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도 없고 인터넷 끊기지만... 만족도 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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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중 기자]
장화 하나로 하루 아침에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도시를 떠나와, 산촌에서 이것저것 시도하며 살아보고 있는 나에게는 거짓말이 아니다. (관련 기사: 15년 직장 관두고 '5촌 2도'의 삶을 살게 되었다)
도시의 편의성을 뒤로하고 산촌에서 살아보기로 한 결정은 단순한 일시적 체험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불균형과 진정한 행복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잊혀가는 산촌의 가치와 그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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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내린 산촌 마을 눈 내린 산촌 마을 |
| ⓒ 김현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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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츠를 신고 뛰어보자 팔짝 이젠 자유롭게 언제든 산행이 가능하다 |
| ⓒ 김현중 |
나는 멋모르고 등산을 하다가 눈에 푹푹 빠져서 벌써 신발만 2개가 푹 젖어버렸다. 도시에서 가져온 트레킹화는 이곳 산촌의 눈길에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임도로 걸을 때면 눈길의 가장자리로 조심조심 걸었지만, 그마저도 발이 젖어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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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만 원짜리 산촌 필수템 방수 부츠 나는 1백만 원이 넘는 명품 장화 부럽지 않은 1만 원짜리 장화를 마련했다. 만족도는 1백만 원 이상이다. |
| ⓒ 김현중 |
인터넷을 뒤져 가성비 좋은 장화를 찾아 주문했다. 1만 원. 도시에서라면 커피 몇 잔 값이지만, 이 산촌에서는 자유를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며칠이 걸려 받아본 장화. 상자를 열자 반짝반짝 빛나는 장화가 들어있었다. 꺼내서 신어보니 100만 원이 넘는 발렌시아가 롱 부츠 부럽지 않은 명품 장화처럼 느껴졌다.
눈길에서 신발이 젖을까 걱정하며 조심조심 걷던 나는 장화라는 '필수템'을 장착하고 산으로 향했다. 이전에는 눈이 가장 얕은 곳만 골라 다녔지만, 이제는 눈길 한가운데를 당당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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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만 원짜리 산촌 필수템 방수 부츠 이젠 자유롭게 언제든 산행이 가능하다 |
| ⓒ 김현중 |
도시에서는 손가락 몇 번 터치로 한 시간 안에 배달 음식이, 하루 만에 주문한 물품이 집 앞에 도착하지만, 이곳 산촌에서는 배달 음식 자체가 없다. 택배는 마을까지 오지도 않아 차로 15분을 나가서 편의점에서 찾아와야 한다. 이마저도 택배사가 분실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니, 생각하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디지털 단절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실제 연결을 강화했다. 마을 주민들은 서로의 집을 방문해 음식을 나누고, 필요한 물건을 빌려주며, 함께 일손을 돕는다.
길에서 만난 이웃은 "내일 나도 (택배) 가지러 가니까, 내일 당신 것도 가져다줄게"라고 제안한다. 디지털 편의성이 사라진 자리에 인간적 온기가 채워지고 있다고 느꼈다. (관련 기사: 화장실서도 폰 보던 나, 15년 만에 처음 SNS 지웠더니)
산촌에서의 삶은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다. 일자리는 부족하고, 농사는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불확실해진다. 겨울이 길어지면서 농작물 수확량은 줄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는 농부들의 근심을 깊게 한다.
산나물을 재배하는 김길순(가명, 65세) 씨는 "요즘은 철마다 날씨가 안 맞아. 작년에는 늦서리가 와서 나물이 다 얼어버렸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났고, 혼자 농사를 짓는다. 산촌의 경제 기반이 점점 약해지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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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츠를 신고 뛰어보자 팔짝 이젠 자유롭게 언제든 산행이 가능하다 |
| ⓒ 김현중 |
익숙한 것을 때로는 한 발짝 떨어져 낯설게 느끼는 것이 인생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하는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경험은 단순한 개인적 체험을 넘어 우리 사회의 불균형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 디지털 접근성의 불평등, 소비 중심 문화의 한계, 그리고 기후변화가 농촌 지역에 미치는 영향까지. 하나의 장화를 통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균열이었다.
산촌 체험은 도시인에게 낭만적인 '힐링'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른 현실을 마주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도시화, 디지털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산촌은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고령화된 산촌 주민들의 삶의 질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싶은 산촌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장화를 신고 눈길 한가운데를 당당히 걷는 나의 모습에서,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용기가 중요함을 느낀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미처 몰랐던 소소한 행복뿐 아니라, 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통찰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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