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터뷰 에필로그] 소방관 ‘마음의 병’은 가족에게도 전이 됩니다
지난 6월 22일 오전 경기도 안성시 안성소방서에서 소방 영웅의 가족 5명을 만나 가슴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유튜브 채널 ‘KMIB-작은영웅’에 소개된 ‘히든터뷰’였습니다([히든터뷰] ep1~3 ‘소방가족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되는 순간’ ‘15시간 활활 타오른 현장을 본 소방가족’ ‘더 늦기 전에 소방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
영상이 나간 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습니다. 소방관 노고에 감사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소방관만 특별하냐는 반박도 나왔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소방관만 힘든 일을 하는 건 아니니까요. 모든 작업복엔 나름의 사연과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히든터뷰’의 주인공은 소방가족인 된 걸까요. 제작진은 글로, 영상으로 소방가족의 사연을 접한 시민 반응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뜻한 봄날이었던 지난 4월 23일 오후 5시30쯤. 안성시 미양면에 있는 대단지 공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공장 내부에 가연성 물질이 많아 불길은 순식간에 번졌습니다. 지휘부는 화재 발생 7분 만에 대응 2단계를 발령했고, 소방관 297명이 현장으로 달려갔죠. 그리고 화마와 15시간이 넘는 길고 긴 사투를 벌였습니다.
발 빠른 대응은 성공적인 화재 진압으로 이어졌습니다.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었고, 재산 피해도 크지 않았습니다. 건물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붕괴되지 않았고, 대피령이 떨어졌던 인근 주민들도 무사했습니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화재는 지휘부의 정확하고 빠른 판단과 진압대의 기민한 대처 덕분에 안전하게 진압됐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인명사고가 나면 언론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왜 진압에 실패했는지, 더 빠르게 구조할 수는 없었는지 따져묻고 책임자를 찾아내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화재 진압 현장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사그라들죠. 그 뒤에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누가 어떤 희생을 했는지 우리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가족이 느끼는 마음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말 저녁시간 출동 문자 한통에 가버린 배우자, 엄마·아빠의 빈 자리를 바라보는 남은 가족들의 황망한 심경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현장에 있었던 소방 영웅의 가족 5명을 만나 그날의 영상을 보여주고 심경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출동 문자를 받은 순간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가족이 출동할 때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리고 현장에 나간 소방 영웅을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등을 말이죠.
배우자들은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라도 한 듯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고, 소방학교에 재학 중인 딸은 교육 중 힘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빠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습니다. 사춘기 아들은 소방관 엄마가 걱정돼 연신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연구 결과 소방관 배우자의 스트레스 반응은 평균 60.55점으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평균적인 중년 여성의 점수(28.28점)보다 2배 이상 높았을 뿐만 아니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 44.20점 ▲만성 위염환자 29.30점 등과 비교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였습니다.
소방관의 우울 증상은 경찰공무원(7.90)과 비슷한 7.10점으로 제복 공무원 배우자들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중증 우울 대상자는 20.81점, 비율은 9.8%로 ▲공공부문 근로자 평균 2.30%에 비해 비율이 3배나 높았습니다. 다만 PTSD 증상은 일반 성인남녀보다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소방공무원 배우자의 경우 외상성 사건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아닌 간접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분명한 건 소방관의 스트레스 반응과 우울 증상이 PTSD 증상과 동반 상승하고, 소방공무원의 스트레스와 우울 증상이 배우자는 물론 자녀에게까지 전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18년 2월 ‘네이처 유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지에 발표된 연구결과에도 “스트레스 반응이 배우자에게도 영향을 미쳐 배우자의 뇌도 변화될 수 있음을 실제로 확인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논문을 집필한 김 소방장은 “근무를 하다 부정맥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그 마음이 전이돼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며 “이를 객관화하기 위해 다른 직업군 배우자의 스트레스와 우울 정도 등을 비교 분석하는 논문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방관의 스트레스 정도처럼 대조군 데이터가 없어 상관관계를 입증하는데 부족한 점이 있어 아쉬웠지만 소방공무원의 처우 개선 중 가족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 절실한 상황임을 뒷받침하는 자료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논문이 말한 심리적 외상은 ‘히든터뷰’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한 아내 장예원(31)씨는 남편이 진압에 참여한 화재 현장 영상을 보는 내내 불안함에 손을 쥐락펴락했고, 인터뷰 내내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베테랑 소방관의 아내 유진혜(45)씨도 현장을 영상으로 확인한 뒤 “남편이 뜨거운 현장에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하기 싫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부녀 소방관이 될 송다혜(24)씨도 “어머니가 늘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렸다”고 회상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잘 알지 못하기에 함부로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출근했다가 무사히 퇴근한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말의 뜻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빨리 오진 못하지만 그래도 꼭 돌아와야 하니까”라는 말 속에 담긴 간절함과 초조함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진심에 귀 기울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소방관과 가족들의 힘든 시간이 조금이나마 치유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소방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본 이유입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최민석 기자
이하란 기자, 조주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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