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로 폭탄 80발 퍼부었다"…모사드, 헤즈볼라 수장 제거 전말

한지혜 2024. 9. 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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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이끌어온 하산 나스랄라(64)가 지난 28일(현지시간) 폭격으로 사망한 가운데, 극도의 보안을 뚫고 지휘부 회동을 파악하고 정밀 폭격한 이스라엘의 정보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사진 India Today 유튜브 라이브 캡처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나스랄라 제거’ 작전엔 이스라엘 공군 69비행대대 전투기들이 투입돼 2000파운드(907㎏)급 BLU-109 등 최소 폭탄 80개를 몇 분 내(several minutes) 퍼부었다. BLU-109는 약 2m 두께의 콘크리트 벽도 뚫을 수 있는 초대형 벙커버스터다. 69 비행대대는 2007년 시리아 핵시설을 폭격한 ‘오차드 작전’ 등을 정예 부대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폭격 당시 지하 60피트(약 18.3m)에 위치한 나스랄라는 헤즈볼라 지휘 본부에서 회의 중이었다. 이스라엘군의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온 영상엔 ‘하산 나스랄라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중앙본부 제거에 참여한 전투기’라는 자막과 함께 폭탄을 탑재한 F-15I 8대가 줄지어 서 있다. 영상엔 전투기가 폭탄을 싣고 이륙하는 모습과 폭탄 없이 기지로 귀환하는 모습이 담겼다.

NYT는 관련 위성사진과 영상을 분석한 결과 7층 높이의 아파트 건물 최소 4채가 파괴됐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곳에서도 최소 6채가 무너져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현장 부근에 있던 한 의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붉은색 연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는 걸 봤다”며 “사건 현장으로 처음 달려 갔을 때 건물 잔해에 깔린 시신들만 눈에 띌 뿐이었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이스라엘군 텔레그램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서 '하산 나스랄라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중앙본부 제거에 참여한 전투기'라는 자막과 함께 폭탄을 탑재한 전투기 약 8대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등장했다. 사진 텔레그램 캡처
나스랄라가 살해된 지난 28일(현지시간) 레바논의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서 이스라엘군이 폭탄을 투하했다. AFP=연합뉴스


외신은 이번 작전이 헤즈볼라 지휘부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인지한 후 회동 장소를 정밀 타격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정보망의 위력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2006년 이후 사망 직전까지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의 암살 시도에 대비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AFP에 따르면 나스랄라는 헤즈볼라의 자체 운영 라디오와 위성TV를 통해서만 메시지를 내왔다. 무산호출기(삐삐), 무전기(워키토키) 폭발이 잇따른 지난 19일 이스라엘에 “응징할 것”이라는 그의 경고가 생전 마지막 공개 메시지였다.

하지만 나스랄라 사망 직후 나다브 쇼샤니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스라엘 측이 나스랄라와 다른 지휘관의 회동 사실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극도의 경계 상황 속에서도 이같은 정보를 입수한 데 대해 로이터통신은 이스라엘 정보원이 헤즈볼라 내부 깊숙이 침투해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매체는 이스라엘 안보에 정통한 소식통을 익명 인용해 “약 20년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정보 활동에 집중해 왔다”며 “지휘부를 포함해 원하는 시기에 수장을 공격할 수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006년 헤즈볼라와의 34일간 ‘레바논 전쟁’에서 군사적 좌절을 경험한 뒤 헤즈볼라 관련 정보 확보에 노력해왔다. NYT는 이스라엘 측이 최정예 사이버 첩보부대인 8200부대를 개입하거나 드론, 위성 등을 레바논에 띄워 보내며 헤즈볼라의 통신을 도감청했다고 전했다. 축적된 정보와 헤즈볼라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면서 지휘부의 특정 동선까지 파악한 뒤 결국 나스랄라의 사망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외신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그의 측근 장관들이 실제 나스랄라 사망 사흘 전인 지난 25일 공습을 승인했다. 그 자리엔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데이비드 바르네아 모사드(해외정보국) 국장, 로넨 바르 신베트(첩보기관) 국장,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도 참석했다. 나스랄라 사망 당일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 총회 연설을 위해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지휘부에 대한 표적 공습으로 최근 핵심 지휘관 8명(나스랄라 제외) 중 7명을 제거했다. 지난 21일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지휘관 중 ▶이브라힘 아킬 작전 책임자 겸 라드완 부대사령관 ▶푸아드 슈크르 군 최고 사령관 ▶위삼 알타윌 라드완 부대사령관 ▶아부 하산 사미르 라드완 부대훈련 담당관 ▶탈렙 사미 압둘라 나세르 부대사령관 ▶모하메드 나세르 아지즈 부대사령관 등 6명의 사망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후 알리 카라키 남부지역 사령관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졌다.


나스랄라 죽음, 헤즈볼라에 치명타?

지난 30여년간 “헤즈볼라의 얼굴이자 두뇌”(NYT)였던 나스랄라의 죽음이 헤즈볼라에겐 치명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나스랄라는 1960년 베이루트 동부 부르즈 하무드 난민촌의 이슬람 시아파 가정에서 태어났다. 레바논 시아파 정당이자 민병대였던 ‘아말 운동(Amal Movement)’ 출신으로 1992년 이스라엘 헬기 공습으로 헤즈볼라 창립자 아바스 알무사위가 숨지자 최고직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나스랄라가 지도하던 헤즈볼라는 2000년 레바논 남부를 18년 동안 점령했던 이스라엘군을 축출하고, 이스라엘군 상대로 발생한 ‘2006년 레바논 전쟁’에서 무려 34일간 버텼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군보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4만~5만 명의 병력과 12만~20만기의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나스랄라의 죽음이 헤즈볼라의 와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NYT는 미국 군사안보 관계자들을 인용해 한때 이스라엘군에 골칫거리였던 하마스의 땅굴처럼, 헤즈볼라도 방대한 땅굴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산이 많은 레바논 지형상 위장이 가능한 공간이 많다는 설명이다.

28일(현지시간) 파키스탄에서 나스랄라 사망에 무슬림에서 반발 시위가 일었다. AP=연합뉴스


한편 헤즈볼라는 성명을 내고 “나스랄라가 순교했다”고 밝히고 이스라엘과 교전을 이어갈 것을 밝혔다. 나스랄라에 이은 수장으론 나스랄라의 사촌인 하셈 사피에딘(60), 헤즈볼라 부사령관 나임 카셈(71) 등이 거론된다. 알자지라는 사피에딘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한편 헤즈볼라를 후원하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사악한 (이스라엘) 정권에 맞서고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고, 전 세계 모든 무슬림을 대상으로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을 촉구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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