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전, 한글로 찍힌 '가갸날' 첫 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올해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다 보니 각종 행사가 기획되고 있다.
그래서 올해 2026년은 한글날이 제정된 지 꼭 100돌이 되는 해다.
이 '가갸날'이 1928년 '한글날'로 바뀌면서 '한글'이라는 이름도 비로소 온 겨레의 이름이 되었다.
문해력이 다시 시대의 화두가 된 지금, 100년 전 5면의 짧은 기사는 한글날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 준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슬옹 기자]
|
|
| ▲ 한글날(가갸날) 첫 보도 기사문 지면(1926년 11월 4일) @ 한글의 새로운빗 오늘이「가갸날」, <동아일보> 11월 4일 5면. |
| ⓒ 동아일보 |
필자가 한글학자로서 늘 간직하고 있는 신문이 있다. 실제 신문을 본 적은 없지만, <동아일보>에서 제공한 pdf 파일로 열어볼 때마다 먹먹해진다. 지면 위쪽에 "大正十五年十一月四日(木曜日) 第二千二百四十號"라 찍혀 있다. 대정 15년 일제 강점기 일본 연호, 1926년 11월 4일 목요일, 음력으로는 9월 29일이다.
이날은 한글 역사에서 특별한 날이다.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가 훈민정음 반포 여덟 회갑(480년)을 기려 처음으로 '가갸날' 기념식을 연 날이고, 그 소식을 신문이 처음으로 크게 알린 날이다. 오늘날 한글날은 바로 이 '가갸날'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올해 2026년은 한글날이 제정된 지 꼭 100돌이 되는 해다.
기사는 5면 한복판 위쪽에 실렸다. 굵은 붓글씨 같은 활자로 "한글의 새로운빗 오늘이 가갸날'"이라 뽑고, 그 옆에 "우리글을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 영원히 이날을 긔념하자"라는 작은 제목을 붙였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기사 오른쪽에 함께 실은 사진이다. "世세宗종御어製제訓훈民민正정音음 … 國국之지語어音음"으로 시작하는 훈민정음 언해본 첫 장이다.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원문 표기 그대로, 띄어쓰기만 오늘 기준으로 함).
한글의 새로운빗 오늘이「가갸날」
― 우리글을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 영원히 이날을 긔념하자 ―
◇ 긔념 강연은 엿셋날 ◇
◇…… 금사일은 음력 구월 이십구일로 이날은 지금으로부터 사백팔십년 전인 세종(世宗) 이십구년에 세계에 자랑될 만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처음 제뎡 발표한 귀엽고 아름다운 날이라 하야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 신민사(新民社) 주최로 훈민정음 뎨팔갑 긔념(訓民正音第八甲紀念)으로 동일 오후 여섯시부터 시내 식도원(食道園)에서 긔념 축하회를 개최하는 동시에
◇…… 륙일 오후 일곱시부터 시내 중앙긔독교청년회관 안에서 사계에 권위 여러 가지의 강연 등으로 종래 한문(漢文)에 눌려 언문(諺文)이라고까지 멸시를 받고 학대를 받든 조선어에 대한 옹호 사상을 고취식히는 동시에
◇…… 농촌의 문맹타파(文盲打破)를 목뎍으로「가갸」문 강습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하야 귀중한 훈민정음의 부활을 꾀하리라는데 이날(음력 구월 이십구일)은 영원히「가갸날」로 뎡하야 긔념케 하리라더라
― <동아일보> 1926년 11월 4일(목) 5면
짧은 기사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
첫째, '한글'과 '가갸날'이라는 두 이름이 한 기사 안에 나란히 있다. 제목은 '한글'이라 하고, 본문과 기념일 이름은 '가갸날'이라 했다. '한글'은 주시경이 1910년대에 지어 쓴 이름이지만 1926년 무렵 아직 대중에게 낯설었다. 반면 '가갸거겨'로 글자를 익히던 사람들에게 '가갸'는 우리 글자를 가리키는 가장 친숙한 이름이었다. 신문은 학자들의 새 이름을 제목에 앞세우면서도 기념일 이름은 대중의 말로 붙인 것이다. 이 '가갸날'이 1928년 '한글날'로 바뀌면서 '한글'이라는 이름도 비로소 온 겨레의 이름이 되었다.
둘째, 기념의 날짜 셈법이다. 기사는 "세종 이십구년", "사백팔십년 전"이라 했다. 오늘 우리는 1446년을 세종 28년이라 하지만, 당시에는 즉위한 해를 원년으로 세는 셈법이 널리 쓰였으므로 29년이라 한 것이다. 날짜를 음력 9월 29일로 잡은 까닭은 <세종실록> 1446년 9월 조에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是月訓民正音成)"라고 되어 있어 그달 그믐날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세상에 나와 정인지 서문의 '9월 상순(九月上澣)'이 확인되면서 오늘의 10월 9일로 옮겨 잡게 된다. 이 기사는 그 긴 확정 과정의 첫 장면이다.
셋째, 기사가 밝힌 기념의 뜻이다. "한문에 눌려 언문이라고까지 멸시를 받고 학대를 받든 조선어"라는 대목은 훈민정음 창제 480년의 역사를 한 줄로 요약한다. 그리고 그 옹호를 말로만 하지 않고 "농촌의 문맹타파"를 위한 '가갸'문 강습회로 이어 가겠다고 했다. '언문' 명칭은 본래 비칭이 아니었지만 양반 지식인들이 깔보다 비칭이 되었다(김슬옹, <한글교양> 참조). 기념식은 식도원에서, 강연은 중앙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강습은 농촌에서. 한글날은 처음부터 '기리는 날'이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날'이었다.
넷째, 지면 그 자체다. 이 5면의 면 제호는 한자가 아니라 한글 '동아일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네모반듯하게 도안한 한글 네 글자가 지면 머리에 놓여 있다. 1면 제호는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한자 '東亞日報'이지만, 속 지면 머리에는 이렇게 한글 제호를 새겨 놓았던 것이다. 우리 글자를 처음 기념하는 날의 기사가 한글 제호 아래, 훈민정음 언해본 사진과 함께 실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다. 나라 잃은 시절, 신문은 이 지면 하나로 "우리에게는 우리 글자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동아일보가 21세기에 한자 제호를 고집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날은 영원히 가갸날로 정하여 기념케 하리라더라"이다. 100년 전 기자가 받아 적은 그 약속은 지켜졌다. 이름은 가갸날에서 한글날로, 날짜는 음력 9월 29일에서 양력 10월 9일로 바뀌었지만, '영원히 기념하자'던 뜻은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여전히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 이 기사가 기념보다 앞에 놓았던 일, 곧 우리 글자로 온 겨레가 읽고 쓰게 하는 일이다. 문해력이 다시 시대의 화두가 된 지금, 100년 전 5면의 짧은 기사는 한글날을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 준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 기술로 중국만 좋은 일... 산림청의 이상한 재선충 실험
- 100분 만에 동 난 서울시 안심벨, 정말 안심할 수 있을까
- 파병해도, 거부해도, 절충해도 문제라면 이렇게
- '우리 방송에 왜 장관들 안 나오냐'...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
- [단독] 구글 불법촬영 피해자 신상 유출, 과거에도 유사 피해 있었다
- 김민석, '진짜 레드팀' 할 수 있을까
- '매달 200' 격려금? 최고 사법기관서 벌어진 부끄러운 일
- 관광객 늘었는데, 그들이 단양에서 한 일은 달라졌다
- "전광훈, 이단성 지녔다" 예장통합 이대위 결론
- 김도영 40홈런 폭발... 타이거즈 역사 새로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