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국시리즈 MVP는 오지환 선수였습니다. 오지환 선수의 활약은 시리즈 MVP를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자단 투표에서 무려 86%의 득표율(투표 인원 93표 중 80표)을 획득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잊지 말아야 할 2위 선수도 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그 선수의 역할과 활약도도 오지환 선수 못지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차전 패배 후 2차전 패배의 일보 직전까지 몰려있던 LG트윈스가 2차전을 잡고 분위기 전환을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 선수의 역전 결승 투런홈런이 있었습니다. 바로 올해 FA로 LG 트윈스에 와서 우승 청부사가 됐던 포수 박동원 선수였습니다.
지난 11월 27일 월요일, 잠실야구장에서 박동원 선수를 만났습니다. 저와 박동원 선수 모두 10년 넘게 야구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1:1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박동원 선수는 환하게 웃으면서 제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항상 뵀는데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건 처음이네요.”
저도 우승 축하 인사와 함께 선수단의 벳부 여행 이후에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벳부 여행 다녀온 이후에 지금은 가족들과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벳부에서 온천도 하고 그랬더니 피부가 좋아졌더라고요.”

제일 먼저 가장 궁금했던 2차전 홈런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점은 1차전부터 2차전 홈런이 나올 때까지의 과정이었습니다.
박동원 선수는 1차전 첫 타석 초구를 공략했고, 두 번째 타석에는 2구째에 몸에 맞았습니다. 세 번째 타석은 3구 삼진. 네 번째 타석은 공 다섯 개를 봤습니다. 1차전은 이렇게 타석에 들어설수록 공을 지켜봤는데 2차전은 달랐다. 모두 초구(1,3,4번째 타석), 아니면 2구(두 번째 타석)에 공략을 했거든요.
“제가 2015년에 처 가을야구를 뛸 때 정말 잘했습니다. 그 당시는 가을야구 경험도 없고 평상시와 똑같은 마음가짐으로 큰 욕심 가지지 않고 타석에 들어가서 그냥 쳤거든요. 그랬더니 결과가 정말 좋았어요. 시간이 차차 흐르면서 ‘내가 전에 잘했으니까 올해도 잘하겠지’ 이런 마음으로 나갔는데 점점 타석에 나가서 신중한 마음이 되더라고요. 이번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작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당시의 제 타격을 다시 한번 봤어요. 소형준 선수의 실투에 타이밍을 전혀 못 맞추더라고요. ‘내가 왜 저렇게 쳤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잘하려는 마음이 컸다는 결론을 내고 가을야구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누구냐면 키움의 송성문 선수요. 포스트시즌 경기만 가면 왜 잘 치냐고 물었더니 제게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편한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해요. 이건 포스트시즌이니까 보너스 경기잖아요. 그러니까 형도 더 잘하려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편한 마음을 가지고 쳐요.'
그래서 1차전이랑 2차전 첫 타석까지는 그냥 똑같은 마음 가지고 타석에 들어갔어요. 그때까지 결과가 좋지는 않았죠. 생각해 보니 너무 편하게 생각하면서 초구부터 배트를 휘두르다 보니까 제가 너무 어려운 공들을 치고 있더라고요. 2차전 두 번째 타석부터 전략을 수정해서 나갔습니다. ‘내 쪽으로 가깝게 오는 공을 치자.’ 이런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때부터는 시리즈 끝날 때까지 같은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네 번째 타석, 8회 1사 2루에 타석에 들어선 박동원은 박영현 투수의 초구 체인지업을 받아 때려서 역전 결승 투런홈런을 만들어냈습니다. 혹시 그 타석에서 특정 구종에 대한 대비를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전력분석에서 ‘박영현 선수는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초구로 변화구를 많이 던진다’는 조언을 했어요. 그래서 변화구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일단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딱 체인지업을 노리자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박영현의 변화구는 체인지업 아니면 슬라이더니까 둘 중 하나겠다는 생각은 했죠.”
오랜만의 경기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사실 시리즈를 앞두고 유일한 걱정은 오랜만에 들어서는 상대 투수의 스피드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였는데 우리도 준비를 잘해서 그런지 타석에 들어가도 그렇게 빠르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적극적인 대처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체 청백전도 많이 치르고 평소에도 계속 빠른 공을 보는 훈련을 하면서 스피드 적응을 했던 것이 주효했습니다.
