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년대 후반은 그야말로 ‘김희선의 시대’였다. <목욕탕집 남자들>, <프로포즈>, <미스터Q>, <토마토> 등 이름만 들어도 화제를 몰고 다니는 드라마마다 출연하며 시청률 35~55%를 연이어 기록했다.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 유행 제조기, 패션 리더, 그리고 ‘김희선 신드롬’이라는 단어까지 탄생시켰던 시기. 심지어 1998년과 99년, 2년 연속으로 추석 특집 ‘김희선쇼’가 방송돼 30%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그녀는 전무후무한 ‘국민 배우’였다. 하지만 정점에 있던 2000년대 초반, 김희선은 스케줄을 포함한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몇 드라마 제안을 고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놓친 작품들은 이후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를 새로 썼고, 대신 그 배역을 맡은 배우는 흥행 신화 속에 주연급 스타로 성장했다. 김희선의 다른 선택으로 인생을 바꾼 이 배우의 세 작품을 소개한다.
가을동화 (2000)
"멜로의 새 역사, 송혜교의 시대를 열다"

<프로포즈>와 <웨딩드레스>로 김희선과 손발을 맞췄던 윤석호 PD는 차기작 <가을동화>의 ‘은서’ 역을 가장 먼저 김희선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김희선은 영화 <비천무>를 선택했고, 결국 드라마 출연 제안을 거절했다.

후발주자로 투입된 배우는 바로 송혜교였다. <순풍 산부인과>의 ‘오혜교’ 이미지로 코믹한 캐릭터에 머물렀던 그녀는 <가을동화>를 통해 완전히 다른 얼굴을 선보였다. 순수하고도 비극적인 ‘은서’는 단숨에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42%를 돌파하며 ‘가을동화 신드롬’을 낳았다.

반면 김희선이 선택한 <비천무>는 전국 21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연기적인 면에서 아쉬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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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2001)
"김희선을 위한 드라마였는데…"

이희명 작가가 집필한 <수호천사>는 애초부터 김희선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었다. 두 사람은 <미스터 Q>, <토마토>를 함께하며 ‘시청률 보증 조합’으로 불렸다. 그러나 영화 <와니와 준하> 촬영 일정이 겹치면서 김희선은 또다시 드라마 출연을 고사했다.

결국 ‘정다소’ 역은 다시 송혜교에게 돌아갔고, <가을동화>에 이어 두 번째로 김희선의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결과는 또 한 번의 대박이었다. 평균 시청률 31%, 최고 40%를 넘기며 SBS의 효자 드라마로 자리 잡은 것.

당시 시청자들은 “김희선이 거절한 작품마다 송혜교가 스타가 된다”며 두 배우를 ‘운명적으로 엮인 평행선’이라 불렀다. 김희선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졌던 그 시기, 송혜교는 매번 그 공백을 메우며 세대교체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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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 (2003)
"세 번째 엇갈림, 송혜교의 정점"

김희선은 <올인>의 여주인공 민수연 역 제안을 받았지만, 이번에도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택했다.

그 결과, <가을동화>와 <수호천사>에 이어 세 번째로 김희선의 대타로 송혜교가 캐스팅된다. <올인>은 이병헌과 송혜교의 폭발적인 케미로 최고 시청률 47%를 기록하며 2003년 SBS 연기대상을 휩쓸었다. 송혜교는 최우수연기상, 이병헌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반면 김희선이 선택한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반면 김희선은 이후 이희명 작가의 차기작 <요조숙녀>로 브라운관 복귀를 시도했지만, 시청률 20%를 넘기지 못하며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세 번의 ‘엇갈림’ 끝에 김희선의 전성기 한풀 꺾였고, 송혜교는 정점으로 올라섰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