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기 일시품절, 의료용품은 한달치…병원도 위태롭다

채혜선, 임선영, 김민주 2026. 4. 2. 00: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액 외포장재(포장용 필름) 재고는 이달 안에 소진될 것 같습니다. 공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멸균지 등 의료용 포장재 제조업체 대표 A씨는 생산 차질로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크고 작은 병원에 납품 중인 그는 “카테터(치료용 관) 등 수술 관련 제품은 포장해야 쓸 수 있다”면서 “지금껏 재고로 버텼지만 이달을 넘기면 고비를 맞을 거다. 병원 수술, 항암 치료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걱정했다.

중동전쟁 여파로 석유화학 원자재 공급이 흔들리면서 의료 현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플라스틱 기초 원료인 나프타는 수액 백, 일회용 주사기, 멸균용 포장지 같은 필수의료 소모품 제작에 쓰인다. 가격 줄인상에 이은 수급 불균형에 환자 치료에도 지장이 갈 거란 우려마저 나온다.

1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LG화학은 지난달 25일 의료기기 포장재 거래처에 가격 인상을 통보했다. 의료용 소모품에 쓰이는 저밀도폴리에틸렌(LDPE)·고밀도폴리에틸렌(HDPE)·폴리프로필렌(PP)·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 등을 이달부터 t당 50만원 올리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초 폴리에틸렌(PE) 등 원자재 공급업체 11곳이 2월 대비 t당 20만원 올리겠다고 밝힌 데 이은 ‘추가 인상 신호탄’이다.

가격 불안은 포장재뿐 아니다. 한 의료기기 도매업체는 “4월부터 라텍스·니트릴 장갑 가격은 30% 이상, 일회용 주사기는 20% 이상 인상한다”고 거래처에 통보했다. 사재기 조짐도 보인다. 한 의료소모품 쇼핑몰은 최근 “주문이 집중돼 정상 출고가 어렵다. 일부 품목은 구매 수량 제한을 적용하겠다”고 공지했다. 다른 곳에선 실제로 일회용 주사기가 일시 품절됐다. 서울의 한 요양병원 원장은 “의료 소모품 사용이 많고 공급선이 취약한 요양병원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장기화되면 환자 치료도 문제가 생길까 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돌봄 현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말 의료용품 제조업체 B사는 간이변기·좌욕기 가격을 이달부터 20~25% 인상한다고 공지했다. 복지용구 판매업자가 모인 단체 대화방에선 “물티슈·기저귀까지 타격을 입을 것” 같은 우려를 담은 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보건의료 주요 단체들과 의약품·의료제품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재고가 부족하진 않지만, 필요하면 포장재 변경 등에 대한 허가·신고를 신속 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소상공인 사이에선 배달용기 사재기가 빚어지고 있다. 이날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주요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들은 이날부터 용기 가격을 30% 이상 인상한다고 공지했다. 한 한식 배달 전문점 업주는 “장사를 못 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적금을 깨고 배달 용기 850만원어치를 샀다”며 용기 등을 쌓아둔 사진을 커뮤니티에 올렸다.

어민의 시름도 깊다. 고기잡이배에 쓰이는 면세유 가격도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국내 단위 수협 중 최대 규모인 대형기선저인망수협(조합)에 따르면 한 드럼당 10만원가량 뛰어 어선에 따라 하루 기름값으로 150만~700만원을 추가 부담해야 하는 처지다. 임정훈 조합장은 “이런 고유가가 지속하면 조업이 어려워 오징어, 갈치 등의 출어가 끊길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채혜선·임선영·김민주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