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세리머니' 정철원, 간절했기에 더 뼈아팠던 0.1초

이준목 2023. 10. 3. 09:2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롤러스케이트 스피드 남자대표팀, 3000m 계주 결승 은메달

[이준목 기자]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미국의 야구 레전드 요기 베라가 남긴 어록은 야구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 적용할수 있는 명언이다. 한 선수의 설레발이 한국 롤러스케이트의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최인호(논산시청), 최광호(대구시청), 정철원(안동시청)으로 구성된 한국 롤러스케이트 스피드 남자대표팀은 지난 10월 2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첸탕 롤러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3000m 계주 결승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기록했다. 초반부터 내내 1위를 질주한 한국은 금메달을 눈앞에 두는 듯 했으나 순간의 방심이 운명을 바꿨다.

결승선 앞에서 '만세 세리머니'
 
 2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첸탕 롤러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롤러스케이트 남자 스피드 3,000m 계주에서 한국 마지막 주자 정철원이 2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의 마지막 주자인 정철원은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승리를 확신한듯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만세 세리머니'를 했다. 하지만 뒤따라 들어오던 대만의 주자 황위린이 결승선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하면서 왼발을 쭉 내미는 '날 들이밀기' 기술을 시도했다. 레이스 종료 후 최종 기록 판독 결과는, 대만(4분5초692)이 한국(4분5초702)에 불과 0.01초 차로 먼저 들어온 것이 확인됐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발휘하며 대역전승을 거둔 대만 선수단은 환호했다. 반면 금메달을 확신하고 태극기 세리머니까지 펼쳤던 한국 선수단은 믿기 지않는 결과를 듣고 그대로 망연자실했다. 남자팀은 시상대에 올라서도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며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같은 날 앞서 여자 3000m 계주에서 여자팀(이예림, 이슬, 박민정)도 똑같은 은메달을 따냈지만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시상대에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남자팀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된 대만의 황위린의 투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황위린은 아시안게임 뉴스 서비스 '마이 인포'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코너에서 전방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한국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황위린은 "우리가 이겼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조금 늦었다는 게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전광판에 우리가 0.01초 차로 이겼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경기가 아직 끝나기전에 벌써 다 이겼다고 방심한 정철원과,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황위린의 '멘탈'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는 것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

특히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로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의 금메달까지 날린 꼴이 되어버린 정철원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나마 최광호는 전날인 1일 남자 개인 스프린트 1000m에서 이미 금메달을 땄지만, 정철원과 동료 최인호는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병역특례 혜택도 날리게 됐다.

정철원은 전날 1000m에서는 1분29초499로 팀동료인 최광호(1분29초497)에 불과 0.002초 차로 금메달을 놓친 바 있다. 그래도 어제는 아쉬움 대신 팀동료 최광호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활짝 웃어 보였다. 당시 정철원은 "한국 선수가 1, 2 등을 하게 돼 매우 기쁘다. 최광호 형은 대표팀 동료이자 선의의 경쟁자로 우승한 선배가 자랑스럽다"라고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며 박수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하루만에 정철원은 금메달도 또다시 놓치고 더 뼈아픈 흑역사까지 추가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정철원에게는 어쩌면 이번 남자 계주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향한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었다. 롤러스케이트 종목 2026 아이치·나고야 대회에서는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철원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스프린트 1000m에서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아쉬운 파울 판정으로 실격돼 금메달을 걸지 못했던 징크스가 있었기에, 더욱 이번 아시안게임을 열심히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상식이 끝난 뒤 정철원은 "제가 방심하고 끝까지 타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응원해주신 많은 분께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금메달을 놓쳤지만 한국 롤러스케이트는 이 대회 종목 일정이 시작된 이래 사흘 연속 메달을 따내며 강세를 이어갔다. 지난 9월 30일 남자 스피드 롤러스케이팅 10000m 포인트 제외(EP) 레이스에서 정병희가 금메달, 최인호가 동메달을 획득했고, 여자 경기에서는 유가림이 동메달을 따냈다.

1일에는 스프린트 1000m 종목에서 최광호가 금메달을, 정철원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으며, 여자 부문의 이예림은 동메달을 획득했다. 최광호는 아시안게임에서 벌서 4개의 메달(금메달 1, 은메달 3회)을 수확하기도 했다.

정철원의 가장 큰 실수는 메달 색깔이 아니라, 스포츠맨십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아시아의 수많은 선수들이 1년 연기된 이번 아시안게임을 기다리며 5년의 시간을 바쳐서 준비해 왔다. 그리고 정철원 역시 누구보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간절했을 선수중 한 명이었기에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