에 있는 채 상병 묘의 방명록에 누군가 추모 메시지를 적었다.
ⓒ 김화빈
갓 전역한 채 상병의 동기생들이 이날 그의 묘를 찾았다. A씨는 포항에서 전역한 뒤 곧장 대전의 현충원으로 이동해 동료의 평안과 안식을 기원했다.

그는 "(사고 당일) 저희 부대도 수색지원을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제가 (사고가 난)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결과만 도출하려는 잘못된 지휘관 때문에 안전을 무시한 채 작전이 강압적으로 진행됐다"며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책임자로 지목했다.

A씨는 "고인과 대화한 적은 없지만, 무사히 구조 작업을 마쳤더라면 함께 웃으면서 전역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며 "시간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도록 모두가 (채 상병 사건에) 계속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채 상병 소속 부대의 대대장이었던 이용민 중령도 비슷한 시각 묘를 찾았다. 흰 장갑을 낀 그의 손엔 전역모와 국화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모자 안쪽에는 부대 상징인 불곰 마크와 "불곰전우! 수근아! 대대장이 늘 함께할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중령은 경례와 묵념 후 묘비를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이 중령은 "수근이 너를 위해서 전역모를 준비했다"고 되뇌이며 모자를 묘비 위에 얹었다. 이후 취재진과 만난 그는 "채 해병의 명복을 빌며 가족분들께 위로의 말씀 드린다"며 "부대 성패를 책임지는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해병 전우 수근이를 끝까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채 상병의 대대장이었던 이용민 중령이 대전 현충원의 묘를 찾아 전역모를 전했다.
ⓒ 김화빈
이 밖에도 자식을 해병대에 보낸 부모, 예비역, 일반시민들도 묘를 찾아와 고인의 명복을 기렸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전역하셨을 한 명의 해병에게. 누가 시켰는지 밝혀지지 못한 위험 속에서 희생당한 젊은 영혼을 기억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기억하고 힘을 보태겠습니다. - 채 상병 어머니가 만든 조문객 방명록에 한 시민이 쓴 추모글

너와 같이 전역하지 못해 아쉬워. 해병은 절대 죽지 않아, 다만 돌아오지 않는 것이지. 그곳에선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루며 푹 쉬길. - 채 상병 동기들이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보낸 편지

선배 해병들 "반드시 죗값 치르도록 싸울 것"
 해병대예비역연대가 대전 현충원의 채 상병 묘를 참배했다.
ⓒ 김화빈
해병대예비역연대도 오후 3시께 이곳을 찾아 추모식을 진행했다. 정원철 회장은 "채 해병이 무사히 군생활을 마쳤으면 동기들과 함께 기쁘게 전역을 맞았을 텐데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순직 1주기에도, 채 해병이 전역했을 날에도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며 "국민들은 누가 채 해병을 죽음으로 몰았는지, 누가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했는지, 누가 수사외압을 가하며 유족의 아픔을 가중시키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발언 도중 울먹인 정 회장은 "채 해병 앞에서 맹세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채 해병이) 편히 쉴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싸우겠다"며 "(고인을) 사지로 몰아넣은 이들은 처벌 받고 수사외압을 가한 윤석열 정권은 반드시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인권센터는 성명을 통해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아픔만큼 큰 고통도 없다"며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휘두르며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윤석열 정권은 채 상병을 떠나보낼 수조차 없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늘 가장 아픈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계실 유가족들께 위로와 연대의 뜻을 전한다"며 "채 상병을 무사히 돌려보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국가, 돌아올 수 없게 만든 지휘관과 책임자들, 떠나보낼 수 없게 만드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 모두에게 마땅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대전 현충원의 채 상병 묘에 그의 이름이 담긴 '빨간 명찰' 군복이 놓였다.
ⓒ 김화빈
한편 전날에는 채 상병의 어머니가 '대한민국 순직 국군장병 유족회' 홈페이지에 '그립고 보고 싶은 아들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올렸다. 어머니는 편지를 통해 "(사건 발생 후 1년이 지났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나 속상하다"며 "책임자를 밝혀달라고 냈던 수사결과 이의신청도 감감무소식이라 답답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힘도, 내세울 것 없는 엄마지만 아들 희생의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엄마가 그나마 살아야 할 이유"라며 "긴 시간 동안 자기 본분을 다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걸 걸고 있는 분들처럼 엄마도 힘내 볼게. 사랑해 아들"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 '채 상병 전역날' 하루 앞둔 어머니 "도저히 용서 안 돼" https://omn.kr/2ab2u)

채 상병은 지난해 7월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 없이 경북 예천 지역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작전 과정에 투입됐으나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사망사건을 11개월간 수사한 경북경찰청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직권남용,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을 무혐의 처분하고 중간 관리자 6명만 업무상과실치사의 공동정범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결과에 반발한 유족은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사망사건과 별개로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하고 있다.

▲ 채 상병 전역일, 대대장이 바친 '전역모' ⓒ 김화빈, 소중한
▲ 채 상병 동기들 "해병은 절대 죽지 않잖아..." ⓒ 김화빈,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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