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잘 먹어야 잘 싸운다" 강조에도…군 급식 예산 동결한 이유 [이철재의 밀담]
“군대는 위(胃)로 행군한다(An Army Marches On Its Stomach).”
예부터 군대에서 내려온 격언이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한 말로 알려졌으나, 나중엔 프랑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발언으로 소개됐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저렇게 말한 적 없다. 러시아 원정 때 그의 군대는 거의 굶어 죽을 뻔했다. 전술에선 천재였지만, 최소 그는 보급엔 젬병이었다. 하지만 ‘잘 먹어야 잘 싸운다’는 원리는 동서고금 모두에 들어맞는 진리다. 21세기 현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월 17일 육군 제15 보병사단을 방문하면서 “잘 먹어야 훈련도 잘하고 전투력도 생긴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서면 브리핑에서 “격오지 부대들에 전투식량과 통조림을 충분히 보급하라”는 대통령의 업무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도 ‘잘 먹어야 잘 싸운다’는 데 공감한 셈이다.
그런데도 지난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선 군 급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야당은 군 급식 예산이 줄었다면서 정부를 공격했다.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이 지난 추석 당시 군부대를 방문해 전투식량을 충분히 보급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그러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살펴보니 추가로 담겨야 하는 예산은 많은데 정부 예산안에는 턱없이 부족한 관련 예산만 담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군을 잘 먹이기 위해서는 기본 급식비 단가를 인상하더라도 2200억원이 추가로 들어가게 하고, 민간 위탁 급식 사업 보조비는 300억, 간부 훈련 급식비 예산도 700억원 정도 늘려야 하며, 여기에 민간 조리원 수당까지 21억원이 더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내년도 간부 훈련 급식비조차 700억원이 아니라, 114억원밖에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대통령 지시도 기재부가 무시하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에서도 이 같은 위기감을 갖고 있으며 정부안에는 반영되지 못했지만, 국회 심의과정에선 추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다른 야당 의원들도 군 급식 예산을 문제로 삼았다. 같은 당의 박찬대 의원에 따르면 2025년도 국방 예산안에서 ▶전투식량 ▶특전식량 ▶구명식량 등 특수식량의 예산 증액이 당초 506억원에서 267억으로 줄어들었다.
급식 기본 단가 3년째 맴돌 수도
국방부는 2025년 군 급식 예산으로 2조 2900억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안에는 3600억원이 깎인 1조 9300억원이 반영됐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삭감 내용을 살펴보니 기본 급식비 단가는 4년째 1인당 1만 3000원(한 끼 4333원)으로 맴돈다. 국방부안에는 1만 5000원이었다. 물자 호송 등 영외 활동을 하는 병사들의 매식비도 단가 7000원으로 동결된다.
지역상생 장병특식은 기존 연 14회(1인당 1만 3000원)에서 4회로 줄어든다. 증식(간식)비 단가는 4000원에서 3000원으로 내렸다. 국군의날ㆍ설날ㆍ추석에 나오던 단가 3000원의 경축일 특식(간식) 예산은 내년부터 아예 없애기로 했다.
기본 급식비는 2021년 8790원에서 2022년 전반기 1만 1000원, 후반기 1만 3000원으로 올랐다. 정부 예산안이 확정되면 2022년~2025년 4년 동안 제자리가 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단가 100원을 인상하려면 예산 110억원이 필요하다.
증식은 건빵이나 컵라면 등을 사 먹는 급식이다. 지역상생 장병특식은 부대 근처 업체를 통해서 외식ㆍ케이터링ㆍ배달ㆍ푸드트럭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하는 급식이다. 지역상생 장병특식은 모두들 좋아한다.
장병은 ‘사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인기다. 인구절벽ㆍ병력감축→군구조 개편으로 일부 부대가 해체ㆍ이전한 뒤 경제가 어려워진 지역에선 지역상생 장병특식을 반긴다. 그리고 조리병도 지역상생 장병특식이 고맙다. 이때 제대로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육군의 경우 자율운용 부식이라고 해서 대대별로 급식비를 더 얹어준다. 먹고는 싶은데 예산이 모자라 군침만 흘리지 말라고 해서 마련한 예산이다.
‘짬밥’의 이유 있는 변신
사실 요즘 군대 급식은 괜찮다. 과거 군대 식사를 낮춰 부르는 ‘짬밥’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 4월 24일 백령도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제6 여단의 식단을 살펴보자.
아침: 밥, 배추김치, 두부 맑은국, 맛김, 떡갈비 구이, 햄감자볶음
점심: 현미밥, 배추김치, 참치김치찌개, 싸 먹는 훈제오리, 부추겉절이
저녁: 밥, 배추김치, 쇠고기 육개장, 돼지 불고기, 간장 깻잎지 무침
4월 한 달 치 식단의 매끼 고기반찬은 꼭 들어 있었다. 조리병의 솜씨가 좌우하겠지만, 수저가 절로 가는 메뉴들이다. 당시 해병대 장병이 아침을 먹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는데, 다들 맛있어했다.
