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8일, 고척 스카이돔.
왼손 투수가 던진 공을 왼손 타자가 밀어서 홈런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그 타자에게는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타자는 국내 최고의 좌투수 양현종 선수를 상대로도 똑같은 장면을 만들어낸 바가 있습니다.
좌타자가 좌투수의 공을 밀어서 넘기는 보기 쉽지 않은 장면을 여러 번 만들어낸 좌타자는 바로 2015년 프로 입단 이후,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키움 히어로즈의 송성문 선수입니다.
송성문 선수와 지난 8월 30일, 금요일 롯데와 키움의 경기 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송성문 선수의 제 칼럼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시즌 마치고 박동원 선수를 만났을 때 박동원 선수가 가을 야구를 앞두고 '포스트 시즌에는 어떻게 타격을 해야 하는가?'를 물었던 선수가 바로 '가을성문' 송성문 선수였습니다.
송성문 선수도 박동원 선수와의 통화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네. 기억나요. 코리안 시리즈 앞두고 갑자기 전화가 왔더라고요."
저는 '가을 성문'이 봄 성문, 여름 성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크지 않을까요? 시작은 결혼(2023년 12월 17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캠프를 시작하고 지금과 같은 몸의 변화가 생기면서 지금의 성적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몸의 변화는 SBS스포츠 이택근 해설위원도 주목하는 바였습니다. 이택근 위원은 중계방송을 하면서 '송성문 선수와는 함께 선수 생활을 했는데 이런 몸은 처음 본다. 벌크 업을 하면서도 스피드를 유지하고 있고 이 새로운 몸에 선수 본인이 완벽하게 적응을 하고 있다.'면서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이택근 위원은 올 시즌 송성문 선수의 성적 향상의 가장 큰 이유로 '몸의 변화'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선수 본인은 이 변화가 벌크 업(bulk-up : 일반적으로 근육량 증가에 따른 신체사이즈 증가를 의미)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저는 모든 분들의 생각처럼 벌크 업을 한 게 아닙니다. 저는 날렵한 몸을 만들고 싶어서 쓸데없는 군살을 빼고 싶었거든요. 쓸데없는 살을 빼려면 식단조절이 필요한데 클린 푸드 위주의 식단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근육이 더 많이 붙었습니다. 현미밥 먹고, 가공 식품 안 먹고, 튀김 안 먹고, 건강한 단백질과 자연 지방 위주의 섭취를 하다 보니까 근육이 붙었습니다."
송성문 선수가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몸은 솔직하다'였습니다."저는 신인 때부터 언제나 몸이 비슷했어요. 체형이나 인-바디(체지방 측정 기구) 상으로 저는 변하지 않는 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몸을 좀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했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했었고 나름의 운동은 했는데 크게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죠. 그런데 이번 겨울의 변화를 보니까 몸이 제일 솔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을 만드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더군요."제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찾아보려고 노력을 하고, 꾸준하게 자신을 속이지 않고 노력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니 정말 몸만큼 솔직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딱 3개월 걸렸습니다. 신체적인 변화는 내가 노력을 하게 되면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8~9년 동안 변화가 없다가 전문적으로 딱 3개월 만에 변하는 것을 보니까 중요한 것은 정말 노력이라는 것을 알았고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역시 마음의 변화였습니다."몸의 변화, 환경의 변화보다 더 큰 것이 마음가짐의 변화였습니다. 지난 시즌 마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기회가 가고, 저도 물론 젊은 시기에 저희 팀에서 많은 기회를 받기는 했는데요. 객관적으로 작년처럼 2할 중반 정도를 치고,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지 못하게 되면 경기에 나갈 기회가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은퇴가 멀지 않아 지겠다 생각이요. 저는 야구를 하는 게 즐겁고, 그라운드에서 건강하게 야구를 하는 게 행복한 사람인데 그런 행복한 시절이 끝나는 것이 빨리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가짐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위기감이었던 거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오직 성적 향상이 답이라는 결론을 냈습니다."제가 혜성이, 정후 같은 확실한 실적을 내지도 못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기회를 받을 수도 없고, 매년 신인은 열 명씩 들어오는데 제가 작년 같은 모습(2023년 타/출/장, 0.263/0.325/0.358)이었다면 그런 친구들에게 기회가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야구를 못해서 그만둘 때 그만 두더라고, 적어도 노력을 100% 다 해보자. 노력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도록 하자고 마음을 먹었죠. 모든 포커스를 야구에 맞춰보고, 그래도 못하면 경기 못 나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방출이 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 유니폼을 벗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꾸준한 노력을 했습니다.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왼손 투수 상대로 밀어친 홈런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그동안 오른쪽 어깨가 일찍 열렸습니다. 모든 우투 좌타 선수들은 공감할 거예요. 치고 나서 1루에 빨리 뛰려고 하니까 때릴 때 본능적으로 오른쪽 벽이 무너지는 단점이 있던 건데요.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힘의 방향을 공이 오는 길로 전달하기 위해서 지난 2년 동안 연구하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올해 타격을 할 때 오른쪽 벽이 생기게 됐고, 조금씩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올 시즌, 송성문 선수는 분명 엄청난 시즌을 보내고 있습니다. 분명 다른 시즌이라면 골든 글러브 수상이 충분한 기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3루수 포지션의 김도영 선수로 인해서 이런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도 골든 글러브 수상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요?"저는 오히려 영광입니다. 그런 괴물 같은 선수와 함께 이름이 거론되는 것 만으로 기뻐요. 예전에는 가을 야구 아니면 스포트라이트나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올해는 이렇게 같은 포지션이라는 이유로 제 이름이 거론되는 게 너무 좋아요. 팀 성적의 아쉬움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야구를 그만둘까 걱정했던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행복한 한 해입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지난 42년 동안 3루수 골든 글러브 수상자의 WAR 평균은 기록 전문 사이트 STATIZ의 WAR 기준으로 4.84였습니다. 9월 5일을 기준으로 팀이 18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서 6.19의 WAR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정, 이범호, 이대호, 김동주 거슬러 올라가면 김한수, 한대화 등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이 3루수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활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저는 이제 시작일 뿐이고요. 한해 반짝하는 사람은 많잖아요. 그래도 기분 좋은 건 혜성이가 종종 건넨 한마디였어요. '형. 그렇게 몸 만들어서 잘하니까 내가 정말 기분 좋다'라고 하더라고요."

송성문 선수와 김혜성 선수는 각각 2014년과 2016년 아마추어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 선후배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3~4년은 잘해야죠. 정말 잘하고 싶고요!"
위기를 통해 자신을 자각하면서 2024년을 화려한 시즌으로 만든 송성문 선수는 향후 3~4년, 아니 충분히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이번 만남이었습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