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의 재력으로 ‘그냥 잘 사는 집 자녀’로 묶기엔,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으로 엔터 산업 한복판에 선 이들이 있다. 신세계 오너가 3세 애니(문서윤), 네이버 창업자 아들 로렌(이승주), 오뚜기 오너 3세 함연지. 셋은 집안의 반대와 편견을 뚫고 각자의 방식으로 데뷔해, “배경이 전부”라는 시선을 성과와 태도로 갱신했다.
애니(문서윤)
'신세계 손녀' 꼬리표 실력으로 지우는 법

올데이 프로젝트의 애니는 신세계그룹 총괄회장 이명희의 외손녀이자 정유경 회장의 딸. 범삼성가 4세라는 압도적 가계로, 더블랙레이블 연습생 시절부터 ‘진짜 재벌가 연습생’이라는 호기심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애니의 출발점은 화려함이 아니라 집요함이었다. 초등 3학년부터 뉴욕 맨해튼에서 자란 그는 채핀 스쿨을 거쳐 컬럼비아대 미술사·시각예술을 전공했다.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하면 가수가 될 수 있도록 가족들을 설득하겠다”는 어머니의 제안에 열심히 공부한 결과다. 7살에 빅뱅·2NE1 ‘Lollipop’ 뮤비를 보며 가수의 꿈을 꾼 뒤, 만 16세에 시작해 약 7년 연습생 생활을 버틴 근성도 남다르다. 방학엔 한국에서, 학기 중엔 원격 과제로 안무·보컬 트레이닝을 이어가며 ‘비대면 연습생’으로 내공을 채웠다.

더블랙레이블 걸그룹 조 합류설과 불발을 오가던 2024년, 그는 ALLDAY PROJECT 데뷔조를 택해 본격 궤도에 올랐다. 애니는 “내 진심을 의심하는 시선이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 많이 증명하겠다”고 말한다. ‘신세계 손녀’라는 호명은 피할 수 없는 팩트지만, 평등한 시험대는 무대 위에 있다. ‘출신이 만든 관심을 실력으로 전환하는 것’ 그가 택한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지금 그 이름 앞의 수식어는 점점 바뀌는 중이다. ‘정유경의 딸’에서 ‘무대를 선택한 아티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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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이승주)
네이버家 아들에서 '올라운더 뮤지션'으로

아버지는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그러나 로렌의 커리어는 ‘경영’이 아니라 ‘음악’으로 시작됐다. 싱가포르 조기 유학, 와세다대 진학 했지만 중퇴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13살 때 부모를 설득해 첫 기타를 손에 쥐었고, 레슨 대신 기타 센터에서 아는 사람에게 연주를 배웠다고 한다. 데뷔 전에 클럽 DJ ‘Boid’, 프로듀서 ‘Cawlr’로 활동한 적이 있다. 유학 당시 영어를 못해 카툰 채널과 MTV만 볼 수 있었는데 특히 MTV로 흡수한 2000년대 록의 감수성은 그의 음악에 뿌리가 됐다.

2017년 지드래곤 ‘개소리’에 작·편곡가로 참여하며 업계에 이름을 올렸고, 2020년 블랙핑크 ‘Pretty Savage’ ‘Lovesick Girls’ ‘You Never Know’ 작사로 존재감을 확장했다. 같은 해 1인 레이블 FIRE EXIT RECØRDS를 세우고 ‘Empty Trash’로 데뷔, 더블랙레이블과의 협업을 이어가며 모델로도 생로랑 아이웨어 캠페인을 장식했다.

188cm의 슬렌더한 피지컬과 몽환적 무드는 무대·화보를 가리지 않고 그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했고, 코첼라, 서머소닉 등 글로벌 페스티벌 행보는 ‘금수저의 취미’가 아닌 ‘아티스트의 커리어’임을 증명했다. 유학 시절 언어 장벽을 뮤직비디오로 극복하던 소년은, 이제 음악으로 세계와 대화한다. 로렌의 서사는 단순하다. 배경은 화제를 만들지만, 노래는 커리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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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연지
'오뚜기 3세' 수식어를 이기는 노력

오뚜기 함영준 회장의 장녀인 함연지는 예원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대원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를 나와 뉴욕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그는 2015년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데뷔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노트르담 드 파리>, 연극 <아마데우스> 등에 출연하며 무대를 밟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주인공 미라벨 마드리갈의 한국어 더빙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초반에는 늘 ‘오뚜기 3세’가 이름 앞에 붙었지만, 그는 수많은 오디션 도전을 견디고 뮤지컬 <차미>에서 취준생 차미호로 공감을 획득하며 무대 위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유튜브에선 라면 끓여 먹는 소탈한 일상, 다이어트 실패담, 키·외모 콤플렉스까지 숨기지 않는 솔직함으로 45만 구독자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 그가 최근엔 LA로 거점을 옮겨 오뚜기 아메리카에 입사해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함연지가 결국 무대를 떠나는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에 그의 팬들은 아쉬움과 더불어 가업을 잇는 그의 선택에 대해 응원하는 분위기다.
나우무비 에디터 썸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