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은 죽지 않잖아..." 쓸 수 없는 전역모, 달지 못한 빨간명찰
[김화빈, 소중한 기자]
▲ 고 채수근 상병이 속한 해병대 1292기의 전역날인 26일 오후, 대전 현충원의 채 상병 묘에 그의 이름이 담긴 '빨간 명찰' 군복이 놓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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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1시께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4묘역 앞. 앳된 영정사진 앞에 '채수근'이라고 적힌 빨간 명찰과 전투복, 팔각 전역모가 놓였다. 묘비 양 옆에는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근조화환이 자리했다.
다만 채 상병을 돌려보내지 못한 국가의 추모는 없었다. 국가 이름의 꽃 한송이 없던 그의 묘 인근에선 태극기 깃발만 가을 바람에 여러번 나부꼈다.
▲ 대전 현충원에 있는 채 상병 묘의 방명록에 누군가 추모 메시지를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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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고 당일) 저희 부대도 수색지원을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제가 (사고가 난)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결과만 도출하려는 잘못된 지휘관 때문에 안전을 무시한 채 작전이 강압적으로 진행됐다"며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책임자로 지목했다.
A씨는 "고인과 대화한 적은 없지만, 무사히 구조 작업을 마쳤더라면 함께 웃으면서 전역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며 "시간이 지나도 수그러들지 않도록 모두가 (채 상병 사건에) 계속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채 상병 소속 부대의 대대장이었던 이용민 중령도 비슷한 시각 묘를 찾았다. 흰 장갑을 낀 그의 손엔 전역모와 국화 한 다발이 들려 있었다. 모자 안쪽에는 부대 상징인 불곰 마크와 "불곰전우! 수근아! 대대장이 늘 함께할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중령은 경례와 묵념 후 묘비를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 채 상병의 대대장이었던 이용민 중령이 대전 현충원의 묘를 찾아 전역모를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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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오늘 전역하셨을 한 명의 해병에게. 누가 시켰는지 밝혀지지 못한 위험 속에서 희생당한 젊은 영혼을 기억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기억하고 힘을 보태겠습니다. - 채 상병 어머니가 만든 조문객 방명록에 한 시민이 쓴 추모글
너와 같이 전역하지 못해 아쉬워. 해병은 절대 죽지 않아, 다만 돌아오지 않는 것이지. 그곳에선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루며 푹 쉬길. - 채 상병 동기들이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보낸 편지
▲ 해병대예비역연대가 대전 현충원의 채 상병 묘를 참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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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순직 1주기에도, 채 해병이 전역했을 날에도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며 "국민들은 누가 채 해병을 죽음으로 몰았는지, 누가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했는지, 누가 수사외압을 가하며 유족의 아픔을 가중시키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발언 도중 울먹인 정 회장은 "채 해병 앞에서 맹세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채 해병이) 편히 쉴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싸우겠다"며 "(고인을) 사지로 몰아넣은 이들은 처벌 받고 수사외압을 가한 윤석열 정권은 반드시 죗값을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인권센터는 성명을 통해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아픔만큼 큰 고통도 없다"며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휘두르며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윤석열 정권은 채 상병을 떠나보낼 수조차 없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 대전 현충원의 채 상병 묘에 그의 이름이 담긴 '빨간 명찰' 군복이 놓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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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힘도, 내세울 것 없는 엄마지만 아들 희생의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엄마가 그나마 살아야 할 이유"라며 "긴 시간 동안 자기 본분을 다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걸 걸고 있는 분들처럼 엄마도 힘내 볼게. 사랑해 아들"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 '채 상병 전역날' 하루 앞둔 어머니 "도저히 용서 안 돼" https://omn.kr/2ab2u)
채 상병은 지난해 7월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 없이 경북 예천 지역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작전 과정에 투입됐으나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사망사건을 11개월간 수사한 경북경찰청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직권남용,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을 무혐의 처분하고 중간 관리자 6명만 업무상과실치사의 공동정범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결과에 반발한 유족은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사망사건과 별개로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수사하고 있다.
▲ 채 상병 전역일, 대대장이 바친 '전역모' ⓒ 김화빈, 소중한 |
▲ 채 상병 동기들 "해병은 절대 죽지 않잖아..." ⓒ 김화빈, 소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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