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에 '나락' 가는 예능판에서 허경환이 살아남는 법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서 벗어나 조용히 마음을 쉬게 해주는 이야기가 필요하신가요. 지친 일상에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이야기를 추천합니다. 잔잔한 일상과 목소리에 위로받고 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질 거예요. <편집자말>
[황진영 기자]
'터져야 산다'는 예능판에서, 오히려 터지지 못한 아슬아슬한 개그를 '매력'으로 승화해 버린 개그맨이 있다. 허경환이다.
요즘 예능은 누가 더 크게 웃기느냐, 누가 더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느냐의 경쟁처럼 보인다. 캐릭터는 점점 선명해지고, 감정은 점점 과잉된다. 웃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확실한 캐릭터일수록 더 빠르게 소모된다. 이 구조 속에서 허경환은 상대적으로 덜 튀는 방식으로 예능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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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장면. |
| ⓒ TVN |
그렇게 그는 때로는 시청자와, 때로는 제작진과 묘한 '밀당'을 이어간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출연은 '대국민 면접'이라는 수식어를 낳으며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허경환의 캐릭터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잘생긴 몸짱 개그맨으로 불리기도 하고, 연매출 300억의 사업가로 소개되기도 한다. 주짓수 대회까지 출전한 경험에서는 자기관리의 끝판왕처럼 언급되기도 한다.
각각의 수식어는 '갓생'으로 포장될 수 있는 유효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허경환은 '갓벽한' 이미지로 스스로가 굳어지는 것을 오히려 경계한다. 그는 부풀려질 수 있는 이미지에 비해 어쩐지 모자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객관화하고, 그 간극을 개그의 소재로 삼는다.
CEO로서 강연을 다니며 하는 이야기 역시 누군가에게 거창한 꿈과 희망을 주기보다는 "허경환은 저렇게 살아왔구나" 정도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그친다고 말한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미안해진 마음을 단체 사진을 한 번 더 찍어주겠다는 제안으로 넘긴다는 그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났다.
그렇다고 그가 방송을 놓고 사업가로 변신을 완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사업을 시작한 계기를 "불러주지 않으면 갈 곳도, 할 것도 없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다. 사업을 이어가면서도 방송에서는 불러주면 어디든 갈 기세로 등장해 유행어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고, 예능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계속 의식하는 모습도 숨기지 않는다. 한마디로 조용히 제 몫을 해주는, '일상템' 같은 존재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그의 많은 이미지 중 무엇이 '본질'이냐를 가려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순간에 어떤 면이 드러나고, 어떤 순간에는 드러나지 않는가를 지켜보는 일에 가깝다. 허경환은 항상 전면에 나서기보다 상황에 따라 말의 밀도와 속도를 조절하는 쪽에 머문다.
그래서 그의 존재는 반복적으로 강조되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다시 인식되는 방식으로 남는다. 주목을 받으면 오히려 쩔쩔매다가, 터지지 못한 개그에 스스로 실망하며 함께 웃어넘기는 태도 또한 그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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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 놀면 뭐하니? > 한 장면. |
| ⓒ MBC |
갑작스러운 요청에 허경환은 이것저것 던져보지만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잠시 말을 흐리며 "빨리 닉네임을 정해주셔야 땀이 멈추는데..."라고 덧붙인다. 결국 '잔땀'이라는 닉네임이 붙고 나서야 웃는 그의 모습은, 화면 밖의 우리 또한 긴장을 풀고 슬며시 웃게 만든다.
그는 장면의 중심에서 캐릭터를 밀어붙이기보다는, 이미 형성된 분위기 안에서 공감의 한마디를 더하거나 자신의 말을 아끼는 쪽을 택한다. 웃음을 키우기보다는 장면이 과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쪽에 가깝다. 여러 회차에 출연하며 한 회 한 회 자신의 몫을 다하려 애쓰는 모습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 방의 큰 웃음은 아니지만 그의 균형을 향한 '애씀'은 화면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웃음을 위해 과장된 감정이 소비되는 순간보다, 그 감정이 현실과 어긋나는 지점에서 한 번 멈춰 서게 만드는 것이다.
허경환은 타인을 비하해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꾸짖는 사이다 발언을 남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선을 넘는 농담에 잠시 움찔하다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한마디를 보태거나 자신의 유행어 중 하나를 던지며 화제를 전환시킨다. 웃음을 폭발시키기보다, 웃음이 어디까지 유효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튀는 자만 살아남는다고 여겨지는 예능판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덜 소모되는 방식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몇몇 제작진이 허경환에게 '꽂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렵게 쌓아 올린 이미지를 기반으로 승승장구하던 이들이 하나둘 방송에서 사라지는 요즘, 별탈 없이 무사하게, 그러나 괜찮은 정도로 남아 있는 것은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나락'가는 예능인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지친 시청자들 역시 허경환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했다. 허경환은 지금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가 스스로의 잘난 캐릭터 때문이 아니라, 작금의 분위기와 맞물린 결과라는 점까지도 인지하고 있다.
목요일을 비워놨다는 허경환. "(놀면 뭐하니에) 고정 됐다 치고 완 투"를 외치는 그의 고정 멤버 고군분투기가 < 놀면 뭐하니? >에, 그리고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에 어떤 새로운 재미를 가져다줄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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