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려면 번호표 뽑아야" 인천 택시왕 '복지3종' 뭐길래
인생 스토리가 ‘한강의 기적’ 압축판
“맨손으로 일가 이룬 원동력은 아픔”
■ 추천! 더중플 - 기업人사이드
「 6·25 전쟁 잿더미 위에서 맨주먹으로 기술 자립을 이뤄내고, 세계 시장에 승부수를 던지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 기업사를 얘기할 때 나오는 기본 레토릭이지요. 그런데 여기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지혜롭고 지적인 독자를 위한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구독 콘텐트 ‘The JoongAng Plus(더중앙플러스)’ 기업人사이드(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47)는 ‘사람’에 초점을 맞춥니다.
절망적인 상황, 성과가 절실할 때 이들은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요. 그리고 무언가 이뤄내야 한다는 절박함은 어떤 결과를 만들었을까요. 지금 이 순간 가장 큰 숙제와 스스로 느끼는 한계, 부끄러웠던 과거, 승계 계획도 들어 봅니다.
」
번호표 뽑아 놓고 입사 기다리는 택시 회사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국내 1600여 개 법인택시 업체의 주요 도시별 가동률이 30~60%다. 한때 10만 명을 웃돌던 법인택시 기사는 지난달 말 7만 명으로 급감했다. 코로나19 와중에 택배·배달 시장으로 유출된 것.
그런데 인천에 본사를 둔 동일운수·검단교통은 사정이 다르다. 직장을 옮겼다가 재입사하는 사례도 여럿이고, 다른 택시회사에 다니면서 “자리가 없느냐”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쉽게 말해 입사 희망자가 줄을 섰다는 얘기다.
“지리산 지게과 출신” 김복태의 공짜밥
한때 300여 대의 택시를 운행하며 ‘인천 택시왕’으로 통했던 김복태(79) 동일운수·검단교통 회장의 ‘공짜밥 경영’에서 사연이 시작한다. 먼저 그의 첫인상이 강렬하다. 불룩 튀어나온 올챙이배, 머리카락은 2㎝ 아래로 바짝 잘랐다. “머리 감을 때 편해요. 답답한 거 싫어해요”라는 게 이유다.
그의 아버지는 머슴이었다. 지리산 자락, 전라북도 남원에서 막일을 했다. 7남매 중 둘째였던 그는 늘 배를 곯았다. 지게 메고 송아지 먹일 꼴을 베면서 ‘차라리 네 팔자가 낫다’고 부러워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혼자 교실에 남아 주번을 섰다. 급우의 도시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몹시 배가 고팠고, 거기에 손을 댔다. 한 입만 넣으려고 했지만 숟갈질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날 담임 교사에게 뺨을 얻어맞았다. 이때쯤일까. 한 가지 소원이 생겼다. 언젠가 동네 들판에 가마솥 밥을 지어 혈육과 동무들을 배 터지게 먹이겠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나 ‘복태의 꿈’은 이뤄졌다. 김 회장은 사업이 안정된 1990년대부터 사내에 무료식당을 열었다. 인천 시내 60여 개 택시 회사 중 사내식당, 그것도 공짜로 식사를 제공하는 데는 여기 밖에 없다. 기본은 1식 4~5찬, 메뉴 선정과 조리는 4명의 급식원이 전담한다. 그의 주문은 “될 수 있으면 메뉴를 자주 바꿔 달라”는 요청 하나다. “항상 같은 식단이면 입에 물리지 않겠냐”면서다.
이게 끝이 아니다. 두 회사 직원 250여 명은 연 1회 1박2일로 야유회를 간다. 행선지는 지리산과 설악산, 강원도 횡성 등 국내 주요 관광지다. 여느 직장인이라면 ‘야유회가 어떻게 특별한 복지냐’며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전국 어느 택시 회사에도 모든 임직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행사는 없다. 아니, 엄두 내기조차 힘들다. 회사는 사납금 수입, 즉 매출을 포기해야 한다.
지금은 무상교육이 시행돼 중단됐지만 중고생 자녀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보기 드문 ‘복지 3종 세트’인 셈.
