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피해자인데 목에 밧줄 감았다, 비정규직이라서"
[김성욱, 이희훈 기자]
▲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 |
ⓒ 이희훈 |
"현대·기아차는 20년 동안 1만 5000명 하청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사용했다. 법원이 최종 인정했다. 그런데 여태 정몽구·정의선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불법을 바로 잡으라고 요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속되고 해고됐다. 이 끔찍한 상황이 바뀌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파업하면, 하청은 권한이 없다고 불법이라 한다. 수천억 손배를 맞고 월급까지 가압류 당한다. 세상이 어떻게 이런가." – 김수억 전 기아차 비정규직노조 지회장
지난 달 27일, 대법원은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430명(현대 159명·기아 271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회사의 불법 파견을 인정했다.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최종 판결한 것이다. 하청 노동자들이 소송을 낸 지 무려 12년 만이었다. 자동차 공장 내 컨베이어벨트 라인이 아닌 범퍼 제작·생산 관리·출고·포장 등 '간접 공정'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불법 파견이 인정된 건 이번이 최초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 파견 문제는 18년 전 처음 불거졌다. 고용노동부는 2004~2005년에 걸쳐 현대·기아차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불법 파견했다고 판정했다. 2010년, 현대차의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그런데도 현대·기아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온전히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특별 채용'을 내밀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등 향후 법적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강요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체불 임금마저 포기시켰다. 근속 연수도 일부만 인정했다. 수십 년 일하던 공장이 아닌, 업무가 다르고 노동 강도가 높아 기피하는 공장으로 전보시켰다.
김수억(47) 전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18년 8월, 사측이 특별 채용에 응하지 않는 하청 노동자들을 강제로 다른 공정으로 전보시키려 했다. 노조는 경기도 화성 플라스틱 공장을 점거했다. 사측은 압도적인 숫자의 힘으로 하청 노동자들을 하나하나 끌어냈다. 대오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김 전 지회장이 10미터 높이 난간에 올랐다. 난간에 연결한 밧줄을 목에 감은 뒤 폭력을 멈추지 않으면 이대로 뛰어 내리겠다고 했다. 파업은 8일간 이어졌다.
이 일로 회사는 김 전 지회장 등 7명 노동자들에게 10억 여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 6월, 법원은 1심에서 김 전 지회장 등에게 1억 7000만원 손해 배상을 판결했다. 김 전 지회장은 여전히 사측의 정규직 특별 채용이 부당하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로 남아있다. 김 전 지회장처럼 특별 채용을 거부하고 남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1000여 명, 사측의 요구를 수용하고 정규직으로 넘어간 인원은 1850여 명이다. 현재 기아차 전체 정규직은 3만 여명이다.
▲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 |
ⓒ 이희훈 |
2005년 비정규직 노조 설립 이후 지금까지 김 전 지회장은 총 두 번(2005년, 2009~2011년) 구속됐고 한 번(2010~2015년) 해고됐다. 사유는 모두 '불법' 파업이었다. 현행 노조법 하에서는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하면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2005년·2007년 파업 이후 회사로부터 각각 2000억 원대 손배가 청구됐지만, 추후 노사 합의로 철회됐다. 2007년 당시엔 김 전 지회장 임금이 가압류되기도 했다.
김 전 지회장은 "비정규직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노조인데 오늘날 대한민국 비정규직은 구속과 해고, 손배, 가압류로 가정이 파탄 날 것을 각오하지 않고선 노조를 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제정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법 2조를 바꿔 비정규직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노조법 3조를 바꿔 무분별한 손배 청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지회장은 2018년 불법 파견 문제를 해결하라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청와대 앞, 대검찰청 등에서 농성과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지난 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상태다. 오는 24일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선 불법을 바로 잡으라는 당연한 요구를 한 김 전 지회장이 세 번째로 구속될 수 있는 상황이다. 17일 서울 영등포에서 그를 만났다.
"불법 파견 대법 판결에도 요지부동인 현대·기아차"
- 지난 10월 27일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승소했다.
"너무 늦었다. 2017년 2월에 2심 판결이 났는데 거의 6년 만에야 대법원 판결이 났다. 정부가 처음 현대·기아차 불법 파견을 지적한 지 18년 만이다. 그렇게 지체된 시간 동안 해고 등으로 고초를 겪은 현대차 울산의 류기혁, 현대차 아산의 박정식, 기아차 화성의 윤주형 열사가 자결했다. 수백 명이 해고됐고 수십 명이 감옥에 갔다. 판결의 기쁨보단 고통과 아픔의 세월이 더 먼저 떠올랐다.
