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어떤 약효가.." 가시박을 몰라 벌어진 기막힌 일 [파리로 가는 길]

최수경 2022. 9. 2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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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경의 파리로 가는 길] 생태교란 유해식물 지정만.. 제대로 알리지 않아

[최수경 기자]

늦여름 큼지막한 태풍 두 개를 겪어서인지, 하천 주변 식생은 왕성하게 자라지 못했다. 키 큰 억새보다는 땅에 엎드린 덩굴식물이 우위를 점했다. 그중 가시박이 두드러지게 많다. 

산책로까지 침범해 들어오는 가시박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한 달 안에 손으로 제거가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 뻔하다. 장갑도 없이 손에 풀물이 들도록 보이는 대로 잡아 뜯었다. 뿌리채 뽑아야 하는데 덩굴에 힘을 주면 쉽게 줄기가 끊어질 수 있다. 끊어지지 않도록 요령껏 잡아당기니 뿌리가 잘 뽑혔다.

비 온 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토양이라 가능했다. 한 시간여 작업하는 동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내가 가시박을 뜯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산책로를 지나쳤지만, 말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뿌리까지 뽑은 가시박 꽃이 피기 전에는 맨손으로도 제거 작업이 가능하다.
ⓒ 최수경
 
두 사람이 물어왔다. 한 사람은 "그게 뭐길래 뜯어요?" 또 한 사람은 "그게 어떤 약효가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들에게 허리를 펴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 식물은 가시박이라는 거예요. 이게 씨앗을 맺으면, 줄기와 열매에 크고 작은 가시가 박혀서 사람과 물고기에게 피해를 줘요. 또 순식간에 번져서 넓은 잎이 주변 다른 식물들의 광합성을 막아 고사시켜요. 때문에 환경부에서 생태계교란 유해식물로 지정했어요. 지금이 그나마 손으로 뜯을 수 있는 때예요. 좀 있으면 가시 덮인 열매가 생겨 제거하기가 어려워요."

설명을 하니 가시박에 대해 새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몇 그루 같이 뜯으면서 말하길, 이렇게 해로운 것을 구청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냐, 둔치에 꽃밭 가꾸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쉬운 설명을 통해 주민들이 행위를 하면서 영속적인 이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귀화식물 가시박
  
▲ 전위예술작품 같은 가시박 덩굴 9월부터 10월까지는 가시박의 형태적 위용이 극에 달하는 시기이다.
ⓒ 최수경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으로 이민가면 죽어라 일한다. 1세대의 밤낮 없는 노동과 희생은 자식 세대에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귀화식물도 같은 원리다. 새로운 토양에 빠르게 안착하려면 이민 1세대처럼 독하게 일해야 한다.
부지런히 덩굴손으로 나무와 풀을 휘감아 세력을 넓혀야 하고, 서리가 내릴 때까지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한 그루에서 2만 5000개의 씨앗을 만들 만큼 억척스러워야 한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덮은 모습은 전위예술처럼 보이지만, 다른 식물을 고사시키며 자리를 넓혀가는 전략이다. 흉물스럽고 무서울 정도다. 칡이 덮은 소나무는 살아도, 가시박이 덮은 소나무는 서서히 고사한다.
    
▲ 가시박 꽃과 벌 가시박 꽃은 서리가 내릴 때 까지 피다보니, 양봉업자들에게 득을 준다.
ⓒ 최수경
   
가시박은 씨앗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으로 10월 이후부터는 날카로운 크고 작은 가시로 무장한다. 이 가시는 동물과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아무리 제거해도 열매와 줄기에 한 개체라도 종자가 살아남으면 이듬해 그 부근에서 집단으로 발생한다. 생육이 빠른 것이 가시박의 특징인데 기온이 높은 6~8월에 왕성하게 자란다. 최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분포와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
  
▲ 가시박의 열매 열매가 열리는 시기에는 함부로 만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제거 작업을 하기에 어려움이 크다.
ⓒ 최수경
 
그 과정에서 오랫동안 적응된 환경에서 편안하게 살았던 우리 땅의 고유 식물들은 독한 귀화식물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 호박잎 같은 넓은 덩굴 잎으로 나무와 풀, 농작물까지 무작위로 덮어버리니 광합성을 못해 고사당한다. 가시박은 주변의 다른 식물의 발아를 저해해 생태계의 건강지표라고 할 수 있는 종다양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 하중도의 버드나무를 덮어버린 가시박 지자체가 제거하기에 엄두도 못낼 만한 규모로 번져간다.
ⓒ 최수경
   
귀화식물이란 작물이나 화훼용으로 합법적으로 들여왔거나 수입 물품이나 수입 곡물에 섞여 들어와 우리나라 자연 상태에서 종자를 생산해 확산되는 식물을 말한다. 이 가운데 이용성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위해식물로 간주된다. 농경지에서는 피해를 주는 잡초이다. 훼손된 환경에 제일 먼저 자리 잡고 점차 분포를 넓히며 확산된다.