이제 3차전 역전 투런홈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볼 시간이 됐습니다. 6회 무사 1루에서 손동현 투수를 상대하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사실 이때는 초구부터 무조건 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투 볼이 됐어요. 제가 이번 시리즈 내내 ‘이 공은 안쳐야겠다’ 생각하고 일부러 보낸 공이 딱 세 개가 있는데 이때가 그중 하나입니다. 1차전에 고영표 선수에게 몸 맞는 공 맞고 나갈 때, 그리고 이 공, 마지막이 4차전에 상대 투수가 올라오자마자 아직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것 같아서 기다린 적이 있고요. (세 번째 타석인 김영현 선수의 타석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박동원 선수의 타석에서 교체되어 올라온 김영현 선수는 박동원 선수에게 볼넷을 내줬습니다.)
투 볼이 되고 나서 하나 기다리자 생각을 했습니다. 괜히 건드렸다가 볼을 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만약에 볼이 돼서 3볼이 되면 우리 팀에는 더 좋은 거니까요. 그런데 스트라이크가 오더라고요. 다음 공은 또 스트라이크가 올 것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 덕에 홈런이 나왔죠.”

빠른 공에 강한 이미지가 있는 박동원 선수인데 빠른 공이 4개 연속으로 온 것은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의외였습니다. 반면 박동원 선수는 여기에 대해서는 매우 단순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직구에 강한 이미지가 있기는 하죠. 그래도 그런 부분은 결과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제가 그 공을 못 쳤다면 KT 배터리의 허를 찌른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찬사를 보냈을 겁니다.”
플레이오프 때부터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줬던 KT의 핵심 불펜 투수 박영현과 손동현, 두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터트린 소감이 궁금했습니다.
“워낙 두 선수가 공이 좋아서 저도 두 선수가 핵심 선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기다리는 기간 동안 KT와 NC 불펜 투수들 이미지를 계속 그려봤습니다. ‘이 투수가 나오면 어떻게 치지?’, ‘이 투수는?’ 이렇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데 양쪽 불펜 투수들 모두 너무 좋은 거예요. 특히 박영현 선수의 경우는 평상시에도 공이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와중에 아시안게임에서 엄청난 공을 던졌잖아요. ‘그 공을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을 많이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 좋은 투수들과의 맞대결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서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직구에 강하다는 이미지에 대해서 박동원 선수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제가 야구를 쭉 해오면서 배팅 포인트가 몸 뒤쪽에서 타격을 할 경우 안타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상대 투수가 던지는 공이 직구가 됐든 변화구가 됐든 항상 타격의 포인트를 앞에 놓고 치자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뒤쪽에서 맞으면 자존심도 상하고요. 솔직히 투수를 공략하는 데 있어서 그 타석의 희망이 안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공이든 절대 안 늦으려는 마음가짐 가지고 타석에 들어갑니다. 특히 직구는 상대가 세게 던지면 저도 더 세게 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직구에는 절대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거죠.“
지난 시즌에도 박동원 선수는 기아 타이거즈의 5강을 확정하는 결정적인 홈런을 터트렸던 바가 있습니다. 매우 공교롭게도 상대팀은 LG 트윈스였죠. 2022년 10월 6일. LG의 백승현 상대로 때려낸 홈런이었는데 이 홈런으로 기아 타이거즈는 가을야구 매직넘버를 매직넘버 1로 줄였습니다.
“저도 그 홈런은 물론 기억하죠. 운이 좋았던 거고요. 그런 결정적인 타이밍에 실투가 제게 왔으니까요. 승현이 진짜 공 좋아요. 만약에 다른 코스로 어렵게 왔다면 저는 못 쳤어요. 팀을 옮겨서 LG로 왔는데 승현이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승현아. 네 덕분에 내가 여기 왔다.’라고 했더니 ‘형. 저한테는 밥 한 번 사주셔야죠.’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범경기 기간에 백승현 선수에게 밥을 한 번 샀습니다."