이번 대법 판결은 1차 소송의 결과다. 1차 소송에 참가한 기아차 비정규직 271명 중 170여 명이나 이젠 정년이 지나 정규직 전환 판결 적용을 못 받는다. 이게 말이 되나. 아직도 기아차 비정규직 400여 명이 낸 2~5차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법원에 계류 중이다. 저도 2차 소송에 포함돼있다."
- 대법 판결 이후 20일 넘게 지났다. 정규직 전환 절차가 이뤄지고 있나.
"전혀 진전이 없다. 기본적으로 현대·기아차는 대법원 판결 승소자들에 한해서만 정규직 채용을 한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 쓰는 게 불법'이라는 데도 소송에서 이긴 비정규직만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불법이어도, 어떻게든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진 최대한 싸게 비정규직으로 뽑아먹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현대차에선 승소자들에게 기존 근속 연수를 인정하지 않고 '신입'으로 채용하는 형식의 근로계약서를 들이밀고 있다. 10년, 20년 일한 노동자들에게 말이다. 기아차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 자체가 없다. 현대·기아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아닌가. 대법에서까지 불법 파견 범죄로 결론이 나왔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소송했든 아니든 비정규직 고용을 없애겠다고 사죄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말이 안 나온다."
▲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며 청와대 앞 시위를 펼쳐 체포된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지회장의 영장실질 심사를 앞둔 2019년 1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삼거리에서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부당 영장청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 이희훈 |
- 불법 파견을 시정하라고 2018년에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대검찰청, 청와대 앞, 국회 앞 등에서 점거·시위를 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는 이유로 지난 2월, 징역 1년 6개월 실형이 선고됐다.
"실형이 선고됐음에도 구속은 되지 않았다. 이례적인 일이다. 왜일까? 사법부도 조금은 무안했던 걸까. 선고도 선고였지만, 앞서 검찰 구형이 더 기가 막혔다. 무려 5년 6개월이었다. 다들 깜짝 놀랐다. 기물을 파손한 것도 아니었고 폭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불법 파견 나왔는데 왜 가만 놔두냐'고 시위하고 농성한 걸 가지고 징역 5년 6개월을 때렸다. 이건 비정규직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반대로 묻고 싶다. 비정규직은 꼬박꼬박 조사하고 기소하고 징역형 때리면서, 애초에 불법을 저지른 현대·기아차에 대해선 어떤 책임을 물었나? 불법 파견 시정하라고 외친 내가 5년 6개월인데, 그 불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본 정몽구, 정의선은 어떻게 됐나? 검찰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정부와 사법부는 불법 파견을 방치하고 묵인했다. 국회의원들도 이 불법 상태에 대해선 따지지 않는다. 언론도 재벌의 불법 상태에 대해선 질문하지 않는다. 오로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이 목숨 걸고 단식하고 농성하고 나서야 겨우 2019년에 기아차 사장이 처음 기소됐다. 정부 불법 파견 판정 15년 만에. 그런데 그 재판은 딱 한 번 열리고, 아직도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범죄자와 피해자가 뒤바뀌었다. 법원 판결 나온 대로만 봐도, 비정규직이 불법 파견의 피해자다. 회사가 20년 동안 불법으로 비정규직 갖다 쓰는 동안 받은 차별이, 제대로 못 받은 임금이 대체 얼마인가. 범죄자는 회사다. 그런데 지난 20년 불법 파견 역사를 통틀어 회사 쪽에서 처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00명 비정규직을 불법 파견한 아사히글라스에 대해 일본인 대표이사가 지난해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이가 없다."
"왜 우리가 목에 밧줄을 감아야 하나"
- 2018년 8월 불법 파견을 시정하라며 경기도 화성 플라스틱 공장을 8일간 점거했다. 당시 10미터 높이 난간에 올라 밧줄을 목에 감기도 했다.
"당시 이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2심까지 승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으로 채용돼도 모자랄 판이었는데 회사는 그곳에서 10년, 20년 일한 비정규직들을 다른 곳으로 쫓아내려 했다. 비정규직이 10년 넘게 어렵게 투쟁해서 기껏 노동 환경 좋게 만들어놨더니, 또다시 더 힘든 곳으로 강제 전적시켜 버리고 그 자리에 정규직들을 앉히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기아차 원청은 관리자들과 구사대를 동원해 비정규직들의 공장 출입을 물리력으로 막았다. 뚫고 들어 가려 하자 숫자가 상대가 안 됐다. 폭력이 난무했고 척추가 다쳐 전치 10주를 받은 동지도 있었다. 조합원들이 눈 앞에서 두드려 맞고 끌려 나가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목에 밧줄을 감은 뒤 투신하겠다고 했더니 겨우 멈췄고 대치가 이어졌다. 절박한 상황이었다."
