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가 사수대 섰던 그 시절, 한국영화아카데미 40년 이야기
[성하훈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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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의 미래를 찍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년의 장면들> |
| ⓒ 미디어버스 출판사 |
1995년 개교한 한국예술종합학교도 초기 교수진이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이었다. 지난 10월 총장에 취임한 편장완 총장은 한국영화아카데미 12기이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촬영 아닌 영화계 요구로 설립
미디어버스 출판사에서 펴낸 <시네마의 미래를 찍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년의 장면들>은 지난 2024년 개원 40년을 맞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영화인들의 회고이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영화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초기 분위기와 이후 졸업생들이 한국영화의 중추로 자리 잡기까지 과정들을 엿보게 된다.
1기 김소영 감독·박종원 감독·유지나 교수. 2기 권칠인 감독, 3기 박기용 감독(전 영진위원장), 4기 이정향·이수정 감독, 6기 금보상 감독, 11기 봉준호·최익환 감독, 13기 민규동·김태용 감독, 23기 이숙경 감독(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등등 2018년 졸업한 35기까지 21명 졸업생에 대한 인터뷰가 담겨 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겪은 졸업생들의 깊이 있는 생각과 함께 알려지지 않았던 뒷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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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년 개원한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 입학식 사진 |
| ⓒ 한국영화아카데미 |
지금은 졸업 과정의 필수가 된 졸업영화제가 시작된 계기도 나온다. 1996년 13기로 입학한 민규동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작품은 해외영화제를 제외하고는 국내 영화제 공개가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으나, 학생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졸업영화제가 이후 당연한 문화가 됐고, 엄격한 사관학교의 정립도 다시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각목 들고 서 있으면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특히 1980~1990년대 영화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영화운동과 한국영화아카데미의 관계성, 여성영화인들의 활동상을 확인할 수 있다. 군사독재 시기 검열에 저항했던 모습은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내세울 수 있는 자랑스런 역사다.
1기 김소영 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은 초기 검열이 일상이라 학생 졸업작품까지 안기부(현 국정원) 검열을 받아야 했던 풍경을 전한다. 김소영 교수는 초기에 드물었던 아카데미의 여학생으로서 페미니스트 영화인의 시초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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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1년 입학한 한국영화아카데미 6기들이 졸업식에서 졸업작품 검열에 항의하며 상복을 입고 있다. |
| ⓒ 장기철 제공 |
당시 6기 학생들은 졸업영화 소재로 1989년 평양축전 때 방북했던 임수경 이야기인 <아리랑 고개 너머>, 학원 프락치 이야기를 다룬 <슬픈 시>, 노동활동 이야기인 <별이 되어 만나리> 등을 준비했으나 이 세 편의 영화에 대해 당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는 운동권 영화라며 제작을 가로막았다.
온갖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이들은 검열을 거부했고, 결과적으로 14명의 연출 전공 중 9명이 졸업이 아닌 수료로 처리됐다. 그럼에도 이들은 끝까지 영화를 만들어 완성해 냈다.
11기 봉준호 감독 인터뷰에는 <파업전야> 사수대로 나선 내용이 등장한다. 장산곶매와 <파업전야>에 대한 호의적 평가가 인상적이다.
"…1990년도에 장산곶매의 <파업전야>가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고 공중파의 9시 뉴스를 장식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경찰이 그 복사본을 압수하려고 대학 캠퍼스 상공에 헬기를 띄우기도 하고 학생들은 복사본을 사수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각목을 든 채 영사기 주변을 지키기도 했어요. 그런 압박감이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니까 더 감동하게 되는 거예요. 영화와 현실이 혼재했으니까요. 당시 장산곶매의 활동이 엄청났었는데, <오 !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다음에 만든 〈닫힌 교문을 열며>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등장해서 사회적인 주목도 많이 받았어요. 영화 운동을 열심히 하셨던 1기 이용배 선배님, <접속>과 <텔 미 썸딩>을 만든 장윤현 감독님, 현재 명필름 대표이신 이은 감독님이 바로 장산곶매 출신이에요."
"(사수대는)…과에서 하라고 하니까요. 각목 들고 서 있으면 영화는 공짜로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했어요. 그런데 사실 〈파업전야>는 드라마나 내러티브가 잘 구축된 영화예요. 배우들의 연기도 호소력 있고요. 홍석연 배우가 맡은 '재필'은 원래 노조에 참여하지 않았던 삐딱한 캐릭터였다가 나중에 가담하게 되는데, 경직된 사상을 지니지 않고 되게 살아있는, 인간적인 캐릭터였어요."
'상업영화 감독을 기르느냐, 예술가를 기르느냐'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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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화아카데미 2기생들의 교육 현장 |
| ⓒ 한국영화아카데미 |
한국영화아카데미를 통해 주목받은 감독들이 두 번째 영화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점에 대한 고민도 드러난다. 2007년 장편과정이 개설됐지만 첫 작품이 높은 주목을 받았음에도 두 번째 영화를 만든 감독은 거의 없다고 한다. 18기 노동석 감독은 '충무로 상업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을 길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가를 길러내는 것인가에 한국영화아카데미의 딜레마가 있다'며 '적응력의 문제와 함께 아카데미의 장편과정과 상업영화는 전혀 다른 리그'라고 평가한다.
한국영화 미래에 대한 생각들도 담겨 있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만추> <원더랜드> 등을 연출한 13기 김태용 감독은 '한국영화가 잘 될 수 있었던 지난 20년의 특이한 상황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면서 '국립영화학교가 공적자금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라면 좀 더 새로운 곳들이 나와야 하고 당장 산업에 기여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기운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한다.
<시네마의 미래를 찍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년의 장면들>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쳐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자리한 영화인들이 40년 역사를 평가하고 되돌아본다는 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았다는 것 자체가 큰 가치를 가진다. 한국영화 위기의 시대, 한국영화 중흥기를 선도했던 이들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의 시선은 역사와 산업,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그리고 한국영화가 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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