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우리 병원'이 있을 때 생기는 일
'필요할 때 언제든 병·의원에 가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수 있다'는 건 현대사회의 공통감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이나 성별, 직업,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농촌 의료의 지금을 조명합니다. 더 많은 기사는 <월간 옥이네> 10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월간 옥이네]
▲ 홍성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 이정표. |
ⓒ 월간 옥이네 |
전체 인구 약 3500명. 노인 인구가 전체의 약 41%(919세대)이고 이 중에서도 1인 가구가 절반 가까이 이르는 면 지역이지만 이곳 의원은 하루 평균 50명, 한 달에 약 1000명이 방문할 만큼 주민들에게 사랑받는다. 전국 최초 면 단위 의료사협으로, 670명의 조합원이 힘을 합쳐 운영한다는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우리동네의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우리동네의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이야기와 우리동네의원 이훈호 원장,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아래 홍성의료사협) 안상균 사무국장을 만나봤다. 기사 두 편에 걸쳐 소개한다.
▲ 홍성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의 모습. |
ⓒ 월간 옥이네 |
대기실 한쪽 벽면에 자리한 조합원의 명단과 사진은 이곳이 수많은 이들의 힘이 합쳐 만들어진 공간임을 보여주는 듯한데, 이곳에서 다양한 이용객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홍동면에 소재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재학 중인 신민서(19)씨는 몸이 좋지 않을 때는 가장 먼저 이곳 의원을 찾는다.
"가벼운 감기, 배탈, 위염이 있을 때 이곳에 찾아와요. 크게 다치면 홍성읍까지 나가야 하지만요. 원장님을 의원 밖에서도 자주 마주쳐요. 이곳에 사시고 또 학교에 오셔서 흡연예방교육같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행사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무척 친근하게 느껴져요. 동네를 잘 아는 의사선생님이 계시고 안심하고 찾아올 병원이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배성덕(81)씨는 이날 운전면허 갱신을 위한 치매검사를 위해 의원을 찾았다. 아쉽게도 간호사로부터 '치매검사는 보건소에서 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돌아가야 했지만, 이곳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홍성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을 이용하는 이명숙씨. |
ⓒ 월간 옥이네 |
"당뇨가 아닌지 의심이 돼서 며칠 동안 측정한 혈당 수치를 적어 왔는데 다행히 당뇨는 아니래요. 정말 다행이죠. 몇 년 전 암으로 고생을 많이 해서 몸에 작은 이상만 있으면 바로 의원에 와요. 다른 의원에 가봤는데 왜 아픈지 설명도 충분하지 않고 진료 시간도 짧고 불친절한 경우가 있어서 이제는 여기만 와요.
제가 궁금해하는 건 작은 것부터 세세하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거든요. 내 몸이 왜 아픈지 알려주는 게 진짜 진료 아니겠어요? 이제는 다른 곳은 못 가겠어요. 마을에 이런 의원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 홍성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의 모습. |
ⓒ 월간 옥이네 |
▲ 홍성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 봉사자 남능희씨(왼쪽), 살구씨(오른쪽). |
ⓒ 월간 옥이네 |
상담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내 미래라고 생각돼요. '나도 언젠가 저 나이가 될 텐데'라고 생각하면 더 집중하게 되고요. 그러다 이야기 듣고 기록하며 이웃의 건강을 돌보는 활동을 하다 보면 이 모습을 본 누군가가 훗날 제 건강에 관심 가져 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합원들의 활동에 반해 제가 조합에 가입한 것처럼요. 요즘은 자녀들에게 기댈 수 없는 시대잖아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함께 도우며 살아가야죠. 이런 생각을 하면 더 열심히 활동하고 싶어져요." (남능희 씨)
"노인질환 사전검사는 직원들이 조금씩 하던 일이에요. 인력이 여의치 않아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 처음으로 조합원과 함께하고 있어요. 노인포괄평가지를 토대로 원장님과 회의를 거쳐 관찰과 진료, 그에 맞는 서비스를 연계해요. 벌써 60명 넘게 진행했는데, 조합원 봉사자가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거예요. 마을 주민들 질병 예방뿐 아니라 우리 지역에 어떤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지도 조사할 수 있어요." (살구 씨)
▲ 홍성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 이훈호 원장. |
ⓒ 월간 옥이네 |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돼 만든 다양한 협동조합과 단체, 이들이 만들어낸 마을 분위기가 바람직하다고 느꼈죠.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기에도 좋은 마을이라고 봤습니다. 의료 관련 협동조합을 만들고자 하는 수요도 있었고, 제가 여기에서 역할을 해볼 수 있겠단 생각에 이곳에 이주, 홍성의료사협의 조합원이 돼 의료인으로서 활동하게 됐죠."
그가 공중보건의로 근무할 당시 인상 깊었던 풍경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장례문화였다.
