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걸려 입었는데 바로 벗으랴
![로리 매킬로이. [AP·로이터=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joongang/20260414000319375rtxj.jpg)
로리! 로리! 로리!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우승 퍼트를 넣은 순간 터진 팬들의 환호는 미국 조지아 주 서쪽 하늘에 낮게 걸린 해가 그림자를 조금 더 늘일 때까지 이어졌다.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오거스타는 그를 축복했다.
마스터스에서는 전년도 챔피언이 우승자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준다. 매킬로이는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스스로 입혀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관례에 따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회장 프레드 리들리가 재킷을 입혀줬다. 이런 장면은 이전에 딱 세 번 뿐이었다. 1966년 잭 니클라우스, 1990년 닉 팔도, 2002년 타이거 우즈가 2연패를 달성했을 때다. 잠시 벗었던 재킷을 회장의 손을 빌려 다시 걸치는 그 장면은, 매킬로이가 마침내 오거스타의 진정한 강자로 자리매김했음을 상징한다.
매킬로이가 오거스타의 악령을 완전히 떨쳐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 합계 12언더파로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를 한 타 차로 꺾고 우승했다. 마스터스 역사상 네 번째 2연패다. 또한 닉 팔도가 보유한 유럽 선수 최다 메이저 우승 기록(6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마스터스는 다른 메이저에 비해 출전 선수가 적고 매년 같은 코스에서 열려 스타 선수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귀족 대회’다. 잭 니클라우스(6승), 타이거 우즈(5승), 아널드 파머(4승), 필 미켈슨(3승) 등 전설들이 이곳에서 다승을 쌓은 이유다.
![로리 매킬로이가 12일(현지시간) 끝난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확정하고 포효하고 있다. 역대 4번째로 이 대회 2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AP=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4/14/joongang/20260414000320716xpzo.jpg)
그러나 매킬로이에게 오거스타는 오랜 시간 잔인한 땅이었다. 2011년, 21세의 나이로 최종일 4타 차 선두를 달리다 트리플 보기와 4퍼트로 무너지며 그린 재킷을 놓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였다. 첫 출전 후 17년 만인 지난해에야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완성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는, 이제 2연패로 명실상부한 오거스타의 주인이 됐다.
매킬로이는 2라운드 후 6타 차 선두로 나섰으나 3라운드 아멘코너에서 3타를 잃으며 흔들렸다. 4라운드 3번 홀에서는 1.8m에서 3퍼트를 하며 선두를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뢰밭 같은 아멘코너에서 오히려 공격적으로 경기하며 점수를 줄여 재역전 우승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우승한 것처럼 좋아했다.
저명한 골프 언론인 앨런 쉽넉이 최근 펴낸 전기 『로리: 골프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수퍼스타의 고뇌와 승리』는 매킬로이가 왜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지 분석한다. 우즈가 철저한 신비주의 속에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함을 연기하는 ‘골프의 신’이었다면, 매킬로이는 자신의 감정과 취약함을 대중 앞에 드러내는 ‘인간’이다.
팬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뼈아픈 패배 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고, 실수를 자책하며, 때로는 골프에 대한 회의감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결정적인 순간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그의 모습에서 팬들은 자신의 삶을 투영하며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둘째, 골프의 역사와 전통을 진심으로 아낀다. 10년 넘게 마스터스 우승에 집착하며 고통 받는 모습은 돈이나 명예보다 역사적 성취를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비쳐졌다. LIV 골프와의 갈등 속에서도 투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앞장선 소신은 ‘골프의 양심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셋째, 스윙 자체가 카타르시스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장타와 공격적인 핀 공략은 보는 이들을 열광 시킨다. 소위 ‘그분(Zone)’이 강림했을 때의 몰입감과 몰아치기는 골프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술적 경지로 평가 받는다.
매킬로이는 경기 후 “네 번째 메이저 우승 후 다섯 번째를 따내는 데 10년이 걸렸고, 여섯 번째는 그 직후에 바로 이루어졌다. 몇 번 더 우승할지 단정 짓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멈추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음에도 압박감에 흔들리고 실패를 두려워했던 ‘인간 로리’가 쓰는 승리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거스타=성호준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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