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계급정년과 중립성
[이윤]
2025년 11월 3일 국가경찰위원회는 경찰공무원 계급정년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라고 경찰청에 요구했다. 경찰 아닌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이지?" 싶으셨을 것이다. 계급정년이란 경찰, 소방, 군, 국정원 등 일부 특정직 공무원 조직에서 일정 기간 상위 계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연령정년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퇴직하게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나이는 아직 젊은데 계급이 멈추면 퇴장"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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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 계급정년 변화과정 <표> 경찰 계급정년 변화과정 |
| ⓒ 이윤 |
계급정년 도입 취지는 여러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군사정권 시절 상명하복이 필수인 계급 조직 특성상 하위 계급자가 상위 계급자보다 나이가 많은 상황에서 생길 수 있는 조직 운영상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둘째, 상층으로 갈수록 정원이 급격히 줄어드는 '압정형' 구조에서 승진 적체를 완화하고, 인사 흐름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들려는 행정적 고려도 작용했을 것이다. 계급정년은 행정학 교과서적으로 보면 꽤 합리적인 장치다. 상위직 자리가 자동으로 비워지니 인사 숨통이 트인다. 다만, 제도는 언제나 '의도된 효과'와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함께 낳는다.
계급정년의 압박
이제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가령 2026년 현재 48세, 경정 10년 차인 경찰관이 있다고 하자. 어느 날 상사로부터 위법 또는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 이 사람은 그 지시를 단호히 거부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가 정답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계산기가 먼저 켜질 가능성이 크다.
경정은 14년 안에 총경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퇴직한다. 이미 10년을 근무했다면 남은 시간은 4년. 이때 상사에게 미운털이 박혀 승진에서 배제되면, 53세에는 전직 경찰관이 된다. 53세면 자녀 교육비는 한창이고, 대출은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무원연금은 65세에나 받을 수 있어서 소득 공백이 생긴다. 50대 초반 나이에는 새로운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만일 승진하면 60세까지 근무할 수 있고, 그사이 추가 승진 기회도 생긴다. 승진 실패는 단순한 '체면 문제'가 아니라 '생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비판은 공허하다. 영혼이 문제가 아니라 생계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럴 걸 알고 들어간 거 아니야? 이제 와서 웬 불만이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 계급정년을 알고 입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임용 전 교육 중에 이에 대해 듣고 많이 놀라서 '아차!' 싶었다. 그때 튀어야 했는데… 튀지는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승진을 너무 빨리 하는 것도 위험하겠구나. 가늘고 길게 가자.' 지금까지는 그 작전대로 가고 있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앞으로는 경찰관 채용 공고에 작은 글씨 말고 굵고 빨간 글씨로 "※ 주의: 계급정년 있음" 이렇게 써놓으면 좋겠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 문제를 두고 그냥 그러려니 할 뿐, 헌법소원이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지 않은 것을 보면 경찰관들은 또 얼마나 순종적이란 말인가!
인재 유출의 또 다른 배경
계급정년의 압박은 조직 외부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2010년 말 운전면허시험 관리 업무가 경찰청에서 도로교통공단으로 이관될 당시, 상당수 경찰관이 신분 전환을 신청했다. 특히 계급정년의 압박을 받는 경정, 총경급 중 많은 사람이 전직을 선택했다. 최근 로스쿨에 진학하는 경찰관이 적지 않은 현상도 장기적 직업 안정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 계급정년은 이렇게 인재 유출의 배경 요인이 되기도 한다. 중대범죄수사청이 생기면 그쪽으로 전직하길 원하는 경찰관도 아마 꽤 있을 것이다.
중립성과의 관계
문제의 핵심은 여기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선언만으로 지켜지지 않으며, 인사 제도는 중립성의 토대가 된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승진해야 하는 구조 속에 놓인 사람에게 "양심을 지켜라"라고 요구하는 것은, 수영장에 빠뜨려 놓고 "젖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상사의 평가가 생존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시민과 법보다 조직과 상사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인간적으로도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중립성은 흔들린다. 군부독재가 심하던 83년 경위·경감 계급정년이 짧아진 이유도(위 표 참조) 시키는 대로 하는 충성조직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추정한다.
이제는 재검토할 때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려면, 경정 이상 계급에 과도한 압박으로 작용하는 계급정년 제도를 폐지하거나, 연장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국가경찰위원회의 재검토 요구는 매우 다행한 일이나 재검토-연구용역-법률 개정안 마련-국회 심사… 이 긴 여정을 생각하면 숨이 헐떡여진다. 그래도 늦었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국가정보원의 경우 최근 계급정년 연장법이 정보위 법안소위를 통과하여 3급은 7년→8년, 4급 12년→14년, 5급 18년→21년으로 길어질 전망이란다(26. 2. 3. 파이낸셜뉴스 기사 참고). 부러운 뉴스다.
경험 많은 경찰관이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원칙을 말할 수 있는 구조. 그것이야말로 시민 신뢰의 출발점이다. "철밥통"은 공무원에게 쉽게 붙는 접두어지만, 50대 초반에 짐을 싸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다. 중립성은 개인의 덕목이라기보다 제도가 만들어 내는 구조의 문제다. 이제는 그 구조를 손볼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글쓴이 이윤 인권연대 칼럼니스트는 현재 경찰관으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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