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디자인한 사람이 봐도 몰라요" 골프 붐에 '문전성시' 동대문 짝퉁 시장
"수십만 원짜리를 단돈 몇만원에" A급은 진품과 구별 어려워
골프 붐 타고 모조품 적발 1년새 4배 이상 급증하기도
[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변선진 기자] "정품이랑 봉제선까지 똑같다니까…. 이건 디자인한 사람이 와서 봐도 몰라요."
지난달 28일 오후 9시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남측 도로. 200여m 구간의 인도를 따라 노란 색상의 간이 천막 수십개가 줄지어 펼쳐졌다. 밤이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 일명 짝퉁의 성지, '새빛시장'이다. 매대 위엔 타이틀리스트부터 말본골프, PXG, 지포어(G/FORE) 등 고가 브랜드를 단 골프 의류가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물론 진품이 아닌 가품, 이른바 '짝퉁'이다.
시곗바늘이 밤 11시를 가리킬 즈음 거리가 손님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새빛시장에서 골프웨어 가품을 주로 취급하는 천막은 5곳 정도였다. 20㎡ 정도 되는 비좁은 천막 마다 수십 명의 인파가 몰릴 만큼 매장들은 북적거렸다. 중년 부부는 물론 젊은 커플 고객들의 비중도 꽤 높았다.
"정품 하나 샀으면 나머진 A급으로 맞추는 거야"
이 일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는 '타이틀리스트', 최근 인기가 많은 브랜드는 '말본골프' 의류였다.
특히 말본골프의 가을 신상품을 베낀 모조품은 여성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니트 조끼부터 맨투맨, 바람막이, 골프백, 모자까지 품목도 다양했다. 가격대는 긴팔 티셔츠 기준 6만~7만원 선이었다. 정품의 절반에도 못 미칠 만큼 저렴한 가격이다. 반팔 티셔츠는 3만5000원, 두 장을 사면 6만원으로 깎아주는 '통큰 할인'을 내거는 매장도 있었다.
한 업자는 "일상복으로 입어도 무리 없을 만큼 잘 빠졌다"며 "남녀 구분 없이 믹스매치해도 된다"는 상세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업자가 기자에게 추천한 제품은 모자가 달린 나일론 소재의 자켓. 정품 정가는 40만원이지만 단 10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했다. 구매를 주저하자 "반팔 티셔츠 한 장을 얹어 12만원에 맞춰주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천막. 매대 위에 올려놓은 의류는 단 4벌. "이게 전부냐"고 묻자 스타렉스 차량 앞에 서 있던 상인은 "최근 단속에 된통 걸린 적이 있어 다 꺼내놓고 장사하지 못한다"고 푸념했다. 기자가 휴대폰에서 타이틀리스트 진품 티셔츠 사진을 보여주자 "마침 이번에 떼온 물건 중에 있다"고 반색하며 "자정쯤 물건이 도착하니 가서 국수 한 그릇 먹고 오라"고 말했다.
골프 인기 따라 몸집 키우는 모조품 시장
골프의 인기가 치솟으며 관련 의류 시장 규모는 지난해 6조원을 넘겼다. 문제는 이 틈을 타서 짝퉁 시장도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골프웨어 가품 시장이 1000억원 규모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관에서 적발되는 모조품 수도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세관에 적발된 타이틀리스트의 골프웨어 모조품 수는 2020년 632점에서 지난해 2021년 1479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올 들어서는 7월까지 브랜드 자체 단속에서 935점, 세관 단속으로 163점이 적발됐다. 클럽을 비롯한 전 제품으로 범주를 넓히면 세관에 걸려든 타이틀리스트 모조품 수는 2020년 1만7064점, 2021년 7만3232점으로 급증세다.
이때문에 타이틀리스트 어패럴을 생산하는 아쿠쉬네트 측은 직접 단속까지 나서고 있다. 직원들이 현장에서 가품 여부를 확인한 뒤 특허청 또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수순이다. 통상 수사기관에 의해 기소가 이뤄지고 형사재판에 회부되지만, 브랜드 차원에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PXG어패럴 측은 온라인 가품 판매처에 대해서만 자체 단속을 진행하고 노점상은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 제보를 받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말본골프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말본골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가품 매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시장을 꾸준히 모니터링한 후 세부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진품 값이 너무 비싸니까"…고가 정책이 낳은 짝퉁 활황
짝퉁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는 배경에는 업체들의 지나친 고가 정책도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격은 높은데 활용도는 낮다 보니 소비자들이 가품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골프 의류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준인 '티셔츠'만 해도 수십만원대가 기본이다. PXG어패럴의 하얀색 반팔 티셔츠는 백화점에서 33만9000원에 판매 중이다. 지포어의 남색 티셔츠는 정상가 47만원, 마크앤로나의 제품은 49만8000원이다. 최근 한섬이 명품 브랜드 랑방과 손잡고 론칭한 '랑방블랑'의 경우 티셔츠 한 장에 50만~60만원을 호가한다.
의류업계 관계자는 "같은 옷을 만들어도 골프웨어는 원가 대비 마진이 높은 편"이라며 "지난해 국내에 선보인 골프웨어 브랜드만 60개 가까이 된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골프가 과시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보니 이미 오른 가격을 낮추길 꺼려 하는 게 업계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팬데믹을 거치면서 나타난 '명품 과시욕'이 골프웨어로 고스란히 이어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민정 계명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30세대가 골프에 진입하면서 의류를 실용적인 측면보다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높은 가격대를 형성한 골프웨어의 특성상 가품 시장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골프웨어는 일상에서 쉽게 착용할 수 있는 명품과 달리 라운딩을 나갈 때만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가품의 유혹에 빠져들기 더욱 쉽다"며 "특히 명품보다 가품일 것이라는 인식이 상대적으로 적어 모조품 시장의 규모는 앞으로 더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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