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배철현 칼럼]

카라바조가 남긴 많은 그림 중, 이 소명의 순간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그림이 있다. 바로 ‘성 마태의 소명’이다. 그는 1599~1600년 이 그림을 로마에 있는 프랑스인을 위한 교회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안에 위치한 콘타렐리 예배당 벽 장식을 위해 그렸다.
프랑스 출신 추기경 마태오 콘타렐리가 많은 돈을 남기며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이름과 연결되는 예수의 제자 마태에 관한 성화 제작을 부탁한 것. 이 성당 안, 예배당의 천장화는 카라바조의 고용주이며 당대 최고 화가인 주세페 체사리가 맡았다. 체사리가 바티칸 성당 그림 작업으로 바빠지자, 카라바조에게 기회가 왔다.
카라바조는 먼저 ‘마태에 관한 무슨 그림을 그릴 것인가?’ 고민했다. 그는 마태에 관한 세 장면을 구상했다. 세리였던 마태가 예수의 부름을 받는 장면, 마태가 영감을 받아 첫 복음서를 기록하는 장면, 그리고 마태가 순교하는 장면이다. ‘성 마태의 소명’ 내용은 복음서에 등장한다. 예수가 수제자인 베드로와 함께 갈릴리 해변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늦은 오후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들이 상가가 즐비한 거리를 지나다 조그만 사무실 앞에서 가던 길을 멈춘다. 그곳은 세금을 징수하는 사무실이었다. 납세자와 징수원들이 모여 옥신각신하며 세금을 계산하는 장소였다. 예수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돈을 세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곳은 로마제국 위임을 받아 가난한 동료 유대인으로부터 세금을 징수하고 계산하는 악명 높은 마태의 세무소였다.
예수와 베드로가 세금 동전을 계산하기 위한 테이블만 달랑 놓인 어두침침한 세무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강렬한 빛이 오른편에서 사선으로 들어와 책상에 앉아 있는 다섯 명에게 떨어진다. 벽에 마련된 창문의 덧문이 활짝 열려 있지만, 네 장의 창문을 통해서는 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다. 마치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의 가장 깊은 곳에 장식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가짜 문과 같다. 이 창문은 유리가 아니라 빛의 통과를 거부하는 유포(油布)로 막혀 있다. 긴 테이블 끝에는 세금을 내야 하는 한 젊은이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는 지금 막 세금을 납부했고, 이젠 세리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잔금을 동전으로 받고 있다. 그는 세리의 손에서 책상 위로 딱딱 소리를 내며 올려지는 동전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어깨는 긴장해서 잔뜩 올라가 있다. 이 젊은 납부자 곁에 동그란 안경을 낀 노인이 동전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다. 그는 고급스럽게 정돈된 모피를 입고 있다. 징수자와 납세자 사이 현금 거래가 올바르게 진행되는지 검열하는 그는 거간으로 많은 돈을 번 속물이다.
그 옆에 세금 징수자 주인공 마태가 앉아 있다. 마태 옆에는 동그란 얼굴을 하고 털모자를 쓴 소년 사환이 마태의 어깨에 자신의 오른팔을 올렸다. 그는 카라바조의 시칠리아 출신 친구이며 화가인 마리오 민니티다.
‘마태복음’에 등장한 세리 마태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장면은 극도로 간결하다. 카라바조는 마태가 예수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한 마태복음 9장 9절을 읽고 또 읽었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다. 그가 그에게 말했다. ‘나를 따르라’. 그리고 그가 일어나 예수를 따랐다.”

“누구요? 저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는 마태의 얼굴
카라바조가 주목한 지점은 예수가 “나를 따르라!”라고 말한 후에, 마태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르기까지의 침묵만이 흐르는 순간이다. 이 예수의 간절한 부름과 마태의 주저가 만나 혼돈을 일으킨, 영원한 순간이다. 카라바조는 이 이야기의 나머지를 전부 생략하고 이 결정적인 순간에만 집중한다. 예수는 마태의 관공서에 들어서 “나를 따르라”라고 딱 두 마디를 던졌다. 마태는 이 낯선 자의 과감한 부름에 놀라 고개를 돌려,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예수의 눈을 가만히 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요구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예수의 소명을 믿을 수가 없어 입술을 꼭 다문다. 그런 후 왼손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키며, “누구요, 저요?”라고 되묻는다. 이 순간,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납세자 청년에게 돌려줘야 할 마지막 동전을 아직 책상 위에 올리지 않았다. 자신이 돌려받아야 할 동전이 아직 그의 손에서 내려오지 않자, 납세자는 다시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마태는 과연 예수를 따를 것인가?
카라바조는 마태의 심정 변화를 책상 밑에 있는 마태의 다리로 표시했다. 그의 몸은 이미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리와 손은 돈을 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지만, 그의 발은, 그의 몸은 자신이 가야 할 유일한 곳을 향해 이미 방향을 틀었다. 예수의 명령도 마태의 결단도 불가피한 운명이었다. 카라바조는 예수의 신성을 잘 보이지 않는 머리 위 희미한 노란색 직선 후광으로 표시했다. 예수는 이 순간에 마태를 최면이 걸릴 정도로 강렬한 눈빛으로 보았다. 그가 마태를 간절하게 부르지만, 그는 동시에 이 사무실을 떠날 참이다. ‘성 마태의 소명’은 빛과 어둠의 대비뿐 아니라, 마태와 그의 동반자들이 착용한 화려한 장식이 달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옷과 예수와 베드로의 남루한 의상과 맨발이 대비된다. 예수와 베드로의 맨발은 모세가 가시덤불에서 신을 만났을 때처럼, 이 소명의 행위가 거룩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성 마태의 소명’에서 예수가 마태를 지목하는 손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성당 천장화에 그린 ‘아담의 창조’에 대한 재해석이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서 신은 다 시들어가는 아담의 손을 향해 생명을 부여하는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가져간다. 카라바조는 ‘성 마태의 소명’에서 신의 손이 아니라 인간인 예수의 손을 그린다. 카라바조에게 예수는 신의 형상을 지닌 두 번째 아담이다.
마태는 이제 예수를 통해 자신의 소명을 들었다. 이 소명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다. 고독과 침묵만이 이 소리를 경청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4호 (2025.01.22~2025.02.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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