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협회가 제출한 ‘황당 보고서’…외국인 감독들엔 어이없는 지적, 홍명보는 칭찬 일색
김명석 2024. 9. 26. 06:03
‘중동 국가들에게 역습을 당한 경험이 없어서 우려된다’. 축구 국가대표팀 최종 후보 3인에 오른 다비드 바그너 감독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평가 내용이다. 또 다른 후보였던 거스 포옛 감독에 대해서는 ‘롱볼 위주의 경기를 하다 보니 빠르게 서포트해야 하므로 체력적인 부담이 우려된다’고 적었다. 반면 홍명보 감독은 칭찬 일색이다. 평가 기준 자체도 황당한 데다, 과연 최종 후보들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보고서 내용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은 25일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축구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최종 후보 3인 비교 보고서 ‘KFA 게임 모델과 연계해서 연령별 대표 연속성 적임자’를 공개했다. 전날 국회 문체위 현안질의에서 “세 사람을 비교한 보고서가 A4 5장 분량으로 있다고 하기에 요구했더니, PPT 한 장을 달랑 보냈다”며 비판했던 그 자료다.
“요즘 중학생 축구팬도 이거보다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을 비교한 평가표를, 개인 후보 간 5장씩은 만들 거라 생각한다”는 강 의원의 지적만큼이나 자료는 허술하기만 했다. 더 큰 문제는 ‘평가 내용’이었다. 납득할 만한 객관적인 기준은 없고,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단점들이 유독 외국인 감독들에게만 쏠려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바그너 감독에 대해 ‘라인을 지나치게 올렸을 때 이전 중동 국가들에게 역습을 당한 경험이 없어서 우려(날씨 환경도 고려 필요)’라는 대목이다. 그동안 바그너 감독은 허더즈필드와 샬케, 영보이즈, 노리치 시티 등 잉글랜드와 독일, 스위스 등 유럽 프로리그 감독만 맡았다. 그런데 돌연 중동 국가들의 역습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게 감독 평가의 우려 대목으로 꼽혔다. 사실상 감점 요소다.
뿐만 아니다. 보고서에는 ‘본인이 하이프레싱을 특징으로 언급한 만큼 뒷공간 허용과 후반 선수들의 체력 우려’, ‘대표팀은 단기간(10일) 소집 후 경기에 나가기 때문에 하이프레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훈련 또한 후반 체력 우려’, ‘클럽팀 유소년 경험이 있지만, 대표팀 지도 경험이 없어서 우려’라고도 적었다. ‘미국 대표팀 출신에 이중국적(독일)으로 선수들, 연령별 대표 감독들과 소통은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도 사실상 단점으로 분류됐다.
포옛 감독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본인은 90% 빌드업 위주의 경기를 한다고 하지만 경기 영상은 롱볼 위주로 경합시켜서 세컨볼 승리를 하려고 함(수적 우위), 롱볼 위주의 경기를 하다 보니 빠르게 서포트해야 하므로 체력적인 부담이 우려’라며 ‘이런 스타일은 우리 KFA 게임 모델과 거리가 있음’이라고 평가했다.
또 빅리그의 경험, 다양한 축구 문화를 경험한 건 장점이라면서도 ‘성과를 낸 것이 없기에 우려된다’, ‘우루과이 대표팀 출신으로 선수들, 연령별 대표 감독들과 소통은 확인이 필요하다’고도 평가했다. 보고서에도 명시됐지만 포옛 감독은 최근 그리스 대표팀의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 그룹B 승격, 선덜랜드의 리그컵 준우승 등을 이끈 경험이 있다.
반면 홍명보 감독에 대해서는 사실상 단점 없이 호평만 나열했다. 우선 ‘스위칭플레이, 스위칭포지션, 공간 활용, 침투, 카운터 어택, 수적 우위, 효과적인 블록, 카운터 프레싱, 오퍼링과 움직임, 포지셔닝 등 KFA 게임 모델과 유사한 스타일을 많이 보여주고 있음’이라고 평가했다. 홍 감독이 정확히 어떤 축구를 구사하는지 정확히 파악조차 안 되는 단어들을 쭉 나열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수적 우위’ 항목은 앞서 포옛 감독의 경우는 우려 지표로 평가됐다.
또 ‘현재 대표팀에서 빌드업을 시작으로 프로그래션을 이용하고 기회 창출을 해나가고 있음(기회창출 발전 필요)’, ‘대표팀이 경기 템포 조절은 해나가고 있지만 공수 밸런스가 깨져 실점을 하고 있어서 이런 부분을 보완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포지셔닝도 함께)’, ‘이전 한국 U-20, U-23, A대표팀 경험과 성과 및 지속적 미팅 후 발전 컨펌’, ‘선수와 지도자로서 한국대표팀을 이끌었으며, 선수들과 연령별 대표 감독들과 소통을 보여줌. 특히 원팀을 강조하는 리더십’이라고도 평가했다.
같은 평가 기준으로 감독들을 비교한 것도 아닌 데다, 평가마저 주관적이니 3명의 최종 후보의 비교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었다. 홍명보 감독은 사실상 장점만 나열하고, 다른 두 외국인 감독에게는 적잖은 우려를 섞은 것도 마찬가지다. 앞서 전력강화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주호 전 위원이 “(전력강화위원회 내부에서) 국내 감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위원들이 많았다. 어떤 외국인 감독을 제시하면 무조건 흠을 잡았다”며 내부 분위기를 폭로했던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A4 5장 분량으로 있다’는 최종 후보 3인에 대한 비교 보고서 자체가 없어 급하게 만든 자료를 제출한 거라면 그것도 문제지만, 실제 축구협회가 최종 후보 3인을 평가한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자료라면 오히려 더 큰 문제다. 홍명보 감독이 최종 후보 3인에 오른 뒤, 내부적으로 어떠한 절차를 거쳐 1순위에 오른 뒤 최종적으로 선임까지 이르게 됐는지 그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공정이나 특혜가 없었다며 당당했던 홍명보 감독이나 정몽규 회장 등의 주장과도 거리가 먼 내용들이기도 하다.
김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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