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강제실종 전문가, “강제실종 근절 위한 한국의 적극적 역할 호소”

윤지원 2026. 5. 1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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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라 치트로니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 의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로 신라스테이 로비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강제실종 문제를 다루는 유엔의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가 12·3 비상계엄 때 발생한 불법 체포·구금 시도 의혹에 대해 “만약 사람을 임의로 연행해 법의 테두리 밖에 뒀다면 이는 국제 인권 사회가 엄중하게 보는 ‘단기 강제실종’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방한 중인 가브리엘라 치트로니 유엔 강제실종실무그룹(WGEID) 의장은 19일 중앙일보와 만나 “실무그룹은 현재 진행 중인 강제실종을 다루기 때문에 해당 사안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조사하기 어렵다”면서도 “국제법상 성립 요건에 부합한다면 단기 강제실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치트로니 의장이 제시한 강제실종의 성립 요건은 ▶본인 의사에 반한 자유 박탈 ▶국가 기관의 직·간접적 개입 ▶이후 행방 은폐 등 세 가지다.

WGEID는 가족들이 강제실종된 사람의 생사 및 소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인도적 임무에 따라 강제실종을 조사·기록하는 유엔 특별절차다. 국제법상 강제실종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설립 근거인 로마 규정상 ‘반인도범죄’에 해당한다. ICC 소추 대상이라는 뜻이다.

앞서 민변 등 37개 시민단체는 지난해 12월 유엔 강제실종위원회(CED)에 공동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당시 군·경이 공조해 여야 정치인 등 14명을 연행하려 했던 ‘체포조 운영 및 구금 시도’ 의혹을 강제실종 범죄로 규정하며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가브리엘라 치트로니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 의장이 지난 18일 경북 포항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박필근 할머니를 만났다.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제공

치트로니 의장은 방한 첫날인 지난 18일 경북 포항부터 찾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박필근 할머니를 면담했다. 전시 강제연행을 수반한 조직적 인권침해 사안인 위안부 문제는 실무그룹의 조사 대상이다. 시트로니 의장은 19일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위안부 배상 문제가 부각되지 않는 점을 겨냥해 “원론적일지라도 정부는 그 어떤 고려보다 피해자의 권리 회복을 최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12·3 비상계엄 당시 불법 구금 시도가 있었다. 국제 인권 사회는 이를 어떻게 보나.
A : 우리 실무그룹에 사건이 공식 접수되지는 않아 사실관계는 알지 못한다. 다만 원론적으로 말해 강제실종이 성립하는 데는 ‘시간적 기준’이 없다. 경찰이나 군대가 개입해 사람을 연행한 뒤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잠깐이라도 방치하고 가족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는 ‘단기 강제실종’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Q : 전날 포항에서 이용수·박필근 할머니를 직접 만났는데.
A : 두 분 모두 엄청난 영감을 주셨지만 연세가 98세이시다. 직접 마주하고 당사자의 증언을 듣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게감을 준다. 시간의 흐름이 주는 무게와 압박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이 문제는 미루지 말고 바로 해결돼야 한다.

Q : 외교적 이익과 위안부 피해자 권리가 충돌할 때 한·일 양국 정부가 우선에 둘 원칙은 무엇인가.
A : 국가 간의 외교적 교류 역시 이미 확립된 국제적 약속과 의무라는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과거의 중대한 인권 침해나 조직적 위반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배상받을 권리가 최우선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이행 방식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권리 자체는 반드시 지체 없이 충족돼야 한다. 국가가 마련하는 모든 대응책의 중심엔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Q : 한국 정부의 과거사 진상규명 노력은 어떻게 평가하나.
A : 진실화해위원회가 설립돼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다만 강제실종은 본질적으로 ‘진행 중인 범죄(ongoing crime)’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리 오래전에 시작됐어도 국가의 의무는 현재 진행형이다. 단순히 시간이 지났다고 페이지를 덮을 순 없다. 제대로 해결된 후에야 비로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가브리엘라 치트로니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 의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대문로 신라스테이 로비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치트로니 의장의 이번 방한에서 핵심 의제는 북한에 10년 넘게 장기 억류 중인 한국인 선교사 문제다. 그는 21일 오후 2시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열리는 ‘북한에 억류된 세 선교사를 무사히 집으로’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13~2014년 북한에 억류된 이후 현재까지 생사조차 불분명한 김정욱·김국기·최춘길씨 등 총 3명의 선교사 납북에 관해 실무그룹은 지난해 3월 이를 강제실종 사건으로 규정하고 북한 당국에 지속적으로 생사 확인을 요구해왔다. 시트로니 의장은 방한 기간 동안 납북자 가족 및 시민사회, 정부 당국자들과 비공개 면담을 한 뒤 23일 출국한다.

Q : 현 정부의 대북 기조상 억류 선교사 문제를 키우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A :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정부의 몫이지만, 그 조치와 무관하게 피해자의 권리는 변함없이 유효하다. 가족이 만족할 만한 생사 확인이 이뤄질 때까지 실무그룹 차원에서 계속 관여할 것이다.

Q : 한국 정부가 지난 2023년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에 가입하고, 국내 이행법률인 강제실종범죄 처벌법 제정을 추진 중인 점은 어떻게 보나.
A : 이는 국제 인권 사회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환영할 만한 조치다. 한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보편적 인권 규범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입증한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이행 법안이 형식에 그치지 않고, 한국 상황의 특수성을 반영해 피해자 구제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실무적 법이 신속히 제정되길 바란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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