박동원 선수는 이 결정적인 홈런이 나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실 그 홈런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 당시가 잔여경기 일정이었고, 잠실에서 LG와 경기를 하고 이튿날 바로 광주로 가서 경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잠실 경기에서 백승현 선수 공을 한 번 타석에서 봤어요. 그리고 다음날 바로 다시 같은 투수의 공을 보니까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던 거죠. 궤적도 눈에 익어 있었고요.”
자연스럽게 LG로 이적한 이야기로 넘어왔습니다. 특히 박동원 선수는 2023 시즌 초반부터 홈런 선두 경쟁에 가세하면서 새로운 팀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원래 사람들이랑 금방금방 친해지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요. 지난 시즌 마치고 제가 LG로 계약이 빨리 진행이 됐잖아요. 지난 시즌에 시즌 중에 팀을 옮기게 돼서 새 팀에 적응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를 알게 됐거든요. 지난해 기아 타이거즈에서는 시즌 중 이적이라서 그런지 정말 힘들었어요. 우선 팀에 제가 아는 선수가 한 명도 없는 거예요. 그나마 딱 한 명 같이 야구를 했던 선수가 있는데 종욱이 형(고종욱 선수)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갔을 때부터 부상으로 1군에서 빠졌어요. 1군에 물론 형우 형, 성범이 형, 선빈이 형 같은 경우는 경기 중에 타석에 들어오면 인사는 나누던 사이기는 했죠. 그런 가운데서 선빈이 형이 저를 잘 챙겨줘서 기아에서도 적응을 잘할 수 있었어요.
새로 LG와 계약하고 나서도 처음에는 참 많이 어색했어요. 김용일 코치님이 계약 이후에 야구장 나와서 운동을 해도 괜찮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처음에는 걱정이 되더라고요. 선수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 너무 서먹서먹 하잖아요. 그래도 빨리 얼굴 보고 선수들이랑 한마디라도 더 해보는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계약을 하자마자 야구장 나와서 바로 운동을 했어요. 그게 빠른 적응에 도움이 됐습니다."
올 시즌의 LG와 지난 시즌의 기아, 모두 강타선을 가진 팀들이었는데 박동원 선수는 두 팀의 차이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까요?
“두 팀 모두 강합니다. 특히 기아는 개개인의 타격 능력치가 모두 높은 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올 시즌의 저희 팀은 개개인의 역할 분담이 잘 이뤄진 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출루, 도루, 장타 등등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선수들이 모인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올 시즌 LG의 기동력이 지난 시즌의 기아보다 우세했다고 봅니다."
새롭게 합류한 LG 트윈스에서 시즌 초반부터 리그 홈런 선두로 치고 나갔는데 이 당시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초반에 홈런이 너무 잘 나왔습니다. 딱 스위트 스에 맞은 느낌이 아니라 배트 중심에 조금만 가깝게 맞아도 넘어가는 공들도 많았어요. 힘도 충분했고 운도 따랐습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한주에 홈런 3개도 나왔으니까요.”

그러다 한동안 홈런이 안 나올 때는 어땠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저는 제가 못 치는 것에 대해서는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반면 제 계획에 어긋나는 타격이 됐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예를 들어서 바깥쪽만 쳐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몸쪽 공에 배트가 나가서 아웃이 되는 경우가 그런 경우죠. 그런데 홈런이 초반에 너무 자주 나오다 보니까 잘 맞았는데 안 넘어가는 타구들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더라고요. 저는 원래 그런 선수가 아닌데 주변에서 저를 홈런왕, 홈런왕 하니까 거기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신경을 쓰고 있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잘 맞아서 펜스 앞에서 잡히면 ‘내 계획대로 실행이 잘 됐으니까 공이 저기까지 갔지. 또 치면 되지.’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는데 홈런왕이라는 단어가 주변에서 들려오고 나서부터 펜스를 안 넘어가면 아쉬워하고 있더라고요. 홈런왕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요.
제가 시즌 들어오기 전에 베스트라고 생각을 했던 게 일주일 홈런 한 개씩이었어요. 그러면 몇 개예요? 6개월이면 24개입니다. 이거 엄청난 수잖아요. 그런데 초반에 홈런이 너무 잘 나오고 또 주변의 홈런왕에 대한 이야기에 욕심이 생기고 거기서 무너진 거죠.”
