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가 중국에서 자체 개발한 반도체로 애플의 아이폰과 유사한 수준의 최신 5세대(5G) 스마트폰을 깜짝 공개하며 미국 규제에 대한 중국의 우회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리서치기업 테크인사이트에 의뢰해 화웨이가 최근 출시한 ‘메이트 60 프로’를 분해한 결과 이 스마트폰이 중국 반도체기업 SMIC가 개발한 7나노미터(nm)급 기린 9000s 프로세서를 탑재했다고 전했다. 테크인사이트는 이번 스마트폰이 SMIC의 7나노 공정이 최초로 적용된 사례로 중국 정부가 자체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SMIC와 화웨이가 대량으로 칩을 생산할 수 있는지,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지 등 이 기업들의 기술적 진전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지만 메이트 60의 반도체는 최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막기 위한 미국 주도 캠페인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화웨이는 지난달 29일 온라인몰을 통해 메이트60 판매를 시작했다. 회사는 이번 스마트폰이 가장 강력한 기기라고 밝히는 한편 구체적인 사양은 공개지 않았다. 메이트60의 출시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와 투자 규제 등을 주도하는 미 상무부의 지나 러먼도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7나노 칩은 애플 아이폰의 2018년 기술 수준까지 따라잡은 것이며 최신 기술보다 2세대 뒤쳐진 것으로 평가된다. 아이폰14는 4나노 공정으로 제작된 칩을 탑재했으며 다음 주에 공개되는 아이폰15는 3나노 공정 기반의 칩이 적용될 예정이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아왔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로 해외 업체로부터 5G 칩을 구매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스마트폰이 5G 통신인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블룸버그 자체 테스트에 따르면 메이트 60 프로의 통신 속도는 최신 아이폰 속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16~14나노의 로직칩과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수출 통제 방안을 발표했다. 또한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와 SMIC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두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바 있다. 미국 기업들은 블랙리스트 지정 기업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정부의 라이선스(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화웨이 스마트폰은 중국이 약 5년 뒤처지고 생산량이 제한되더라도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으며 첨단 반도체 자립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댄 허친슨 테크인사이트 부회장은 “중국에 상당히 중요한 발표”라며 “SMIC의 기술적 발전은 가속화되고 있으며 7나노 기술에서 수율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날 홍콩증시에서 SMIC는 전 거래일 대비 약 11% 오르며 2021년 1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SMIC 주가는 상하이 증시에서 6% 이상 올랐다.
UOB 카이히안의 스티븐 렁 이사는 화웨이의 스마트폰 출시가 “SMIC와 중국 반도체 산업 전체에 큰 힘이 될 것이며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은 것이기 때문에 주가 랠리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이 이 분야에서 이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못 했다”고 전했다.
샌포드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들은 화웨이가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문에 대한 공급을 늘리는 데 있어 진척을 보이고 있다며 “화웨이와 중국의 진전이 기대보다 더 낫다”고 평가했다.
다만 화웨이와 SMIC가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첨단 기술 발전을 이루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7나노 이하의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극자외선(EUV) 장비 등 첨단 노광장비가 필요한데 네덜란드 정부는 2019년에 전 세계 유일한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자국의 ASML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제프리스의 에디슨 리 애널리스트는 메이트 60 프로를 통해 중국의 반도체 발전 상황에 대해 분석하는 것에 있어서 신중할 필요가 있으며 신제품이 몇 시간 안에 매진됐다는 것은 재고가 제한적임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중국이 극히 소량의 7나노 칩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에 사들인 대만의 TSMC 칩으로 일부 스마트폰을 구동하는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