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보다 잘나가는 ‘사대문 안 상권’ [충무로 상권 전성시대]
노포·직장인·관광객 ‘세 박자’ 쿵짝
충무로만 ‘힙무로’가 된 것이 아니다. 충무로를 넘어 서울 사대문 안에 위치한 상권 전반이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의 강자 ‘명동’을 필두로 ‘을지로’ ‘시청’ ‘광화문’ 등 구도심 상권이 모두 상승세다. 빅데이터 전문기업 나이스지니데이타가 상권 내 카드 결제액을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매출 성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 30곳 중 10곳이 사대문 안 상권이었다. 이들 지역 공통점은 코로나 팬데믹 직격탄을 맞았던 곳이라는 점이다. 상권 주요 고객인 직장인·대학생·외국인 관광객 등의 발길이 끊기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경쟁력을 갖춘 가게만 살아남는 ‘솎아내기’가 이뤄졌고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직장인·관광객·대학생 등 손님이 귀환했다. 수준 높은 가게가 들어찬 이들 상권은 완벽한 부활에 성공했다. 동시에 중심 노후 지역 재개발 추진이라는 새로운 성장동력까지 얻었다.
직장인 최애 을지로·시청도 굳건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뤄낸 곳은 단연 ‘명동’이다. 2010년대까지 명동은 홍대입구, 강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울 최대 상권이었다. 다만, 손님 비중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국내 소비자가 찾는 곳이 아닌, 외국인 관광객 특화 상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관광객도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 ‘유커’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중국 관광객 비중이 높았던 명동 상권에 ‘한한령’과 ‘코로나 팬데믹’ 2연타는 치명타를 안겼다. 사람 발길이 끊겼고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아 상가 공실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2020년대 들어 명동 상권은 변화를 맞이했다. 관광객만 노리던 점포는 사라지고, 국내 소비자까지 겨냥한 특색 있는 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유네스코회관과 명동성당 일대를 중심으로 국내 2030세대 발길이 이어졌다. 전형적인 외국인 상권을 탈피한 모습이다.
실제로 명동 상권은 2023년부터 2024년까지 2년간 ‘외국인을 제외한’ 국내 소비자 매출 증가율이 19.6%에 달했다. 전체 서울 상권 중 6번째로 성장률이 높았다. 여기에 외국인 귀환까지 더해졌다. 형태도 다양화됐다. 명동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 유커는 사라졌다. 대신, 동남아·일본·미국·유럽 등 각 국가에서 온 개인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면세점 대신 명동의 로드숍이 외국인 쇼핑 명소로 떠오른 효과다. 올리브영 명동타운, 다이소 명동점 등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올리브영 명동타운점은 외국인 관광객 비중이 9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 성장에 힘입어 상권 공실률은 대폭 감소했다. 2022년 42%까지 치솟았던 명동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올해 2분기 2.4%로 급감했다. 공실률이 0%인 광화문을 제외하면 명동보다 공실률이 낮은 상권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 최고 인기 상권인 강남대로(11%), 신사역(4.8%)이나 청담(11.3%)과 비교해도 명동의 공실률이 더 낮다.
중대형 상가 회복세도 뚜렷하다. 명동 중대형 상가는 2022년 1분기 40.9%의 공실률을 기록했고, 2022년 4분기에는 43.5%까지 치솟으며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올해 2분기는 22.57%까지 내려왔다.
명동이 ‘외국인’의 힘으로 살아났다면 시청과 을지로는 넥타이부대 덕을 톡톡히 봤다. 시청·을지로 상권은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업무지구’에 속한다. 하나은행, SK, 한화, 신한은행 등 주요 대기업 본사가 즐비하다. 거리두기 해제 이후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자연스레 인근 상권인 시청과 을지로의 매출도 회복했다. 실제로 두 상권 모두 2023년 대비 2024년 가장 많이 매출이 오른 업종은 직장인 소비자와 관련이 깊은 외식업이다. 시청 상권은 고기 요리 업종 매출이 전년보다 137%, 퓨전 요리 매출이 96% 상승했다. 을지로 상권은 고기 요리 매출이 76.4% 올랐고, 뷔페가 178%가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고기 요리와 퓨전 요리는 직장인 저녁 회식 장소로 선호도가 높은 식당들이 속한다. 뷔페 업종의 경우 최근 고물가로 고민이 많은 직장인 사이에서 ‘가성비 점심’ 식당으로 인기를 끈다.
여기 힘입어 시청 상권인 시청역(19.3%)과 북창동(19%), 서울시청 상권(16.6%)은 2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서울 전체 상권 내에서 20위 안에 드는 성장률이다. 을지로3가 상권 역시 음식 업종 상반기 매출액이 811억원(2022년) → 948억원(2023년) → 983억원(2024년)으로 매년 성장했다.
유동인구, 노포, 도심 재개발
명동, 을지로, 충무로, 시청 등 최근 다시 조명받는 구도심 상권의 공통점은 3가지다.
첫째, 유동인구가 풍부하다. 이들 상권은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관광지구다. 충무로의 경우 동국대 등 대학가까지 끼고 있다. 직장인(시청·을지로), 외국인 관광객(명동), 대학생(충무로) 등 경제력을 갖춘 소비자가 상권에 늘 몰린다. 서로 위치가 가까워 연계가 잘 된다는 점도 경쟁력이다. 예를 들어 명동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인근인 을지로와 시청으로 이동하기 수월하다.
둘째, 특색 있는 노포가 많다. 강북 구도심 일대는 서울 주요 상권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타 지역에 비해 역사가 오래된 가게가 즐비하다. 시청역(청송옥, 진주회관), 명동(하동관), 을지로(조선옥, 을지면옥), 충무로(필동면옥) 상권 모두 서울 내 매출 상위권을 자랑하는 노포가 자리한다. 이들 가게는 상권으로 손님을 끌어모으는 ‘테넌트’ 역할을 맡는다. 노포를 중심으로 뭉치지만 상권마다 특색은 다르다. 시청 상권은 직장인 회식에 특화된 가게가, 을지로는 2030세대를 겨냥한 ‘힙’한 음식점이 주변을 메운다.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점포가 많고, 충무로는 가성비를 앞세운 대학생 맛집이 노포의 뒤를 받친다.
셋째, 정비사업이 이뤄지며 재개발이 활발하다. 이들 지역은 주민 반발과 각종 규제로 인해 정비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노후화된 건물이 그대로 남아 활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았다.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을지로 일대는 각종 재개발이 이뤄지며 고층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남산 주변 고도제한지구로 개발이 제한됐던 남대문-명동-충무로 구간은 규제가 사라졌다. 회현역 인근 퇴계로변 일반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고도지구 외)은 최고 50m 높이로 건축물을 높일 수 있게 된다. 기존에는 기준 높이 30m, 최고 36m 이하만 지을 수 있었다. 충무로역 인근 퇴계로변 일반상업지역은 기준 높이 30m 이하 규제가 사라지며 최고 50m 이하로 건물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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