- 이후 공장 점거에 대해 회사가 10억 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 6월 1심에서 1억 7000만원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다.
"분노스럽다. 나중에 힘겹게 노사 합의로 철회되긴 했지만, 2005년 파업 때도 2000억 원, 2007년 파업 때도 2000억 원의 손배가 청구됐었다. 실제 손해를 보상하라는 취지가 아니라 노조를 무력화하고 파괴하는 수단인 것이다. 2007년 손배 땐 제 임금까지 가압류됐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가 자결했을 땐 월급을 단 1원도 남기지 않고 다 가압류해 갔었다. 그 이후 그나마 최저 생계비까지는 월급 가압류를 하지 못하도록 바뀌었다."
▲ 김수억 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 지회장 |
ⓒ 이희훈 |
- 2005년 기아차 비정규직 노조를 만든 계기는 뭐였나.
"지금도 비정규직 차별이 심각하지만 그땐 더 했다. 말 그대로 파리 목숨이었다. 젊은 정규직 관리자들이 50대, 60대 비정규직에게 반말과 욕설은 기본이었다. 근로기준법은 전혀 안 지켜졌다. 연차·월차 사용이 해고 사유라고 했다. 여름엔 선풍기 하나 없이, 겨울엔 난로 하나 없이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다. 하도 추워서 박스를 깔고 앉으면 그것도 더럽다고 치우라고 했다. 건너편 정규직들은 냉난방 잘 돼있고 깨끗한 실내에서 휴식을 취했다.
노조가 있어야 했다. 회사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게 뭘까. 노조다. 노조는 기업에 견주어 절대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 중에서도 더 열악한 비정규직에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불법 파견이라고 수없이 결론이 나도 기업이 20년간 이토록 비상식적으로 비정규직에 집착하는 이유도, 결국 노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노조를 못 하니까.
현재 노조법 상으로는 비정규직이 원청과 교섭할 수 없고, 그러니 비정규직은 불법 파업, 구속, 해고, 손배, 가압류를 각오하지 않고선 노조할 엄두도 못 내니까. 그 결과 대한민국 노조 가입률이 14% 밖에 안 되는 와중에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은 3% 수준에 그쳐있다.
기업이 이토록 사활을 건다는 건 그만큼 1100만 비정규직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거다. 언제든 손쉽게 해고할 수 있다. 외주화와 하청업체 도급이 일상화된 요즘은 정리 해고도 없지 않나. 그냥 계약해지 시키면 끝난다. 임금도 절반만 주면 된다. 천문학적 비용이 절감된다. 올해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가 월 160만원으로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대로 벌어졌다(2022년 8월 기준, 비정규직 평균 월급 188만원 – 정규직 평균 월급 348만원). 실제 기아차 측은 현장에서 대놓고 '특별 채용으로 최소 5000억 원은 이득 봤다'고 하고 다녔다."
- 올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슈가 되면서 노란봉투법 제정 요구가 올라왔다.
"노란봉투법은 비정규직도 노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노조법 2조 개정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대우조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파업하면서 말한 게 뭐였나. '이대로 살 순 없다' 였다. 만약 20년 먼저 터진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불법 파견 문제를 한국 사회가 제대로 바로잡았더라면, 올해 대우조선 비정규직들이 이렇게 힘들었을까 싶다. 그런데도 대우조선이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들에게 470억 손배를 때린 건 결국 밟아 죽이겠다는 거다.
246억 손배를 받은 현대제철 비정규직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판박이 아닌가. 불법 파견 판정 나왔는데도 회사가 법대로 이행하지 않아 파업했더니 그걸 갖고 수백억 손배를 때렸다. 똑같이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취하를 강요했다. 하는 짓이 우리 때보다 더 악랄해진 건, 회사가 직접 고용하는 대신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에서 발명한 '자회사' 채용 꼼수를 차용했다는 거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까지 밀려나야 하나.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무엇보다 상식과 정의를 앞세우고 있다. 불법 파견이 인정된 재벌 사업장에 여전히 비정규직들이 넘쳐나는 이 불법 상태는 상식인가? 정의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노조법 개정해야 한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치권에 기대를 걸지 않겠다. 이미 역사가 증명한다. 직접 나설 것이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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