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대만 명칭 표기

고세욱 2026. 3. 2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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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욱 논설위원


1992년 8월 24일 오후 서울 명동 대만대사관에서 마지막 국기 강하식이 열렸다. 6시간 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대사관을 중국으로 넘겨야 해서다. 청천백일기가 내려지자 대사관 직원, 한성 화교 학생들이 연신 눈물을 닦으며 ‘중화민국이여,영원하라’를 외쳤다. 장내엔 비통함과 숙연함이 가득했다(당시 국민일보 보도). 대만과의 단교는 국민들로 하여금 냉엄한 국제질서를 실감케 했다. 대만의 서글픔은 대사관과 국기를 못쓰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국가 명칭 선택권도 없었다.

1971년 10월 유엔이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했다. 대만의 공식 국가 명칭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이 이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만(Taiwan)’ 명칭도 ‘하나의 중국’ 위반이라는 중국의 반발로 세계의 수용이 원활하지 않다. 스포츠 대회에선 대만은 타이완이 아닌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를, ‘청천백일기’가 아닌 ‘차이니스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 깃발을 대신 사용한다. 대만이 타이완을 썼다간 올림픽 자격 박탈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탈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운명이다.

최근 대만이 한국의 입국신고서에 나오는 국가 명칭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자국이 ‘중국(대만)’으로 표기되자 대만도 서류에서 ‘한국’ 명칭을 ‘남한’으로 변경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한국이 지난해 2월 전자입국신고 제도를 도입하면서 종이에 수기로 작성하던 방식과 달리 미리 작성된 국가 목록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 게 화근이었다. 목록에 대만이 ‘중국(대만)’으로 표기됐다.

대만은 “우리는 중국과 종속 관계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 미국·유럽·일본 등은 출입국 신고서 및 비자에 ‘Taiwan’을 별도로 표기한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할 순 없지만 타국과 유사한 행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성장률, 1인당 소득도 우리를 추월했고 반도체 공급망으로 긴밀히 연결된 경제 강국인 대만의 자존심을 훼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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