이렇게 무너진 타격을 다시 바로 잡는 데는 주변의 많은 도움이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자문도 많이 구했습니다. 상무에서 처음으로 타격을 체계적으로 배웠던 허문회 전 감독님께도 다시 자문을 구했었고요. 허 감독님께는 이런 일 아니더라도 자주 전화를 드리는 편인데 제가 홈런 18개 치고 더 못치고 있을 때 연락을 드렸거든요. 그랬더니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니 5월달에 1년 칠 홈런 다 쳤다.’
이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랬더니 홈런 두 개가 더 나오면서 LG 입단하면서 목표로 이야기했던 한 시즌 스무 개 홈런을 채웠고요.
정말 큰 도움을 준 분은 이호준 코치와 모창민 코치죠. 그 두 분은 저를 매일 보니까요. 항상 제가 뭔가를 궁금해하면 답을 주시고요. 특히 모창민 코치는 저와 함께 군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더 격의 없게 친하게 지내면서 고민을 털어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잘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모창민 코치님이 이렇게 말해줬어요.
'너 상무 시절에는 야구선수도 아니었어. 지금 정말 잘하고 있는 거야.'
정말이거든요. 저는 그때 선수도 아니었어요. 지금 많이 늘었죠. 그걸 모창민 코치는 제가 못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봤으니까요. 그런 분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는데 ‘예전에는 더 못했는데 지금 이 정도면 잘하는 거고 감사한 거지.’ 이렇게 뒤를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고 슬럼프를 탈출했습니다."

박동원 선수의 평상시 경기를 대비하는 훈련을 보면 남들이 하지 않는 다양한 드릴(Drill, 반복 훈련)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몇 차례 어떤 훈련인지 물어봤던 적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설명을 하는 부분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드릴들이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아무 공에나 붕붕 배트를 휘두른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데 저는 생각보다 계획도 많이 하고 일찍 나와서 훈련도 다양하게 하고 있어요. 새로운 훈련법도 다양하게 적용해 보고요. 올해 같은 경우는 모창민 코치가 많이 도와줬어요. 출전하지 않는 날도 훈련은 하니까 매일매일 오후 두 시 반에 실내 타격훈련장에서 만나서 모창민 코치님이 공을 올려주면 제가 치고요. 이런 부분이 굉장히 컸습니다."
타격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나눴고 이제 포수 박동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입니다. 특히 2023시즌 LG는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불펜이 완전히 재편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니까요. 그 과정에서 포수 박동원의 역할은 뭐였을까요?
“고우석 선수의 부상으로 저도 걱정이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제 꿈이 지난해 SSG가 달성했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거든요. 그런데 개막전 첫판을 지니까 목표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우석이도 아팠죠. 거기서 유영찬, 백승현 선수가 정말 잘해줬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유영찬 선수는 실질적으로 1군 첫 시즌인데 정말 잘해줬어요. 저는 루키급 선수들은 좋은 과정을 거쳐서 좋은 기억을 계속 가지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맞으면 성장이 안돼요. 영찬이는 힘든 상황에서 자주 올라왔는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잘 던져줬어요. 저는 보통 선수들과 처음 호흡을 맞추면 선수들이 원하는 공을 던지게 하는 편이요. 제가 이 선수가 뭘 잘 던지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유영찬 선수는 제 리드에 잘 따라줬어요. 또 이 선수는 템포가 너무 좋아요. 상대 타자들이 공략하기 어려운 템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영찬이에게 사인을 내고 잠깐 수비 위치를 확인하고 마운드를 보면 벌써 던지고 있어요. 그만큼 스마트해요. 자기 공에 대한 믿음도 있고요. 이런 좋은 자질을 갖춘 새 얼굴들이 편하게 던질 수 있게 해주는 게 제 역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박동원 선수는 왜 포수가 됐을까요?