이런 가족 친화적 경영 덕분인지 동일·검단택시엔 장기 근속자가 유독 많다. 근속연수 10년 이상은 50명, 20년 넘게 재직한 이도 10여 명이다. 1989년부터 근무한 사례도 있다. “머슴 아버지 아래서 소 꼴 베고 자란 경험을 살려 ‘나는 지리산대학 지게학과 나왔다’는 얘기를 가끔 해요. 그래서 따순(따뜻한) 밥 함께 먹고, 직원 경조사 챙기는 걸 그대로 남기고 싶어요.”
☞“지리산대학 지게과 나왔다” 인천 택시왕의 30년 공짜밥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5796
‘장갑왕’ 김주인 “사람이 처음과 끝”
스키장갑 세계 1위 회사인 시즈글로벌 창업자 김주인(80) 회장의 시작도 ‘아픔’이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그는 동기생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1970년 가발 업체를 창업해 3년 만에 ‘백만불 수출탑’을 받았다. 경기도 성남에 공장도 지었다.
하지만 오일쇼크가 엄습하면서 나락을 경험했다. 일감이 사라지자 직원들이 하나둘 떠났다. ‘잘나가던’ 청년 기업가 김주인은 이 장면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참담했지요. 앞으로 기업을 하는 한 무슨 한이 있어도 이런 꼴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 수백 번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51년이 지났다. 김 회장은 그 약속을 온전하게 지켰다. 전 세계 스키장갑 5개 중 하나는 시즈글로벌에서 생산한다. 노스페이스·컬럼비아·스파이더 같은 브랜드에 공급한다. 지금도 본사를 성남에 두고 있다. 성남의 제조업사(史)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회사다. 지난해 매출은 866억원. 생산한 장갑이 739만 켤레, 하루 2만 켤레꼴이다.
그가 가장 자주 강조하는 말은 “멋 부리지 마라”다. “기본이 가장 중요합니다. 장갑도 그립감이 자연스럽고, 피로감이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이 시리지 않아야 합니다. 경영자가 사람을 애정 있게 살피고, 끝마디까지 챙기고 있어야 회사가 단단해집니다.”
☞“여공 야반도주 지켜만 봤다”…‘866억 장갑’ 회장님의 회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7579
‘청소왕’ 구자관 “자긍심을 세웠다”
구자관(80) 삼구아이앤씨 회장은 ‘대한민국 청소왕’이다. 직원이 5만 명 가까이 되고, 매출은 2조원이 넘는다. 1968년 군에서 제대한 후 식당과 옷가게를 찾아다니며 “화장실 청소를 대행해주겠다”고 간청하면서 개척한 일이다.
삶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1980년 막 투자한 왁스 공장에서 불이 났다. 한순간에 공장은 잿더미가 됐고, 그는 온몸의 3분의 1가량에 화상을 입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수세미로 다친 살갗을 벗겨내야 했다. “이런 고통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병실에서 뛰어내릴 작정이었습니다. 힘껏 문을 열었지만 허탕이었어요. 문은 안에서 열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병원 빚 8000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빚쟁이들이 줄을 이었다. “그때 생명보험 들어 둔 게 떠올랐습니다. 나 하나 사라지면 아내와 두 아이는 살릴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조용히 유서를 썼지요.”
이것도 쉽지 않았다. 자동차가 잠수교 난간에 부딪치고, 경찰에 구조됐다. 이후 벼랑 끝에서 재기의 끈을 잡았고, 지금의 구자관을 만들었다.
그걸로 끝난 게 아니다. 그는 인력 아웃소싱이라는 업(業)을 만들었고, 청소와 경비 업무에 자긍심을 세웠다. 이 회사 대부분의 직원은 정규직이다. 현장 직원에 대한 호칭은 ‘선생님’ ‘여사님’이다. 정년 제한은 따로 두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 1936년생 ‘선생님’이 근무했다(현재는 1939년생 직원이 최고령). 전 직원에겐 명함을 지급한다.
“(명함이) 사소한 거 같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 서로에 대한 존중이지요. 초면인 사람과 인사할 때도 물론이지만, 집안 행사 가서도 ‘지금 뭐 하고 있다’고 말하기에 유용해요.”
☞빌딩 변소 염산 들고 누볐다…2.3조 ‘청소왕 구자관’ 성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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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1200만원 벌어도 망했다…순댓집 여사장 ‘오뚝이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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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들이받고 연 2500억 번다…‘퇴사왕’ 김 대리가 만든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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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원 공장밥 먹는 사장님, 250억 쏟아 특목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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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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