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초과근무에 "어쩔 수가", "라떼는"... 이재명 정부 답지 않다

박성우 2026. 2. 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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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직원 장시간 노동은 격려로 해결할 일 아냐... 인력 충원·업무 과정 혁신이 답

[박성우 기자]

 2026년 청와대 시무식 장면.
ⓒ 청와대
지난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 올린 게시글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한국의 고질적 문제로 꼽혀 온 과로를 줄곧 비판 해 온 이 대통령이 정작 청와대 직원들에겐 과로를 사실상 납득하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025년 6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청와대 직원들이 매달 평균 62.1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다는 내용의 <아시아경제> 보도를 공유하며 "초인적 과로에 노출된 청와대 비서진에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전쟁터와 같은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언제나 말씀드리는 것처럼 국가 공직자의 한 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 국민의 참여와 격려 속에 큰 성과를 내고 안정된 평화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며 "청와대 동지 여러분! 여러분의 10분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흥망, 생사가 달려 있다. 비록 힘은 들어도, 짧은 인생에서 이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 또 어디 있겠나. 귀하디 귀한 시간을 가진 여러분, 힘을 냅시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언뜻 보면 청와대 직원들을 향한 격려사지만 과로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 공직자의 숙명으로 치부하며 국가의 대의를 위해 공직자의 헌신을 강요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건강과 안전이 우선"이라던 이 대통령, 지금은?
 지난해 6월, 이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건강과 안전"이라며 "부디 스스로를 먼저 돌봐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사명보다 공직자 개인의 건강과 안전을 중요히 여겼던 이 대통령은 어디로 간 걸까.
ⓒ 이재명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공직자의 헌신이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그것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만성적 과로를 정당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의 논리는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사명감 부족'이나 '애국심 결여'로 몰아세우는 위험한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대통령이 언급한 "짧은 인생에서 이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표현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며 열정페이를 옹호하는 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이는 불과 8개월 전 이 대통령의 모습과 대비된다. 지난해 6월 11일 이 대통령은 SNS를 통해 대통령실 직원이 과로로 쓰러졌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안타까움과 더불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맡은 일은 걱정 말고, 건강 회복에만 집중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 공복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건강과 안전"이라며 "부디 스스로를 먼저 돌봐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덧붙였다. 사명보다 공직자 개인의 건강과 안전을 중요히 여겼던 이 대통령은 어디로 간 걸까.

"나는 주 70, 80시간도 일해봤다"는 하정우... 지금 필요한 건 그런 무용담이 아니다
 한편 이러한 이 대통령의 과로 상찬에 대한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의 화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는 X에 민간 기업 시절 주 70~80시간을 일했기에 본인은 지금의 업무량도 괜찮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수석급 참모가 나서서 과로를 훈장처럼 여기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 아래의 실무진이 설령 건강이 안 좋더라도 퇴근하겠다고 말이나 꺼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하정우 수석 X 갈무리
이 대통령 발언에 대한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의 화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는 X에 이 대통령의 글을 공유하며 "저는 회사다닐 때 재택 포함 주 70~80시간 정도 일했던터라 괜찮다"라고 남겼다.

민간의 비정상적인 노동 관행을 공공 영역의 기준으로 끌어들이는 건 부적절하다. 기업의 경우 실적이 나오면 성과급이라도 받지만 공직자의 경우 초과근무수당이 최대 월 57시간까지로만 규정되어 있어 초과근무를 하고도 정당한 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수석급 참모가 나서서 과로를 가볍게 여기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 아래의 실무진이 설령 건강이 안 좋더라도 퇴근하겠다고 말이나 꺼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직자의 과로는 정책적 리스크로 이어져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만성적인 과로가 가져올 정책적 리스크다. 청와대 직원들은 국가의 앞날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조율하는 이들이다. 초인적인 과로에 시달릴 수록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고,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생산된 정책은 세밀함이 떨어지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놓칠 위험이 적잖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를 '전쟁터'에 비유했으나 군인들조차 필요한 순간의 전투태세 유지를 위해 쉴 때는 완전한 휴식을 보장하는 세상이다. 무작정 오래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진정한 국민에 대한 봉사다.

결국 지금 청와대에 필요한 것은 '전쟁과 같은 상황이니 힘을 내자'는 대통령의 공허한 격려나 '나 때는 더 힘들었다'는 참모의 무용담이 아니다.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업무량을 조절할 수 있는 인력 충원이나 비효율적인 업무 과정의 혁신,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뒤틀린 시각을 바로잡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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