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전주성 전투의 결사항전과 소년장수의 전사
[이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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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성 옛지도 전봉준 대장은 치밀한 작전에 의해 동학혁명군을 이끌었다. 본 전주성 옛지도의 사진은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된 것으로, 혁명 당시 전봉준 대장이 이런 옛지도 등을 참고로 작전 계획을 세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점령, 동학농민혁명사에서 동학군이 전주성을 무혈 함락시켰다고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 전국 5대 전투지중 하나가 전주완산전투이다. 특히 전주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소년장수 이복용 즉 애기접주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애기접주란 아주 어린 나이는 13~14세이고, 대략 15~16세, 또는 17~18세 정도를 말한다. 필자는 이들을 소년접주, 소년장수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전주 소년접주 이복용, 황해도 해주 접주 김구(김창수), 장흥 접주 최동린과 윤성도 등 전국 유명 전투지에서 동학농민혁명 이야기와 함께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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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완산칠봉 내칠봉중 매화봉 가는 길 동학군과 관군 사이 전주완산칠봉전투에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용머리고개에서 '완산 내칠봉중 '매화봉' 가는 길에 수많은 동학군과 관군들이 전투 중에 사망하였다. 그 근처 동네에 사는 노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린 시절 완산초등학교 다닐 때 지름길인 '매화봉' 가는 길로 가다보면 어렵지 않게 유골들이 눈에 보였다고 하였다. 그 유골들은 '동학의병들'이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하였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홍계훈 초토사(이하 대장)의 관군연합군이 전주성을 포위하여 옥죄는 전략은 5월 1일(음)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접근전과 백병전에 약한 관군은 전주성을 둘러싼 높은 산들을 거점으로 삼아 집중 포격하고 민가를 약탈하였다. 그들은 어느 나라 군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방화와 토색질하는 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관군의 만행을 보다 못한 동학군은 5월 2일에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부대를 중심으로 서문을 나와 용머리고개를 치고 올라가면서 완산의 관군 포격부대를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동학군은 총과 포에 사용할 탄환과 식량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지만 무리수를 두면서 관군을 공격하였다. 이번 전투도 양쪽 다 많은 상자를 내고 각자 본진으로 후퇴하였다.
동학농민군과 관군연합군의 전주성과 완선칠봉을 사이에 두고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에 관군의 홍계훈 대장이 요청한 포병과 지원부대는 물론 정부에서 파견한 부대들까지 속속 도착하였다. 관군연합군은 동학농민군의 수를 웃도는 막강한 병력으로 전주성을 압박하였다. 그리고 전주성에 잇따라 효유문을 보내어 해산을 종용하는 양면 작전을 펼쳤다. 또한 전봉준을 체포해 오는 자는 포상한다는 글들을 화살에 끼워 성안으로 연이어 쏘아댔다.
수천냥의 상금과 군수자리를 준다.
홍계훈 대장은 왕명을 받아, 전봉준 등 동학군 수뇌를 체포하거나 결정적 공훈을 세우면 수백, 수천 냥의 포상금은 물론 군수 자리를 준다는 조건을 내걸어 동학군 내부에 동요를 일으키려 하였다. 이에 일부 동학군은 전봉준을 체포하려고 모의하다 적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전봉준 대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장기전으로 가다간 우리 쪽 피해가 더욱 커질 것 같았다. 일부 동학군이 동요할 수도 있었다. 전봉준은 특단의 조치로 총공격을 감행해서 위기를 돌파하고 관군연합군을 격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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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다가산 동학혁명 당시 전주성과 완산칠봉 중간 거점인 다가산은 동학군과 관군 사이 서로 점령하려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유적지이다. 본 사진은 현재의 다가산 모습이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전봉준 총대장은 5월 3일 아침 10시경, 출정에 앞서 각 부대별 공격 방향을 지시했다. 전주성 수비는 서영도 부대가 맡고 이복용 소년장수로 하여금 백여 명으로 구성된 결사대를 이끌게 했다. 전봉준은 진군 명령을 내렸다.
"전군, 출진하라!"
전봉준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동학군은 작전에 따라 순차적으로 출진했다. 전봉준의 중군은 서문을 나와 다가산을 공격했다. 손화중의 우군은 곧바로 북문을 출발하여 전봉준을 받쳐 주면서 다가산의 경군을 공격했다. 전봉준과 손화중이 결합하여 용머리고개를 치고 무학봉을 치고 오르며 완산 주봉 공격을 개시했다. 완산에 집결한 관군은 엄청난 화력을 지닌 대포와 기관총,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했다.
이방언과 김인배가 출동한다
김개남의 좌군은 남문을 열고 완산을 향해 무섭게 질주했다. 송두호는 군사를 이끌고 동문을 나와 초록바위를 돌아 투구봉으로 향하며 완산 공격에 동참했다. 이방언과 김인배 군사도 전주천을 건너 완산과 다가산을 향하여 집중 공격을 감행했다. 관군은 원거리에서 주로 대포와 기관총 등 방어 전술로 일관하면서 접전을 피하다가 완산 본진이 있는 유연대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동학군이 산 위로 오르지 못하도록 병력을 출동시켰다.