가시박은 귀화식물이다. 박과 식물로 안동오이 또는 안동대목이라 한다. 1989년 안동지방 하천변에서 자라던 가시박을 1990년 박과작물의 대목으로 실험하였고, 1991년 안동오이라 보고하였다. 안동오이를 보급해 실효성을 인정받아 1992년 제1회 대산농촌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가시박이 추후 생태계교란식물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95년 <한국귀화식물원색도감>에 가시박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그러나 가시박은 농업에 이용되기 더 오래전인 1980년대 이미 철원의 미군 부대 근처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강병화, 한국잡초학회 학술대회, 2009.12).
  
▲ 나무를 타고 올라간 가시박 나무와 풀을 휘감고 오르며 세력을 넓힌다.
ⓒ 최수경
 
이렇게 무시무시한 가시박이 강과 하천 주변에서 물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될 때까지 정부는 가시박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소홀히 했다. 하천은 환삼덩굴, 절개지와 휴경 밭은 칡과 등나무 덩굴, 숲속은 담쟁이덩굴, 습지는 황소개구리와 뉴트리아, 하천과 호수는 블루길과 베스 등이 우리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생물다양성 감소시키는 생태계교란식물

환경부는 생태계교란식물로 야생동식물보호법시행규칙에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가시박,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양미역취, 가시상추, 갯줄풀, 영국갯끈풀, 환삼덩굴, 마늘냉이 등 16종의 귀화식물을 생태계교란야생식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환삼덩굴은 네발나비의 먹이이며, 늦가을까지 피는 가시박의 꽃은 일부 양봉업자들이 선호한다. 생태계서비스 측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은 꽃가룻병을 유발한다. 종자가 커서 확산 속도는 느리지만, 한번 발생하면 집단적으로 발생해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킨다.

털물참새피와 물참새피는 수로나 습지에서 물의 흐름을 방해한다. 도깨비가지는 잎과 가지에 별 모양 털과 날카로운 가시를 갖고 있는데 씨와 땅속 줄기로 번식하며 빠른 속도로 퍼지며 종다양성을 감소시킨다.
    
▲ 나무를 타고 올라간 가시박 가시박의 실태를 보고 그 피해를 경험함으로써 생태교란 유해식물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 최수경
   
이들로 인한 피해는 식물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식물들은 미래에 인간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유전자원이 될 수 있다. <동의보감>에 수록된 식물의 경우, 대부분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서식하는 식물들이다. 유해식물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방기되면 안 되는 이유다.
  
▲ 6월경의 가시박 새순 살살 잘 뽑히는 가시박 순, 가장 제거하기 쉬운 단계이다.
ⓒ 최수경
   
▲ 6월의 가시박 싹을 뽑는 모습 제초제가 아닌 일일이 사람 손으로 뽑아야 하는 하천변 가시박 순
ⓒ 최수경
 
가시박을 제거하는 방법은 발아하기 전에 땅에 매립된 종자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근원적인 처방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발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5~6월에는 무순처럼 자란 가시박 새순을 뽑아줘야 한다. 이때에는 솔솔 잘 뽑힌다. 7월까지 어린 가시박을 뽑아줄 수 있지만,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9월부터는 예초기로 절단하거나 손으로 뽑아야 한다. 예초기 절단은 뿌리가 남지만, 그나마 10월부터 씨앗이 발아하는 것을 차단할 수는 있다. 10월 이후는 손으로 작업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열매가 생기면 가시가 매우 날카로워 제거하는 데 애를 먹는다. 예초기 절단은 오히려 씨앗을 떨어지게 해 효과가 크지 않다. 종자는 휴면성이 있어서 몇 년에 걸쳐 발아한다.
 
▲ 생태계교란식물 가시박 제거 행사 민관학 기업 할 것 없이 가시박 제거 작업은 대량의 인력이 투입되어야 할 만큼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시박에 대한 대국민 홍보 부재가 빚은 결과다.
ⓒ 최수경
제거 작업도 일 년에 수차례씩 수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 지역에서 제거 작업하는 것도 좋지만, 전국적인 방제작업이 지속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하기보다는 국가의 계획으로 시행해야 마땅하다.
        
▲ 금계국으로 뒤덮인 제방 호안 인위적인 경관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심미안을 떨어뜨린다.
ⓒ 최수경
 
식생 관리도 수질오염과 홍수관리만큼 중요하게 병행되어야 한다. 하천정비사업에 식생 관리는 제방 호안에 단일의 초본류를 파종하거나 둔치에 생태공원 명분으로 원예종 중심으로 조경한다. 4대강 사업 당시 조성된 강과 하천의 제방 호안은 강변 사면이 노출되면서 단일 식생으로 파종했다.

노란 금계국, 보라색 수레국화, 붉은 꽃양귀 등의 원예식물은 강의 자연성을 떨어뜨린다. 강변에 노출된 사면의 단일 식생은 칡과 가시박과 같은 덩굴식물들이 들어오기 쉬운 환경을 조성했다.

수변은 달푸리풀과 갈대군락, 홍수터는 버들 군락, 제방은 버드나무군락 등으로 복원된 건강한 하천은 온전한 생태적 계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기능은 가시박과 같은 생태계교란 유해식물로부터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 자연스럽고 건강한 자연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심미안을 가질 필요가 있다. 환경적인 심미안을 가질 때, 산책길 가시박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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