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려주세요” 북한 소음 공격에 고통받는 파주시
주민들 “밤낮 없이 3주째 소음 지속” 호소
위기 초래한 대북전단 살포 강력 대처 요구
“제발 살려주세요.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고, 귀마개를 하도 했더니 귀가 짓물러 염증까지 생겼습니다.”
18일 오후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내 민방위대피소에서 열린 파주시 이동시장실. 이 자리에는 최근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인해 극심한 소음 피해를 겪고 있는 민통선마을 주민 30여명의 절규가 가득했다.
이동시장실에 참석한 이들은 비무장지대 최일선에 있는 조산리 대성동 마을, 백연리 통일촌, 동파리 해마루촌 등 민통선마을 주민들로 일부 주민들은 눈물까지 보이며 접경지역에서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설명했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이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동시장실을 개최했다. 당초 이동시장실은 대성동 마을에서 예정됐으나, 출입 허가를 받지 못해 계획이 무산되자 임진각으로 장소를 옮겼다.
올해 파주 접경지역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선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와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이어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시장은 본격적인 주민과의 질의응답에 앞서 그간 주민들이 겪은 고통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접경지역에서 녹음한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을 들려줬다. 북한은 지난 9월 28일쯤부터 고출력 스피커로 교체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의 소음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 시장이 들려준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에서는 여성의 웃음소리, 동물이 짓는 소리 등이 섞인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김 시장과의 질의응답에서 주민들은 특히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젊은 시절 결혼 후 대성동 마을에 정착해 50여년째 거주하고 있는 정순자(76·여)씨는 “밤낮으로 짐승 소리, 귀신 소리, 쇠 긁는 소리가 들려 밤잠을 이룰 수 없다.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다. 귀마개를 20여일이 넘게 사용했더니 귀가 짓물러 염증까지 생겼다”면서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 더 두렵다. 너무 고통스럽고 아프다. 제발 살려달라”는 절박한 호소와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대성동 마을에서 40여년째 거주하고 있는 황연의(63·여)씨는 “40년간 많은 대남 방송을 들어봤지만 이제껏 들어본 대남 방송 중 소음 강도가 가장 세다”면서 “수십 년간 접경지역 주민들은 큰 피해를 겪고 있다. 정부가 강력한 대책을 세워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접경지역에 방음벽을 설치해 주거나, 대남 확성기 방송을 피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이들 주민들은 공통된 의견으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차단하는 것이 시급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통일촌 이완배 이장은 “탈북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민통선 주민들의 인권은 없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북한에서는 대북전단이 날아오면 원점 타격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전쟁이라도 나기를 바라나”라며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에 울분을 토했다.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파주 접경지역 주민 피해는 국회에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 시장은 지난 14일 국회 행안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대남 확성기 소음 피해 실상을 알리고, 대북전단 살포 행위 차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16일에는 경기도가 파주, 연천, 김포를 위험구역으로 설정해 대북전단 살포 행위자 출입금지 명령과 불응 시 특별사법경찰을 투입해 강제 퇴거와 형사처벌까지 내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김 시장은 “강대강 대결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가 화해무드로 돌아서야 하지만 중앙정부는 대화와 타협, 화해의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라며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도 않고, 오물풍선 살포에도 안내문자만 보낼 뿐 제대로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남 확성기 공격이 연일 계속되지만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장단면 주민을 비롯한 파주시민,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돌아가고 있다”면서 “국민을 위해 기조를 바꿔야 한다. 간단하다. 대북전단 살포 막고 대북방송 안 하면 된다. 소중한 주민들의 의견 잘 전달하고 방법을 잘 찾아보겠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시장은 “지금 파주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생명과 안전이 모두 위협받는 엄중한 상황”이라며 “위험구역 설정에 따라 확보하게 된 지자체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대북전단 살포행위 적발과 단속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파주=박재구 기자 park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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