"마을공동체에 대해 아직 잘 모르던 시기예요. 평생 도시에 살다가 농촌에 왔을 때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장례문화였습니다. 마을 분들이 하나 돼 장례 절차를 도와주시는 모습을 보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를 접하면서 마을공동체가 스스로 기능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곳에 이주해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된 그는 외래진료와 방문진료 등 의료 행위뿐만 아니라 각종 건강프로그램에 강사로도 참여하며 구석구석 녹아들고 있다.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홍성의료사협이 있는 홍동마을은 풀무농업기술학교(1958년 설립)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업 발상지이자 농업·문화·교육·의료복지 분야 등 협동조합이 14개, 비영리 단체가 10개 이상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중심지'다.
홍성의료사협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협동조합으로 70회 이상의 준비모임을 거쳐 2015년 314명의 조합원, 4천만 원의 출자금으로 창립했다. 이는 전체 면 주민의 약 10%가 조합원으로 가입한, 면 단위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다.
"풀무농업기술학교의 존재가 지금의 홍동면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유기농업에 관심있는 분들, 올바른 교육은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는 분들이 모여서 이곳에 여러 협동조합과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좋은 마을공동체를 만들고자 할 때 '의료시설' 역시 빠질 수 없었죠.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스스로를 살피고 서로를 보살피는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의료문제를 고민하며 이들은 기존의 전문가, 자본 중심의 의료체계로는 이를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 주민들의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만들어나가고자 했다. 홍성의료사협 안상균 사무국장은 기존 의료체계를 잘 드러내는 한 장면을 이야기했다.
"언젠가 서울시 강남구의 22층짜리 건물을 본 적이 있죠. 전체 층 중 19층이 전부 병원으로 이뤄져 있었어요. 피부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치과, 안과와 같이 수익성이 높은 병원이 대부분이었죠. 오늘날 의료 체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풍경이었습니다."
의료수가(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한 뒤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총액)가 병·의원 수익의 기초가 되고, 이를 기준으로 병원이 설립되다 보니 수도권과 특정 전공에 의료 시설과 의료인이 몰린다.
▲ 홍성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을 이용하는 어르신들. |
ⓒ 월간 옥이네 |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홍성의료사협은 주민의 필요를 채우는 의료체계를 만들고자 2020년 조합의 방향과 목표를 세웠다. ▲적극적인 지역사회 참여 ▲신뢰와 실력을 가진 1차 의료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우선하는 농+촌 복지 ▲살핌을 촉진하고, 보살핌을 연결하자 ▲건강한 협동조합 만들기가 그것.
이들은 우리동네의원 운영 외에도 주민자치회와 다양한 지역모임 및 행사에 참여한다. 마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관계를 맺는 주민·마을주치의로서 이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건강증진·예방·치료·재활을 연계하는 포괄적인 접근으로, 어르신문화교실과 한글교실 등 노인돌봄 활동을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외 노인·장애인·암환우 등 당사자가 중심이 된 자조모임, 걷기모임과 산행모임 등 건강소모임, 조합원 건강검진 리스트와 건강지도 제작, 건강지킴이와 건강반을 조직해 마을을 방문, 조합원 교육과 자원봉사 소모임을 개설하기도 했다.
"꾸준히 진행 중인 '꾸러미 배달부'는 2주마다 취약계층을 방문해 건강 꾸러미와 함께 안부를 나누는 활동이죠. 12명의 자원봉사자가 26명의 이웃을 대상으로 식재료 위주의 꾸러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강에는 질병 유무뿐만 아니라 끈끈한 사회적 관계도 중요한데, 꾸러미 배달부가 그 관계를 돈독히 하는 역할을 해요."
어르신을 대상으로 주 2회 진행되는 어르신 문화·여가 프로그램 '지금! 여기! 우리!'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대부분 조합원이 직접 강사가 되어 10~15명의 어르신에게 노래·미술·체육 수업 등 자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다음 기사 <"1차의료기관 줄어드는 한국... 상급기관 적은 형태 돼야죠" https://omn.kr/2ao3u >로 이어집니다.)
월간옥이네 통권 88호(2024년 10월호)
글 한수진 사진 김혜리 한수진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 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마이크에 대고 욕한 대통령 측근... 그 배짱이 섬뜩한 이유
- '부자감세안' 믿는 구석이 있다...12월 2일 기다리는 윤 정부
- 옷을 벗고 쇠사슬 감은 할머니들... 이제 우리 차례
- "면접 전날 '박장범 유력' 소문"... 실세는 김건희가 정한다?
- 조국 "윤석열·김건희는 보수의 수치"...'탄핵' 정조준
- 수능 전날 개봉하는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 한강 열풍 속, 노무현 정부의 '창의한국' 주목하는 이유
- 기이했던 '열탕' 제주, 그걸 제일 먼저 발견한 만화가
- 노영희 "이준석, 명태균에 7~8회 여론조사 의뢰하고 돈 안 내"
- 쌀독에 묻혀있던 윤동주 시, 친구 덕에 알려진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