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이 내 마음을 짓누를 때… '이걸' 기억하세요

서민철 중앙보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24. 10. 27. 22: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건강한 노년을 맞는 것은 누구나 바라 마지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지남에 따라 질병을 하나 이상 겪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아집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노인실태 조사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중 86.1%가 하나 이상, 평균적으로 2.2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성질환은 당장 죽음의 위기보다 1년 이상 지속되는, 완치보다 '관리'를 요하는 질병입니다. 이로 인해 살아가는 데 여러 불편과 제약을 줍니다. 고혈압, 당뇨병과 함께 각종 심장병, 만성 폐쇄성 폐질환, 뇌졸중, 만성 신장병, 치매 등이 대표적인 만성질환입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상당수 암도 꾸준히 치료받아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됐지요.

이 중 심각한 만성질환은 진단 자체만으로 큰 충격입니다. 삶을 태어나서, 나이 들고, 병을 얻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生老病死)으로 본다면, 질병이라는 것은 곧 죽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심각한 만성질환은 죽음과 함께하고, 죽음을 마주하며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병을 앓는 사람에게 심리적·사회적 스트레스와 강렬한 정서적 고통을 줍니다. 실제 영국인 약 4700만명을 조사했을 때 심각한 만성질환을 앓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3배 더 많이 자살했습니다. 국내 약 6만명의 자살자를 분석했을 때도 자살자의 90%가 만성질환을 경험했고, 그들은 만성질환이 없는 사람보다 자살의 위험비가 약 2~3배 높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긴 병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지속되는 통증, 불편함 등의 고통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지치면 고통은 더 심해집니다. 지속되는 고통과 함께하는 삶은 누구나 괴롭습니다. 고통은 피하려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어떤 사람은 괴로움에 지쳐 고통을 멀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통에서 멀어지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괴로움만 없다고 살만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이 꾸려온 삶 속엔 정말 살아갈 만하다고 느낀 소중한 그 무엇과 활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통 피하기'에만 몰두하다 보면 오히려 하루 종일 '고통'만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면 괴로운 기억을 피하고,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는 것만 고심하게 되지요. 그리고 삶의 생동감과 즐거움에서 멀어집니다. 질병에 대한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 느끼는 고통보다 고통이 올 것에 대한 괴로움, 겪은 고통에 대한 괴로움이 자신을 짓누릅니다. 그래서 미래와 과거의 고통이 지금의 순간을 가득 채워 버리기도 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죽지 못해 삽니다"

삶의 의미가 사라지고 오직 고통만이 있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진실로 내 모든 삶의 궤적의 끝에 이르러 남은 것이 질병의 무게라면, 억지로 삶을 연장하기만 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피하며 삶에서 멀어지고, 그래서 우울함과 불안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전자와 또 다른 우울한 일입니다. 우울과 불안은 생각을 더욱 부정적으로 몰아가지요. 만성질환의 경우 항상 삶 속에 질병이 있기에, 질병의 고통과 싸워 이기는 것은 때론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노력이 '스스로 느끼기에' 반복한 실패로 여겨져 무능력함, 막막함, 무력함, 고립감 등을 느끼게 되면 일종의 사기 저하 요소가 됩니다. 전투 상황에서 사기 저하가 승패에 영향을 미치듯, 만성질환에서도 사기 저하는 자살의 위험 요인입니다. 지치고 사기가 떨어지면 '삶의 의미'를 더욱 찾기 어려운데, 이것은 우울증보다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더 잘 유발합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때로는 원망스럽습니다.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가도, 자신의 고통을 몰라주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짐을 혼자 감내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르게 '연결'돼야 합니다. 고통과 연결돼 과거와 미래의 반복되는 괴로움을 혼자 감당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현재에 연결돼, 질환보다 더 큰 나와 연결되고, 삶의 의미와 연결되며,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돼야 합니다.

먼저 지금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과거의 고통 혹은 미래의 혼란 속에 휘말려 있지는 않나요? 그럴 때 '지금 여기'로 돌아옵시다. 자리에 앉은 자세로 양 발이 바닥을 단단히 디디고 있는 감각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양 발을 교대로 디디며 바닥과 단단하게 닿는 느낌을 느껴보세요. 주위를 둘러봅시다. 창 밖의 하늘과 구름의 모양, 방 안의 친숙한 물건과 재질을 난생 처음 살펴보듯 천천히 살펴봅시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 자신에게 위안과 고마움을 전해봅시다. 양 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해 양 손을 반대편 가슴 위로, 마치 나비처럼 두어 봅시다. 그리고 천천히 호흡하며 한 손, 한 손을 번갈아 양측 가슴을 천천히 토닥여 줍시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천천히 양 손으로 토닥여 봅시다. 그리고 자신에게 소리내어 감사를 전해 봅시다. "오늘 하루도 힘내줘서 고맙다"

그리고 다음을 한 문장씩 읽고 생각해 봅시다. ▲원래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내 삶에서 어떤 것이 가장 소중했나요? ▲​무엇을 할 때 활기차고 생동감이 있었습니까? ▲​나는 삶에서 어떤 것을 배웠습니까? ▲​처음 병을 앓고 충격을 받았음에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습니까? ▲​그것을 누구에게 알려주고 싶습니까?

마지막으로 소중한 사람, 고마운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고마움과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말로는 전달하지 못했던 감사와 애정을 생각하고, 짧은 문장으로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문장을 읽어 본 뒤, 그 사람에게 다가가 전해주세요.
여러분은 병자가 아닙니다. 삶은 병보다 훨씬 큽니다. 나 역시도 환자보다 큰 존재입니다. 만일 질환이 주는 고통으로 괴로움 속에 매몰된다면 바로 '지금'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살아온, 살아갈 삶 속에서 소중했던 것을 돌이켜 보십시오. 무엇보다 용기 있는 자신을 토닥이고 소중한 관계와 연결되어 가십시오. 그리고 혼자서는 어렵다면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한 심리전문가와의 시간은 만성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당신은 그저 고통에 끌려가는 환자가 아니라 소중한 이와 함께 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삶 속의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