"저는 어린 시절에 야구를 처음 접할 때부터 딱 세 개의 포지션이 제일 멋있어 보였습니다. 투수, 포수, 유격수 이렇게 세 포지션이요. 그중에서 최고는 포수였어요. 중계에도 자주 나오고 또 선수로서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포수가 야구선수 최고의 포지션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다양한 포지션을 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고정으로 포수를 봤습니다. 특히 학생야구 때는 선수들의 수비 위치를 포수가 옮길 수가 있으니까 대단한 포지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로에 와서는 그럴 수는 없죠. 분야별 코치님들이 계시니까요. 그런데 투수의 제구가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는 수비 코치에게 제가 말씀드린 경우도 있습니다. 다 몸쪽 공을 대비해서 수비 위치를 옮겨 놨는데 투수의 공이 그렇게 안 올 것 같은 생각이 들고 할 때는요. 그래도 아주 적은 경우이기는 합니다."
올 시즌 LG의 우승은 박동원 선수에게도 첫 우승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박동원 선수는 어느 시점에 우승을 예감했을까요?
“올 시즌 인천으로의 두번째 원정 때였습니다. 아마 6월, 7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두 팀이 반 경기 차로 1,2위였는데 SSG를 상대로 위닝을 했죠. 그때 처음 생각을 했죠.
‘우리가 우승을 할 수도 있겠구나.’
(확인 결과 SSG와의 경기는 6월 26일~28일 3연전에서 우천으로 한 경기가 취소가 됐고, 당시 2위였던 LG는 1위 SSG를 상대로 2경기를 LG가 모두 승리하면서 1위 자리를 탈환했습니다. LG 트윈스는 그날 이후 한 번도 2위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후반기 가니까 KT가 올라오더라고요. 이때는 승차가 여유 있기는 했는데 조금은 불안불안했었거든요. 그런데 두산과의 경기에서 그것도 상대 선발이 알칸타라였는데 그 경기를 이겼어요. 그때 정규 시즌 우승에 대한 확신이 들었죠. (10월 1일, 두산 베어스 전, 7:4 승리)
통합우승에 대한 확신은 3차전 오지환 선수의 결승 홈런 순간에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2차전 본인의 홈런 때는 어땠을까요?
“그때는 시리즈에 대한 생각보다 그 경기를 어떻게 이겨야 하나에 대한 생각이 더 컸습니다. 제가 포스트시즌에 아픈 기억이 있어요. 2015년 두산과 플레이오프를 할 때였는데 그 경기에서 저희가 다 이긴 경기를 내줬던 적이 있거든요. 저는 그 당시에 우리가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이라 ‘오늘 데일리 MVP는 나’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그 경기를 막판에 내줬어요. 말 그대로 확 뒤집어졌어요. 그래서 데일리 MVP에 대하 한이 맺혀 있었는데 역전 홈런을 8회에 친 거예요. 그때부터 제 머릿속에는 아웃카운트 세 개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어요. 한 점 차였고 무조건 첫 타자를 잡자. 계속 그 생각만 했습니다. 우석이가 올라왔고 전날 투구수가 30개였는데도 2차전에 공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정규 시즌에 받아봤을 때의 공 보다 훨씬 좋았던 거죠. 우석이 공 받아보는 순간 이 경기를 잡겠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8년 동안 한 맺혔던 포스트시즌 데일리 MVP의 소감도 들어봤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 사진은 처음 찍어보니까 바쁘더라고요. 생각보다 포즈를 취해야 할 곳이 많았어요. 왼쪽, 중앙, 오른쪽 번갈아가면서 시선도 줘야 하고요."
첫 우승을 차지한 박동원 선수는 벌써 다음 우승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우승을 해보니까 또 우승을 하고 싶습니다. 앞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 꿈이었다고 했는데 그건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니까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만큼 2022년 SSG 선수들이 대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어떤 형태의 우승이라도 꼭 다시 하고 싶습니다. 우승해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이 감정도 점점 희미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다가도 또 주변에서 팬 여러분들이 한 번씩 상기시켜 주시면 또 기분 좋아지고요. 여운이 정말 오래 가고 있습니다. 이런 기분 다시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우승을 하겠습니다."

2023년 LG 트윈스로 온 박동원은 29년 만의 통합 우승의 청부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벌써 다음 우승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불을 뿜는 그가 있다면 LG 트윈스의 이어지는 우승에 대한 기다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