주말과 휴일엔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는 브런치 데이다. 같은 주인 4월 26, 27일 브런치엔 피자스틱, 크림스파게티, 게맛샐러드, 오이피클, 샐러드가 나왔다.
해병대는 영양을 생각해 다양한 식단으로 짰는데, 선호도 조사를 벌여 장병 의사도 반영했다고 한다.
부실한 군 급식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군 당국이 신경을 쓴 덕분이다. 군 관계자는 “특히 202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격리 장병에게 준 형편 없는 급식 사진이 소셜미디어(SNS)로 퍼진 뒤 많이 좋아졌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바닷가재 꼬리와 마라탕이 나오며, 후식으로 과일·탄산음료·우유 등이 곁들어진다.
“급식 연인원 줄어 예산 조정”
그런데도 야당의 공격처럼 윤 대통령의 영이 안 서는 것일까. 이에 대해 예산을 다루는 기획재정부는 할 말이 많다,
세수는 줄고 쓸 곳은 많은 데도, 2025년 예산안은 2024년 예산보다 3.2%만 증가했다. 전반적으로 긴축개정을 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산 당국은 나름 씀씀이를 조정하고 순위를 매겨야만 한다. 그리고 군 급식 예산을 바로 올려야 하는지,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예산 당국이 따져봤다고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장병 급식 단가는 정부 내에서 최고 높은 수준”이라며 “최근 여러 해 48% 올랐을 정도로 증액 속도도 가파르다. 급식 질이 높아졌는데 잔반도 많이 나와서 비효율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경찰학교의 급식단가는 1만 2200원이다. 그리고 일부 장병은 급식이 마음에 안 들 경우 PX에서 라면이나 냉동식품으로 때운다. 그래서 음식물쓰레기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 현재 급식을 걸러도 규정 위반이 아니다.
기재부에 따르면 기본 부식비가 오르지 않아도 급식의 질이 나빠지지 않는다. 병력이 감축하면서 급식 연인원도 올해 1억 419만명에서 내년 1억 340만 8000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급식 총예산 조정(올해 1조 3545억원→내년 1조 3309억원)도 그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증식과 특식도 예전처럼 필요성이 덜하다. 부대 차원에서 간식을 따로 챙겨주지 않아도 병사 월급이 올라서 마음대로 PX에서 주전부리를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 고기 반찬 줄여야 할 지도
기재부의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여럿 있다.
우선 외식비와 식자재비가 부쩍 올랐다. 2022년보다 농·축산물은 최소 15%, 가공식품은 19% 각각 값이 뛰었다. 기본 급식비가 그대로면 장병이 선호하는 메뉴인 육류를 줄여야 한다.
육류도 국내산보다는 수입산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소갈비나 삼겹살의 경우 수입산의 값은 국내산의 60% 수준이다. 현재 국내 농·축·수산가를 보호하려고 군 급식은 국내산만을 써서 만든다.
최근 음식쓰레기 처리 비용이 늘어난 원인은 장병이 메뉴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버려서만은 아니다. 배출량 증가(2018년 9.8만t→지난해 11만 3000t)보다는 처리 비용 인상(2018년 103억원→지난해 195억원)이 더 크다. 음식물쓰레기 처리비는 2018년 1t당 10만5000원에서 지난해 17만3000원으로 급등했다.
예산 당국이 도와줘 기껏 장병 급식의 질을 확 높여 놨는데, 그 기반이 흔들릴 수 있게 됐다는 게 국방부의 우려 사항이다. 선호하는 메뉴가 줄면 자칫 장병이 급식을 덜 찾거나 조금만 먹고 버려 음식물쓰레기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병력 줄어도 군 급식에 더 투자해야
다행히 2025년도 정부 예산안 중 군 급식 예산을 놓고 국방부와 예산 당국이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앞으로 병력이 줄어도 군 급식에 예산을 더 투자해야 할지도 모른다. 전투부대에 병력을 몰아주면 조리병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민간 조리원을 더 뽑거나 민간 업체에 급식을 위탁하고, 농·축·수산물을 직접 조리하지 않고 가정간편식(HMR)으로 대신해야만 한다. 더 많은 예산을 들어가는 사업들이다.
더군다나 국방부는 현재 군 급식을 원하는 만큼 덜어가 먹는 자율배식에서 원하는 메뉴만 가져 먹는 뷔페로 바꾸려고 한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급식이 뷔페로 운영되는데 만족도가 높고(5점 만점 4.07점), 음식물쓰레기는 30% 줄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집밥이다. 국방부는 ‘짬밥’을 집밥과 같이 건강하고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이는 ‘소리 없는 아우성’만큼 모순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잘 먹어야 잘 싸운다’는데, 정부가 이를 소홀히 할 순 없을 것이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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