관군은 이미 기선을 제압당했고, 동학군이 동학 주문을 목청껏 외우면서 치고 오르자, 다시 산 위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전봉준 대장은 경군 본진인 완산을 함락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판단으로 명령을 내렸다.
"총공격하라!"
전봉준은 허벅지에 총알이 박히고
동학농민군과 관군연합군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면서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총알 하나가 전봉준의 왼쪽 허벅지에 박혔다. 전봉준은 이를 악물면서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전봉준이 부상을 입고 쓰러진 것을 목격한 경군 저격수들이 소리를 질렀다.
"전봉준을 명중시켰다!"
"동비대장에게 집중사격하라!"
전봉준의 위급한 상황에서 산 위로 밀려나던 관군이 다시 앞으로 전진하며 총공격을 시작했다. 위기의 순간 관군을 격파하고 전봉준과 합류하려던 김개남이 재빨리 능선을 넘어와 손화중과 함께 전봉준을 엄호했다.
"이복룡 결사대는 전봉준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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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학혁명기록화 손년장수 이복용은 완산전투에서 맹활약을 하였다. 그는 결사대를 이끌고 최후항전을 하다 끝내 체포되어 참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본 동학혁명기록화는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되었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전봉준의 큰 부상, 그 때 전봉준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다. 이때 소년장수 이복용이 결사대 백여 명과 함께 바람처럼 나타나 관군의 추격을 막아섰다. 이복용은 결사대에게 명령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한 명도 뒤로 물러서지 말라!"
산비탈을 미끄러지듯 밀려오는 관군 선봉에 선 장수 두 명이, 갑자기 나타난 이복용의 칼날에 목이 베어졌다. 이복용과 결사대는 비탈에 밀려오는 관군들을 맞아 백병전에 돌입했다. 서로 뒤엉켜 찌르고 차고 베는데, 그 비명 소리가 완산 골짜기를 맴돌아 후퇴하는 동학군의 귀에까지 메아리쳤다.
이복용과 동학 결사대는 관군의 추격을 조금이라도 지연시켜 퇴각하는 전봉준과 동학군을 구하고자 최후의 옥쇄(玉碎) 항쟁에 돌입했다. 결국 동장사(童壯士) 이복용은 처절한 항쟁을 하다가 사로잡혀 참형을 당했고, 결사대 또한 전원 사살되었다.
관군은 후퇴하는 동학군 쪽으로 포격을 퍼부었다. 동학군이 총공격을 감행하였지만 이번 전투는 관군의 계략에 동학군이 당한 것이었다. 관군은 동학군이 공격할 때는 앞에서, 후퇴할 때는 뒤에서 지휘한다는 것을 알고 미리 저격수들을 배치하여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관군의 최우선 목표는 전봉준의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완산 계곡은 핏물로 흐르고
전봉준이 총탄에 맞고 동학군은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어둠이 몰려오는 가운데, 계곡에는 핏물이 질척거렸다. 이날 동학군은 총 5백여 명의 전사자를 냈으며, 관군 역시 동학군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
동학농민군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던 홍계훈과 관군연합군 지도부는 치를 떨며 공포에 휩싸였다. 완산 기슭과 계곡에는 동학군과 관군의 시신 수백 구가 널려 있었고, 완산계곡은 핏물이 흘러들어 검붉은 냇물이 흘렀다. 홍계훈은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며 지도부와 장졸들을 향해 말했다.
"사실상 관군의 패배다. 경군과 관군들 중에 저들처럼 싸울 수 있는 군사가 과연 몇이나 있는가! 아무리 동비라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로다. 관군의 시신과 함께 동비들의 시신도 거두어 매장하고, 아기장수 이복용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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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학혁명군 완산전투 벽화 조형물 전주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동학혁명군 완산전투 벽화 조형물이다. 완산전투의 혈전에 임한 동학군들이 잠시 쉬면서 작전을 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전봉준 총대장은 5월 4일(양6.7) 아침, 지도부와 협의하여 전령을 보내 휴전을 제안 했다. 홍계훈도 휴전 협의에 동의하는 서찰을 보내왔다. 또 전봉준은 4일 폐정개혁을 내용으로 하는 소지(訴志)를 관군 측에 보냈다. 그 내용은 강경한 폐정개혁안을 중심으로, 흥선 대원군에게 국정을 맡기라는 파격적인 주장도 있었다. 이에 대하여 정부의 답신은 5월 5일 관군 측에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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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매화 이른 봄에 피어나는 홍매화. 저토록 아름다운 매화인데, 슬픈 동학군의 전설이 매곡에 묻혀있구나. 죽은이의 하얀 옷에 총알자국.. 그 피빛이 매화처럼 보였다니, 가던 걸음 멈추고 한참을 넋놓아 바라보누나. |
| ⓒ 동학혁명기념관 |
덧붙이는 글 | 이윤영 기자는 동학혁명기념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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